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윤의 딴생각] 순간 포착, 나에게 이런 일이!
‘집순이’인 나를 가끔 불러내 좋다는 카페에 데리고 다니는 후배가 있다. 그녀에게 연락이 오면 귀찮은 마음이 드는 한편, 나 혼자서 언제 또 그런 곳에 가 보겠나 싶어 어기여차 기운을 내 외출 준비를 한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집 먼지 가득한 나의 콧구멍에 바깥바람을 넣어 주는 대가로 그날만큼은 그녀의 전속 사진사가 돼야 한다. 예쁜 케이크를 앞에 두고 그보다 더 예쁜 표정을 지으며 후배가 이런저런 근황을 늘어놓으면 나는 “어머, 진짜? 웬일이야!” 대신 “찰칵! 찰칵! 찰칵!” 하는 소리로 추임새를 대신한다.
후배는 오래간만에 만난 내 얼굴보다도 휴대폰 속 제 얼굴을 들여다보는 데 더욱 많은 시간을 쓴다. 방금 찍은 사진을 앱으로 보정하고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하느라 눈 돌릴 새가 없는 것이다. 나는 내 앞에 있는 그녀보다 열 배쯤 더 예뻐진 그녀의 사진에 ‘좋아요’를 누르며 놀림조로 말했다. 실제 모습과 달라도 너무 다른 사진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냐고. 그러자 후배가 발끈하며 말하길 “뼈와 살을 깎는 아픔을 선배가 알아요?” 하는 것 아닌가. 그녀의 귀여운 대꾸에 나는 그만 너털웃음을 웃고야 말았다.
어지간해서는 사진을 찍지 않는 나로서는 후배의 뼈아픈 심정을 알 턱이 없다. 언제부터인지 카메라만 들이대면 온몸이 경직되는 몹쓸 병에 걸려 카메라를 피해 다니게 됐다. 어쩌다 사진을 찍어야만 하는 상황에 놓이면 자연스러운 미소를 지으려 갖은 애를 써 보기도 하지만, 그 결과물은 가족사진 속 아버지처럼 근엄해 나를 절망케 한다. 더불어 시도 때도 없이 카메라를 들이대느라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순간을 흘려보내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또 없다고 믿기에 내 휴대폰 사진첩에는 내 사진은 물론이요 지인들의 사진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카페 카운터에 붙어 있는 와이파이 비밀번호 사진과 술안주로 만든 노릇노릇한 부침개 사진 사이로 내 사진이 하나둘 끼어들기 시작한 건 요가원에 다니면서부터다. 요가원 인스타그램에는 수업 장면이 수시로 올라온다. 제 모습이 찍히는 줄도 모른 채 요가에 열중하는 수강생들 사진은 꾸밈없이 아름다웠다. 넋을 놓고 사진을 구경하다 바닥에 정수리를 대고 물구나무를 선 내 모습도 발견했다. 그 장면이 꽤나 그럴싸해 콧구멍이 절로 벌름거렸다. 중심을 잡지 못해 우당탕 넘어지기 직전의 순간이 포착됐다는 건 선생님과 나만의 비밀이지만 말이다.
아무도 몰래 캡처한 내 사진들을 보고 또 보며 흐뭇해하던 나는 한 발짝 더 나아가 동영상을 찍기에 이르렀다. 이 자세에서는 손을 더 쭉 뻗었어야 했는데. 저 자세에서는 발을 팔자로 두면 안 되는 거였는데. 아니, 다리가 저만큼밖에 안 찢어진단 말이야? 사진 속 내 모습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니 부족한 부분이 확연히 눈에 들어와 더 나은 자세를 취해 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기 때문이다. 벽에 기대어 앉아 만화책을 보고 있던 남자친구를 구석으로 밀쳐내고 그 자리에 요가 매트를 폈다. 그러고는 휴대폰을 앞에 두고 요가 삼매경에 빠졌다.
잠시 후 영상을 확인한 나는 화면 구석에 잡힌 남자친구의 행동에 포복절도하고야 말았다. 그는 고군분투하는 내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더니만 이내 마술사처럼 손을 휘저으며 나를 조종하는 시늉을 했다. 호흡을 맞춰 본 적도 없건만 내 몸은 그의 손놀림에 따라 이리저리 잘도 움직였다. 눈물이 찔끔 나도록 우스운 그 영상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보던 나는 새삼스레 알게 됐다. 내 눈은 오로지 내가 바라보는 곳만을 향하기에 무수한 장면을 놓치며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카메라를 손에 쥐면 내가 미처 알아채지 못한 소중한 순간까지도 붙잡아 둘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사진첩 속 옛 사진들을 훑어본다. 삭막한 줄로만 알았던 내 사진첩에 후배가 찍어 놓은 사진이 저장돼 있다. 먼 산을 바라보는 나를 배경 삼아 손가락으로 브이 자를 그리고 있는 후배의 얼굴이 실제보다 어김없이 열 배는 예뻐 실소를 금치 못했고, 그녀를 따라 덩달아 예뻐진 내 얼굴에 박장대소가 터졌다. 후배의 뼈와 살을 깎는 노고에 감사해하는 찰나 그녀로부터 메시지가 도착했다. “선배, 오늘 저녁에 뭐 하세요?” 아이고, 귀찮아 죽겠네. 구시렁거리면서도 가방 속에 휴대폰 충전기를 챙겨 넣는다. 찰칵! 찰칵! 찰칵! 그녀의 이야기에 맞장구칠 준비 완료다.
이주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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