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경찰관 ‘1인 1권총’ 신중히 추진해야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7월 서울 마포경찰서 신촌지구대에서 ‘경찰관 1인 1권총 소지’의 필요성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권총 한 정을 서너 명이 공유해 사용하는 현행 방식이 아닌 지구대·파출소 근무자 5만여명 전원에게 38권총을 지급해 개인별로 소지하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경찰청은 지구대·파출소에 지급된 약 1만6300정 이외에 경찰서 무기고에 보관해온 1만여 정을 지구대·파출소로 최근 재배치하고 있다. 부족분 2만4700여 정은 5년간 매년 4900여정씩 새로 구입해 추가 보급할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가 이렇게 200억원 가까운 예산을 들여서 현장 대응 역량 강화 계획을 결정한 배경에는 지난해 인천에서 발생한 층간 소음 흉기 난동 같은 사건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공권력 강화 차원이 아닌가 싶다. 당시 현장에 충돌한 경찰관이 적극적으로 총기를 사용해 칼부림을 막았다면 일가족 3명의 피해를 막을 수도 있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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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 검토 지시에 총 구입 확대
총이 부족해 흉악범 느는 건 아냐
적법한 물리력 행사부터 지원을
」
하지만 최근 국회 입법조사처는 총기 확대 소지가 흉악 범죄를 감소시킨다고 보기 어렵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경찰청 국감에서도 총기 대신 한국 치안 상황에 맞는 다른 장비의 보급이 적절하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등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은 미국 등과 달리 총기 소유가 법으로 허용되지 않기에 흉악범이라도 총을 들고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거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전체 경찰의 물리력 사용 중 살상 무기인 권총 사용은 0.3% 정도에 그친다. 범죄 관련자에 대한 제압의 99.7%가 경찰관의 신체적 물리력, 수갑, 테이저건을 통해 이뤄진다.
실제로 범인 검거 현장에서 경찰의 총기 사용 건수도 2019년 6건, 2020년 9건, 2021년 2건이 전부였다. 개인 총기로 영점 조정이 안 돼 범죄자를 명중시키지 못하거나 총이 부족해서 총을 못 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만약 경찰의 이러한 총기 과소 사용 자체가 문제라면 그 원인은 다른 데 있다. 경찰관이 적법한 물리력을 행사했더라도 민사와 형사상 법률 분쟁이 생길 경우 경찰 조직 차원의 제도적 지원이 없기 때문이다. 소송 관련 비용 지원은 고사하고 경찰관 개인이 홀로 소송에 대응하며 시간·비용·책임을 모두 떠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부담감과 두려움 때문에 일선 경찰관들 사이에서 권총 사용법은 ‘쏘는 게 아니라 던지는 것’이라는 황당한 인식이 퍼져 있다고 한다.
정부가 치안 현장에 총기 보급을 늘려 권총 사용을 독려할 생각이라면 먼저 할 일이 있다. 시·도 경찰청마다 서너 명에 불과한 재판 담당 송무관 수를 대폭 확충하고, 소송 비용 지원 예산도 함께 편성해야 한다. 총기는 현장에 확대 보급해 놓았는데 기존처럼 아무도 사용하지 않으려 한다면 윤 대통령의 이번 지시는 세금만 낭비한 꼴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1인 1 총기’ 방침의 긍정적·부정적 측면을 한 번 더 신중하게 고려해봐야 한다. 총기는 실제 사용 빈도가 낮더라도 물리력 사용으로 대표되는 정부 공권력의 상징이 될 수 있다. 경찰은 이러한 물리력을 합법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법적으로 부여받았다는 점에서 총기 지급의 확대가 공권력에 대한 국민의 경각심 및 경찰관 개개인의 법 집행 책임감을 고취할 수는 있다. 총기 확대의 긍정적인 점이다.
다른 측면에서 보면 치안 환경 등 지역 특성보다 과잉 무장된 지구대와 파출소가 등장해 경찰이 군사화하는 것으로 비치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영국의 경우 대부분의 경찰관이 총기를 휴대하지 않고 순찰 업무를 하는 것도 살상 무기인 총보다는 경찰 권위에 대한 시민의 동의가 경찰 활동에 훨씬 중요하다는 철학적 고민 때문이다.
따라서 총기 소지를 확대하더라도 경찰의 지역 주민 친화적 활동도 함께 시행해야 한다. 여전히 걱정도 남는다. 1인 1총기 소지 시책을 기계적으로 적용할 경우 현장 출동 경찰관이 다른 무기로 범죄자를 제압 가능한 상황에서도 무작정 권총을 사용하게 되는 경우가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장 시뮬레이션에 입각한 과학적 교육 훈련을 사전에 강화해 총기 사용에 따른 불상사가 생기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해야 할 것이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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