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한달만에 6.5억 급락…실거래가 '집값 공포' 커진다 [안장원의 부동산 노트]
거래절벽 최악인 시장과 온도차
집값 많이 오른 곳 실거래가 폭락
실수요 옥죄는 규제부터 풀어야
[안장원의 부동산 노트] '한겨울' 다가오는 부동산
집 뒤 북한산이 울긋불긋 짙어지며 만추의 정취가 물씬 풍긴다. 아직 들녘 가을걷이가 끝나지 않았는데 강원도에선 벌써 이른 눈 소식이 들린다. 추위가 빨리 오는 북한산 부근에 살면서 기온이 떨어질 때면 2010년 열반한 법정 스님이 생각난다.
겨울은 누구보다 산에서 수행하는 스님들에게 힘들 것이다. 전남 순천 조계산 자락의 송광사 불일암에 기거한 법정 스님은 ‘늦게 입고 늦게 벗어라’가 건강 비결의 하나라고 했다.
“늦가을이나 초겨울에 날씨가 좀 춥다고 해서 일찍 내의를 껴입기 시작하면 한겨울에는 더욱 두텁게 입어야 한다. 추위를 이겨낼 저항력을 잃는다. 여기저기 꽃소식을 전한다고 해서 성급하게 내의를 벗고 가벼운 차림을 했다가는 감기 걸리기에 십상이다.”(법정 글 ‘아직은 이른 봄’)
박근혜 정부에서 경기 부양책을 이끈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의 유명한 '여름옷' 얘기가 있다. 2014년 경제부총리로 내정된 뒤 가진 기자 간담회에서 “겨울에 여름옷 입고 있는 격”이라며 꺼냈다. 2008년 금융위기 후유증을 앓으며 침체에 빠져 있던 부동산 시장을 두고 한 말이다. 그는 "지금은 부동산이 불티나게 팔리고 프리미엄이 붙던 한여름이 아니고 한겨울이다. 한여름 옷을 한겨울에 입으면 감기 걸려서 죽지 않겠나"라고도 했다.
아파트 거래, 금융위기 때의 절반
요즘 주택시장 계절을 두고 정부와 시장 간 온도 차가 크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21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의 국토부 국정감사에서 "전국적으로 아파트값이 평균 50% 올랐다가, 6%가량 내렸다"며 "50% 오른 가격이 6% 내린 게 폭락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원 장관은 "현재 매도인들의 호가도 지나치게 높게 형성돼 있고, 시장의 가격 조정 기능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상황이기 때문에 특정 국면으로 단정 짓기 어렵다"며 “가격 폭락을 단정 짓는 건 시기상조"라고 했다.
원 장관은 집값이 더 많이 내려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앞서 지난 18일 국토부 유튜브 채널에서 “집값은 소득 대비 감당 가능한, 서민들과 청년들이 미래 소득으로 부담 가능한 수준이어야 한다. 소득을 단기간에 끌어올릴 수 없기 때문에 집값 하향 안정화는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원 장관의 ‘50% 상승, 6% 하락’은 한국부동산원이 실제 거래가격을 집계한 실거래가 통계를 근거로 한 수치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아파트 실거래가가 지난해 10월 고점을 찍고 하락세로 돌아선 뒤 지난 8월까지 전국 6.5%, 서울 9.2% 내렸다. 이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2017년 초부터 지난해 10월까지 상승률이 전국 46%, 서울 100%다.
문 정부 이전을 집값 ‘정상’ 수준으로 보는 원 장관으로서는 겨울이 먼 셈이다. 하지만 원 장관이 집 안에서 온도계로 실외 온도를 확인하는 동안 밖은 해가 떨어지고 찬바람이 거센 한겨울을 실감하고 있다. 2006년 통계 작성 이후 최저였던 2008년 금융위기 직후보다 더 심한 거래절벽이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9월 서울 아파트 거래 건수가 600~700건으로 잠정 집계된다. 지난 7월부터 3개월째 600건대다. 2008년 8월 금융위기가 터져 그해 말까지 실거래가 20% 가까이 폭락하는 동안에도 한 달에 1000건 넘게 거래가 이뤄졌다. 중개업계는 "시장이 동파했다"고 아우성이다.
원 장관이 말하는 6% 하락은 건조한 숫자다. 집값이 내리는 속도가 워낙 빨라 실제로 느끼는 체감 온도는 훨씬 더 낮다. 거듭된 기준금리 인상과 맞물려 집값 하락세에 가속도가 붙었다. 실거래가 하락 폭이 올해 초보다 3배로 커졌다. 한국부동산원의 시세 통계도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월간 변동률 '-1%'를 눈앞에 두고 있다.
27억 찍은 잠실엘스 20억원 밑으로
달아올랐던 지역이 급랭하며 기온 차가 심하다. 문 정부에서 집값이 치솟은 2020년 이후 상승률이 높을수록 이번엔 반대로 하락 폭이 더 크다. 2019년 말 대비 지난해 10월 아파트 실거래가 상승률이 수도권 54%, 부산 등 지방 5개 광역시 30%, 광역시 이외 지방 23%였다. 지난해 10월 이후엔 수도권(-9.5%)이 가장 많이 내렸다.
