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찬일의 문화수다] 영화제의 계절을 숨가쁘게 보내며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10월5일∼14일) 개막 이후 줄곧 영화제와 더불어 지내고 있는 중이다. 이 원고도 조직위원으로 관여하고 있는 24회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BIAF; 10월22일∼25일) 폐막 다음 날 새벽, 호텔에서 쓰고 있는 중이다. 29일부터는 3박 4일간 4회 창원국제민주영화제(CIDFF; 10월28일∼11월 5일)에 참여한다. 11월2일에는 제주도를 방문해, 13회 제주프랑스영화제(JEJUFFF; 11월3일∼7일)의 전 기간을 소화한다. 세어보니 한 달여의 나날 가운데 20여 일을 영화제와 함께 하는 것이다. 그야말로 ‘영화제의 계절’을 사는 셈이다.
영화평론가이니 당연한 거 아니냐고 생각될 수도 있겠으나, 그렇지는 않다. 이렇게 집중적으로 여러 영화제들과 더불어 보내는 경우는, 30년 가까운 비평 활동 중에서도 처음이다. 가능하면 한 편이라도 더 보려 애는 써도, 영화를 마음먹은 만큼 많이 관람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당장 BIFF만 해도 전 기간을 머물렀어도, 71개국 242편의 공식 초청작 중 개막작 '바람의 향기'(하디 모하게흐 감독, 이란)과 폐막작 '한 남자'(이시카와 케이, 일본)을 포함해 고작 15편을 봤을 따름이다. 다른 기관의 요청으로 하게 된 두 차례의 특강과, 이장호 배창호 김한민 세 감독 등과 함께 필자가 진행했던 월간 문화전문지 ‘쿨투라’ 100호 기념 시네토크콘서트 등 다른 일정들이 적잖아서였다. BIFF의 스핀오프 페스티벌 커뮤니티비프와, 그 페스티벌의 확장 프로그램 동네방네비프에서도 무려 161편(중복 제외)이 상영됐다는데, 단 한 편도 챙겨보질 못했다.
그렇다면 필자는 왜 이렇게까지, 어느 모로는 무리해가면서까지 영화제에 열심을 다 하는 걸까. 다른 할 일이 없어서? 시간이 남아돌아서? 물론 그건 아니다. 영화제들마다 구체적 이유는 다를 테지만, 언제부터인가 ‘글로컬 컬처 플래너 & 커넥터’요 ‘퍼블릭 오지라퍼’를 표방해온 영화 및 문화평론가로서의 ‘어떤 쓸모’ 때문이다. 살다 보니 어느덧 회갑을 넘은 중견 비평가로서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자의식 내지 책임감 같은 것이랄까. 비평 활동의 연장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BIFF의 경우, ‘한류역사문화TV’ 편집인 겸 대기자로, 잠을 설쳐가면서 9회에 걸친 ‘BIFF 리포트’를 작성해 게재했다. 역사학자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과 기록문학가이자 출판·영상 분야 전문가인 인생절친 조철현 등과 몇 개월 전 설립한 법인 한류역사문화티브이에서 발행하고 있는 인터넷신문이다. BIFF를 가장 뜨겁게 달군 두 스타 양조위와 이지은(아이유), 그리로 OTT 드라마들에 관한 소식 등도 전했으나, 그 리포트들에서 역점을 둔 것은 일련의 상영작들에 대한 관심 환기 및 리뷰였다. 영화제의 핵심 본질은 다름 아닌 영화 그 자체거늘, 국내 대다수 매체들이 정작 영화들에는 무심하고, 주로 BIFF를 찾은 스타 동정 따위에만 지나치게 열중하는 ‘관행’이 안타까워서였다.
