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아이] 위기의 징후
대사관저로 들어가는 길은 차량들로 줄을 이었다. 입구에서 한참 떨어진 곳부터 PCR 검사 결과를 확인했다. 정장이나 제복 차림의 인사들이 한 명씩 안으로 들어갔다. 26일 저녁 베이징 주중대사 관저에서 ‘개천절·국군의 날 리셉션’이 열렸다. 우리나라 국경일을 기념해 외빈을 초청하는 연례 행사다. 올해는 중국 당대회 일정을 고려해 날짜가 뒤로 잡혔다.
한반도와 동남아시아를 담당하고 있는 우장하오(吳江浩·59) 외교부 부장조리(차관보)가 중국 측 주빈이었다. 축사에서 그는 중국의 사회주의 현대화 추진과 중화민족 부흥 기치를 언급하며 한국과 우호 관계를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했다. 시진핑 주석의 통치 철학을 강변하는 대목이 인상적이었다. 우리가 한·중수교 30주년을 앞세운 것과 대조를 이뤘다.
국군의 날 기념을 겸한 행사라 중국 군 인사의 참여 면면도 중요했다. 우리 국방부의 카운터파트는 중국 중앙군사위 국제군사협력실이다. 하지만 이날 협력실 인사들은 참석하지 않았다. 대신 군사과학원이 자리를 채웠다. 연구기관 인사로 급이 낮아졌다. 앞서 지난 6월 한·중 국방부는 기존 중국 북부전구에 이어 동부전구사령부 공군·해군과의 추가 핫라인 개설에 합의했다. 방공식별구역 침범 등 문제 발생시 즉각 협의할 수 있는 통로가 마련된 건 늦었지만 다행스런 일이다. 하지만 당 대회 이후 한·중간 첫 자리에 대한 중국 군 당국의 응대는 외교적 결례로 비칠 여지가 있었다.
현장에서 만난 추궈훙(邱國洪) 전 주한중국대사는 말을 아꼈다. 당 대회에 대한 평가를 묻자 “지도부에서 설명한 것과 의견이 다를 게 뭐가 있겠느냐”며 웃었다. 한·중관계 전망에 대해선 “지켜보자”고 했다. 지난해 마주쳤던 중국 관영매체 기자들은 어찌된 일인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반대로 교민들의 한숨 소리는 더 늘었다. 며칠 전 베이징 한인타운인 왕징의 대형상가 전체가 또 봉쇄됐다. 확진자 한 명이 다녀갔기 때문이란다. 당 대회 이후 혹시 했던 방역 완화에 대한 기대감은 이미 사라졌고 교민들은 탈출구를 모색하고 있었다.
지난달 초 중국 상무부가 개최한 외국인투자법 시행 관련 간담회에 참석했던 모 기업 인사는 “중국 정부가 명목상으론 외자기업의 중국 투자를 허용했지만 현실에선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를 대며 투자를 막는 경우가 많아 문제라는 지적을 했었다”며 “그런데 이번 당대회를 보니 법과 현실의 괴리가 더 커질 것 같다”고 했다. 시진핑 장기 집권 시대의 여파는 이미 우리에게 미치고 있다. 돌아오는 길이 씁쓸했다.
박성훈 베이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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