서울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10월 이전 가장 많이 오른 ‘노·도·강’(노원·도봉·강북구 54%)의 이후 하락 폭(-12%)이 크다. 범강남권인 동남권(강남·서초·송파·강동구)에서는 상대적으로 더 오른 송파·강동구가 더 내렸다. 김성환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초저금리에 따른 유동성 급증 등에 힘입어 많이 오른 지역일수록 금리 상승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말했다.
거래시장에선 순식간에 가격의 맨 앞자리 숫자가 달라져 충격적인 사례가 빈발하고 있다. 주로 정상적인 시장 거래로 보기 힘든 당사자 간 직거래에 보이던 수억원씩 폭락이 중개업소를 통한 일반적인 거래에서도 확산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27억원까지 올랐던 송파구 잠실동 잠실엘스 84㎡(이하 전용면적) 실거래가가 20억원 밑으로 내려가 지난 8월에 이어 이달에 각 19억5000원씩에 거래됐다. 지난해 14억원을 넘어섰던 강동구 상일동 고덕롯데캐슬베네루체 59㎡가 이달 4억원 넘게 하락한 9억5000만원에 팔렸다. 지난해 8월 13억4000만원에 계약했다가 계약 해지된 집이다. 매도자 입장에선 1년 새 두 번 계약서를 쓰면서 4억원을 손해 본 셈이다. 노원구 하계동 임광 122㎡ 거래가격도 지난 5월 13억1000만원에서 이달 10억8000만원으로 5개월 새 2억원 넘게 하락했다.
다른 지역과 달리 현 정부 들어 재건축 기대감이 높아지며 신고가 기록이 잇따르는 여의도에서 한 달 새 6억5000만원 급락했다. 지난 3월 최고가보다 10억원 정도 내렸다. 서울아파트 139㎡가 이달 33억5000만원에 거래됐다. 지난 9월 다른 동 같은 층이 40억원에 팔렸고 지난 3월 42억5000만원 최고가를 찍은 주택형이다.
4건 중 하나, 2020년보다 가격 낮아
부동산R114가 2020년과 올해 8~9월 거래가 있었던 서울 아파트 470개 주택형을 조사한 결과 넷 중 하나꼴인 124개(26%)의 올해 거래가격이 2020년보다 낮았다. 2020년 이후 2년간의 상승분을 고스란히 반납한 것이다. 이 정도면 원 장관이 시기상조라고 한 폭락이 이미 시장에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양도세 절감, 채무 변제 등에 쫓긴 급매가 실거래가 급락을 주도하고 있다.
김종필 세무사는 “그동안 집값이 뛰면서 양도세 비과세 시한이 임박한 일시적 2주택자가 억대를 낮춰 팔더라도 비과세 혜택을 못 받고 내는 세금보다 이익인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들은 대개 지난해까지 매도자가 ‘갑’인 시장에서 여유를 부리다 시장이 역전되면서 코너에 몰렸다.
금리가 치솟으면서 대출 이자를 감당할 수 없어 집을 처분하기도 한다. 등기부등본 확인 결과 고점에서 10억원 정도 낮추 판 여의도 서울에 20억원이 넘는 금융회사·대부업체 등의 근저당권이 설정돼 있다가 매도 후 풀렸다. 여경희 부동산R114 연구원은 “더운 지방에 얼음이 얼면 더 춥게 느껴지듯 인기 지역의 알 만한 단지들에서 실거래가 급락이 두드러져 집값 하락 공포를 낳고 있다"고 말했다.
통계 수치에 매달리면 곤란
시장과 차이 나는 정부의 온도는 잘못한 정책으로 이어지고 시장 혼란을 부추긴다. 집값 급등을 낳은 전 정부에서 익히 경험했다. 문 정부에서 집값 통계 왜곡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정부는 통계를 내세워 천정부지로 치솟는 집값을 가리려 했다.
2020년 7월 당시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문 정부 들어 부동산 가격이 11% 정도 올랐다”고 말했다. 한국부동산원 시세 통계를 말한 것이었다. 그런데 실거래가격 통계로 보면 40%가 넘었고 주택 매수자가 시장에서 경험하는 가격은 ‘이생집망’(이번 생에 집 사기는 망했다)이란 말이 유행할 정도로 훨씬 더 비쌌다.
원 장관은 통계 수치에만 매달려서는 안 된다. 설사 원 장관 말대로 지금 주택시장을 한겨울로 단정 짓기 어렵다 하더라도 손 놓고 있을 수 없다. 행여나 한겨울을 피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면 더 냉혹한 겨울을 맞을 수 있다.
현재로선 온도가 급강하할 게 분명하다는 게 지배적인 시장 전망이다. 예상치 못한 일로 하루아침에 ‘빙하기’에 들어갈 수 있다. 서둘러 겨울옷을 꺼내고 기온 하강에 대비해 몸을 덥혀야 한다. 땅이 얼어붙은 아침에 일어나 밖을 내다보고 옷을 두껍게 입어봐야 늦다. 법정 스님이 말한 '늦게 입기'는 저항력을 전제로 한다. 몸으로 이겨내기 힘들면 내의를 입어야 한다. 한여름에 만들어 여전히 실수요마저 옥죄고 있는 규제를 풀어 주택시장의 겨울 채비를 해야 한다.
안장원 기자 ahnj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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