‘동시대를 대표하는 거장들의 신작을 소개하는 섹션’인 아이콘 부문에 초대된 박찬욱 감독의 2022 칸영화제 감독상 수상작 '헤어질 결심'을 필두로, 아시아영화 창에서 선보인 세 영화를 꼭 집어 강력 추천한 것도 그래서였다. 올 칸 경쟁작 중 '헤어질 결심'에 필적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걸작으로 열혈 저널리스트 역의 자르 아미르 에브라히미에게 여우주연상을 안긴 '성스러운 거미'(알리 아바시)와, 캄보디아계 프랑스 감독 데이비 추가 연기 경험이 전무했던 실제 이민자이자 예술가로 활동해온 박지민를 비롯해 오광록 김선영 등 한국의 좋은 배우들과 공동으로 빚어낸 ‘올 칸의 발견’ '리턴 투 서울', 코로나-19 와중에도 말레이시아의 호유항, 인도네시아의 제나르 마에사 아유, 한국의 김태식 세 감독이 협력해 탄생시킨, 유의미한 합작 옴니버스 영화 '룩앳미 터치미 키스미'였다.
그 밖에도 작지 않은 영화적 만족감을 선사한 개·폐막작에 대해서도 비교적 상세히 리뷰했다. ‘나를 사로잡은 영화들’ 5편에 관해서도 3회에 걸쳐 상술했다. 단 하나의 우즈베키스탄 초청작으로 개막작과 나란히 3편 이상 연출한 감독에게 주어지는 지석상을 거머쥔 '변모'(Alteration; 욜킨 투이치에브)와, 올 BIFF의 ‘깜짝 선물’로 2022 노벨문학상에 빛나는 거장 아니 에르노가 아들 다비드 에르노-브리오와 공동 감독한 자전적 가족 다큐멘터리 '슈퍼 에이트 시절'(The Super 8 Years), 프랑스 영화의 이단적 존재 알랭 기로디가 캐릭터와 플롯 층위에서 내 상상의 한계를 보란 듯 깨부수며 일생일대의 충격을 안겨준 '노바디즈 히어로'(Viens je t'emm?ne), 특별기획 프로그램 ‘일본 영화의 새로운 물결’을 입증하기 부족함 없었던 봉준호의 조감독 출신 가타야마 신조의 '벼랑 끝의 남매'(Siblings of the Cape; 岬の兄妹), 그리고 2022년 선댄스영화제 월드시네마 극영화 부문 심사위원대상을 차지하며 남미 볼리비아 영화의 숨은 저력을 과시한 '우타마, 우리집'(UTAMA, 알레한드로 로아이사 그리시)이 그들이다.
겨우 이틀밖에 머물지 않은 데다, 꽤 흥미롭긴 했으나 본 영화가 두 편에 불과해 BIAF에 대해서는 별도의 리포트를 쓰진 않았다. 그래도 기회를 봐 결산성 기사 한 꼭지쯤은 늦게라도 쓸 참이다. 28분짜리 단편 '민우씨 오는 날'(2014)과 '은행나무침대'(1996)부터 '쉬리'(1999), '태극기 휘날리며'(2004), '마이 웨이'(2011), '장수상회'(2015)에 이르는 장편 전작(全作) 특별전 등이 열리는 CIDFF에서는, 특별전 개막일인 29일 저녁 감독과의 토크콘서트 외에도, 30일부터 3일간 하루 한두 편씩은 영화를 보고 관객과의 대화(Guest Visit)도 진행을 한다.
JEJUFFF에서는 개막식 참석부터 ‘한국의 국제영화제들을 통해 본 제주의 가능성’이라는 제목하의 포럼 발제, 단편 경쟁 부문 심사위원장, 한 차례의 GV 진행, 폐막시상식 동참까지 일인다역을 수행할 참이다. BIFF처럼 많이는 아니어도 CIDFF와 JEJUFFF 때는 몇 차례의 리포트도 쓸 작정이다. 그런 내 행위들이 3년째 세상을 점령해온 코로나-19 외에도 강릉, 평창 등 일련의 영화제들이 중단되면서 적잖이 위축된 (한국) 영화계에, 비평가 이전에 영화애호가로서 미력하나마 힘을 보탤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요 방편일 테니 말이다.
전찬일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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