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애의 시시각각] 문 전 대통령 앞에 쌓이는 질문
‘월북몰이 ’등 현안에 입 다물어
대통령 때처럼 권력형 침묵하나
동식물을 대통령기록물로 관리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1년생 식물이라면 매년 씨앗을 거두어 다시 뿌려야 할까. 동물은 번식까지 시켜야 한다는 의미일까. 사후엔 박제라도 해서 전시해야 하나.
이런 엉뚱한 상상을 한 건 지난 6월의 대통령기록물 관리법 시행령 개정안 입법 예고 때문이다. 제6조의 3을 신설하는 내용인데, ‘동물 또는 식물 등인 대통령 선물이 대통령기록관으로 이관된 경우에는 대통령기록관의 장이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고 인정되는 기관이나 개인에 위탁하여 관리하게 할 수 있다. 이 경우 수탁받은 기관 또는 개인에게 예산의 범위 내에서 필요한 물품 및 비용을 지불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의아했다. 왜 이게 필요했을까. 해당 부서에 물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선물한 풍산개 두 마리 때문이라고 했다. 양산 사저로 데려가지 않았나. 그런데도 대통령기록관으로 이관이라니 궁금했다. 대통령기록관 관계자에게도 물었다.
-대통령기록관으로 이관된다는 의미는.
“선물도 대통령기록물이 된다. 임기가 끝나면 대통령기록관으로 다 넘어와야 한다. 현 대통령과 (문 전 대통령이) 상호 간에 키우던 분이 데려가는 게 맞다고 합의돼 양산 사저로 갔다. 이에 따라 대통령기록관이 아닌 제3의 기관이나 개인이 보존관리를 맡는 법적 근거를 만들게 됐다.”
-다른 데로 옮길 수 있다는 건가.
“(대통령 재임 중) 받은 호랑나 풍산개가 동물원에 간 바가 있다. 다만 이번엔 임기가 만료된 상황에서 (대통령기록관으로) 넘어왔기 때문에 그런 경우에 대한 제도가 없어서 개정하려는 것이다.”
-예산 지원도 하게 되나.
“법령 개정 후 예산을 지원할 근거가 생기면 협의해서 정해야 할 것 같다.”
사실 관련 시행령은 3월에도 개정됐다. 제6조의 2가 신설됐는데, 퇴임 전 동식물을 다른 기관에 맡길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이번엔 그리 안 해서 대통령기록관으로 이관됐더라도 다른 기관 또는 개인에게 맡길 수 있도록 한 것이며, 예산 지원 근거도 넣는 것이다.
개인도 된다면 풍산개가 양산에 있어도 예산 지원을 받는다는 말인가 궁금했다. 문재인 청와대가 3월 초 “풍산개를 개인이 아닌 국가원수 자격으로 받았기 때문에 문 대통령 퇴임 후 사저에 함께 갈 수 없다”고 했던 게 떠오른다. 문 전 대통령에겐 풍산개가 반려견 이전에 ‘대통령기록물’인 모양이다. 여하튼 법적 근거를 마련해 두려는 문 전 대통령 주변의 치밀함이 놀랍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변호사 마인드’라고 했던가.
사실 문 전 대통령은 퇴임 대통령으론 이례적으로 자신의 정파에선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남았다.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으나 “나는 한 번도 ‘링’ 위에 올라가 본 적이 없고, 우리 당 후보를 응원할 수도 없었다. 마치 (나 때문에) 졌다고 말하는 것은 문제 있다”고 했다. 지지자도 여전하다. 퇴임 후에도 문 전 대통령을 위해 시행령을 개정하려는 움직임이 가능한 이유일 터다.
이뿐이 아니다. 문 전 대통령은 대통령일 때처럼 ‘권력형 침묵’도 누리고 있다. 특히나 서해 공무원 피살사건에서 자신의 국방부 장관과 해양경찰청장이 정권 차원의 ‘월북몰이’ 혐의로 구속됐는데도 입을 다물고 있다. 2020년 10월 진상을 밝혀 달라는 피해 공무원 아들의 요구에 “진실을 밝혀내도록 직접 챙기겠다”고 했지만 2년이 넘도록 묵언으로 응대하고 있다. 대부분의 자료는 대통령기록물로 묶었고, 감사원 조사 요구엔 “무례하다”고 했다.
27일에도 그의 노영민 전 대통령비서실장, 박지원 전 국정원장, 서훈 전 안보실장, 이인영 전 통일부 장관, 정의용 전 외교부 장관이 나서 반박했을 뿐이다. 북한의 연이은 도발로 문 전 대통령이 보장한 ‘북한 핵 포기 의사’를 의심케 하는데도 그는 여전히 ‘평화’만 말한다. 그러는 사이 문 전 대통령 앞에 질문은 쌓여 간다. 그는 언제까지 침묵하려나.
고정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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