[오후 3시의 헌책방]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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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은평구에서 헌책방을 시작한 지 올해로 십오 년이 됐다.
시작할 때 가게는 계단을 두 번이나 꺾어서 들어가야 문이 나오는 지하였다.
지하에서 생활할 때는 날마다 이렇게 많은 사이렌 소리가 나는 줄 모르고 지냈다.
지난 15년이라는 시간이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이 소리를 많은 손님에게 전해주고 있다는 뿌듯한 마음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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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은평구에서 헌책방을 시작한 지 올해로 십오 년이 됐다. 시작할 때 가게는 계단을 두 번이나 꺾어서 들어가야 문이 나오는 지하였다. 거기서 8년을 지내다 근처 건물 2층으로 이사한 게 7년 전이다.
지금의 2층 헌책방과 비교하자면 지하 매장엔 햇빛과 소리가 없었다. 지하에도 창문이란 게 있었지만 그야말로 최소한의 환기를 위한 장치였을 뿐 그곳으로 햇빛은 들어오지 않았다.
처음 가게를 시작한 곳은 너무 깊은 지하라 바깥 사정을 알 수 없을 만큼 고요했다. 그런데 2층으로 매장을 옮기고 나니 한동안은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다. 건물 바로 앞이 찻길이다 보니 시끄러워서 창문도 열지 못했다.
그래도 여기서 몇 년 적응하다 보니 이제 웬만한 소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여길 만큼 도시의 소음에 단련된 것 같다. 하지만 여전히 신경 쓰이는 소리가 있다. 자동차 사이렌 소리다. 멀리서부터 들리는가 싶은데 어느덧 불안한 소리를 내며 가깝게 지나가는 그 소리를 들으면 지금도 심장이 쿵쿵거린다.
사이렌 소리를 처음 들었을 때는 시끄럽기만 하고 다 같은 소리로 들렸다. 지금은 소리만 듣고도 어떤 차인지 안다. 사이렌을 울리는 자동차는 크게 세 종류가 있다. 우선 소방차. 소방차 소리는 구급차와 비슷하지만 좀 더 묵직하다. 뱃고동 소리처럼 길고 큰 소리로 다른 운전자들에게 존재감을 알린다. 구급차는 그의 임무처럼 불안함과 다급함이 섞여 내는 소리다. 마지막으로 레커가 지나갈 때 나는 소리가 있다. 이 소리는 조금 경박하다고 해야 할까? 아무튼 상당히 거슬리는 소리다.
사이렌 소리를 들을 때 나는 그 자동차에 타고 있는 이들의 거룩한 임무와 간절히 자동차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누군가를 떠올린다. 지하에서 생활할 때는 날마다 이렇게 많은 사이렌 소리가 나는 줄 모르고 지냈다. 실은 하루에도 몇 번씩 어떤 곳에서 크고 작은 사고가 터지는 거다. 스스로 몸을 가눌 수 없는 상태의 위급한 환자가 우리 주변엔 이렇게 많은 거다. 사이렌은 잊고 있던 내 주변 사람들의 아픔과 간절함 그리고 눈물을 알게 한다.
나는 초능력자가 아니지만 사이렌 소리를 통해서 보지 않고도 내 이웃의 아픈 사연을 느낀다. 세상엔 보이는 것만 믿고 내가 겪어보지 않은 것에는 마냥 돌아앉은 사람이 많다. 책을 읽는다는 건 느닷없이 들리는 사이렌 소리처럼 보이지 않는 이웃의 모습을 느끼도록 돕는 행위다. 작가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독자에게 세상의 모습을 보여주고 그로 인해 우리는 조금 더 먼 곳까지 눈을 돌린다.
헌책방에 있는 오래된 책들 속에서는 여러 소리가 들린다. 지난 15년이라는 시간이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이 소리를 많은 손님에게 전해주고 있다는 뿌듯한 마음 때문이다. 얼마나 더 오래 이 일을 할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여기서 책들의 울림을 통해 세상의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게 된 것 하나만은 자랑하고 싶다.
윤성근 이상한나라의헌책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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