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호의 시선] ‘비상’경제민생회의 맞습니까
대통령 시간과 관심도 국가자원
정책홍보보다 더 큰 일에 써야
설마 실제 회의가 그렇게 돌아간다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어제 생중계된 윤석열 대통령 주재 11차 비상경제민생회의 얘기다. 회의가 전 국민에게 실시간 공개되는 만큼 각 부처의 정책 홍보에 집중한 ‘그다지 비상하지 않은’ 경제정책 홍보회의였다. ‘물 흐르듯이’ 막힘없이 최상목 경제수석이 회의를 진행한 걸 보면 미리 발표 내용을 조율한 티가 역력했다. 생중계이니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장관은 두 부류로 나뉘었다. 자료를 읽는 장관과 자료 안 보고 소화해서 말하는 장관. 지켜본 국민은 당연히 후자를 높이 평가할 것이다. 어쨌든 다들 고생하셨다.
이번 회의가 대통령 주재, 무려 11차 비상경제민생회의라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윤 대통령은 7월 초 국무회의에서 “직접 민생 현안을 챙기겠다”며 매주 회의를 주재하기로 했다. 실제로 그 직후인 7월 8일 취약층 지원책이 발표된 1차 회의를 시작으로 태풍과 영국·미국 해외 순방이 있었던 9월과 검찰 수사로 정국이 급랭한 10월을 빼고는 거의 매주 회의를 주재했다. 비상한 경제를 챙긴다고 매주 대통령 행사를 열었는데, 얼마나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졌을까.
대통령이 참여하는 행사에는 무게가 실린다. 정권의 메시지 관리나 대통령 이미지통합(PI)에도 중요하다. 물론 대통령이 현장을 찾아 회의를 주재하면 대통령이 경제를 챙긴다는 메시지는 준다. 하지만 장관이 나와도 그만인 자리를 대통령이 굳이 찾아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전세사기 대책이 나온 3차 회의는 국토부 장관이, 양재 하나로마트에서 열린 5차 회의는 경제부총리가, 경북 상주 스마트팜을 찾은 9차 회의는 농림부 장관이 주재해도 충분했다. 대통령의 시간과 관심이야말로 중요한 정책 자원인데, 그걸 낭비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초부터 청와대 지하별관에서 비상경제대책회의를 열었다. 이른바 ‘지하벙커회의’다, 위기가 진정돼 국민경제대책회의로 전환해서 열린 것까지 포함해 2012년 말까지 145차례 열렸고, 그중 62회는 현장에서 국민의 목소리를 들었다. 지금 정부도 MB 시절의 이 회의를 참고했을 것이다. 하지만 운영방식까지 가져온 것 같지는 않다. 자기미화 가능성이 있는 자서전이라는 한계를 염두에 두면서 이명박 전 대통령의 다음 같은 언급은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회의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의사결정의 효율성과 속도를 높이는 것이다. (중략) 정책이 올라오면 한밤중이든 다음 날 새벽이든 관계부처 장관들이 만나 대통령이 있는 자리에서 즉석에서 결정했다.”(『대통령의 시간』) 부처 간 이견을 대통령이 교통정리 해서 바로 실행하는 회의였다는 것이다.
실패한 소득주도 성장을 비롯해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을 게 많지만 지난 정부에서도 기억나는 대통령 행사가 있다. 2018년 8월 당시 문재인 대통령과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함께 서울시청 시민청에서 열린 인터넷전문은행 규제혁신 현장방문 행사에 참석했다. 정부가 ‘규제완화 1호 법안’으로 추진해온 인터넷은행법에 대통령이 힘을 실어준 것이다. 은산 분리(산업자본의 은행 의결권 지분 소유 제한)를 지키려는 당시 일부 여당(민주당) 의원의 반대를 넘어설 수 있었던 이유다.
전직 경제 장관 4명의 조언을 들어봤다. “비상경제민생회의가 별로 가슴에 와 닿지 않는다. 국민과 기업 등 경제주체 모두의 고통 분담을 요구해야 하는데 그런 리더십이 안 보인다.” “여야 대치 국면을 풀지 않으면 정부가 할 수 있는 건 거의 없다. 노동·연금개혁이나 구조개혁은 국민의 공감대와 국회의 동의가 있어야 하는데 지금 같아서는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다.” “자금시장의 불안은 초기에 잡아야 한다. 선제적이고 충분하게 지원해 시장을 안심시키지 않으면 나중에 더 큰 비용이 들어간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작은 건 그냥 부처에 맡기고 대통령은 큰 것을 해야 한다. 정말 중요한 건은 야당을 설득해야 얻어낼 수 있는데 그럴 노력조차 안 하는 건 문제 있다.”
비상경제민생회의는 부처 간 이견을 대통령이 책임 있고 권위 있게 교통 정리하는 자리로 만들어야 한다. 이를테면 한국은행이 자금시장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어디까지 나서야 할지 기획재정부·금융위와 한국은행의 이견이 있다. 시장은 급박하게 돌아가는데 이런 건 방치하고 생중계를 하는 무신경이 놀랍다. 대통령의 뜻이 강해 대통령실 수석들이나 장관들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공언했던 ‘분권형 책임장관제’가 이렇지는 않을 것이다. 생맥주나 생삼겹살이 신선해서 좋다지만 스포츠도 아닌 정부 행사를 생중계로 보는 게 그리 좋지는 않았다.
서경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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