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위기 시대, ‘친환경 K팝’을 꿈꾸다

이은호 2022. 10. 27.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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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날을 맞아 하이브 사옥 앞에서 지속 가능한 실물 음반 문화를 요구하는 케이팝포플래닛 활동가들.   사진=박효상 기자

K팝 산업이 ‘탄소 배출 천덕꾸러기’라는 오명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과소비를 조장하는 마케팅으로 비판받던 K팝 기획사들이 최근 친환경 마케팅을 잇달아 시도하고 있다. 윤리 소비를 지향하는 K팝 팬들이 기획사에 기후 위기 대응책을 촉구하면서다. 업계에서는 “기획사, 가수, 팬 모두 기후 위기를 심각한 문제로 인식하고 움직이기 시작했다”며 “언론과 정부도 함께 고민하며 힘을 실어줘야 할 때”라는 주장이 나온다.

글로벌 K팝 팬들이 기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설립한 단체 케이팝포플래닛은 국회기후변화포럼, 환경운동연합과 함께 27일 서울 국회의사당 국회의원회관에서 ‘K팝! 지속가능한 탄소중립 사회를 위한 역할과 개선 과제’ 세미나를 열었다. K팝 산업의 기후 위기 대응 동향과 개선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현장에 참석한 이다연 케이팝포플래닛 활동가, 강예리 국회기후변화포럼 청년위원회 위원장, 최예지 환경운동연합 활동가 등은 K팝 음반 대량 구매로 발생하는 폐기물과 음원 스트리밍에 사용되는 화석 연료 등을 꼬집으며 기획사와 음원 스트리밍 업체에 대안을 요구했다.

‘K팝! 지속가능한 탄소중립 사회를 위한 역할과 개선 과제’ 세미나.   사진=이은호 기자

음반 판매 부추기는 기획사, 쓰레기는 나몰라라?

실물 음반 과잉 소비로 인한 폐기물 발생 문제는 K팝 산업의 오랜 골칫거리다. 써클차트(옛 가온차트)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6000만장 넘는 실물 음반이 팔렸다. 작년 한 해 팔린 실물 음반 수량을 앞지른 수치다. 문제는 실물 음반 패키지에 포함된 CD, 포토카드, 포토북 등이 재활용되지 않는 폐기물이라는 점이다. K팝 기획사들은 음반 패키지에 팬사인회 응모권과 무작위 포토카드를 포함시켜 팬들의 중복 구매를 유발하면서도, 실물 음반 과잉 소비로 인한 폐기물 배출은 제대로 책임지지 않고 있다. 지난 16일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하이브 SM엔터테인먼트 YG엔터테인먼트 등 K팝 기획사들이 최근 4년 간 실물음반 플라스틱 쓰레기 처리를 위해 정부로부터 부과 받은 세금은 3억4000여만원에 불과했다.

최예지 환경운동연합 활동가는 “매해 수천만 장의 음반 쓰레기가 태워지고 매립될 것을 생각하면, 여기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양은 얼마나 될지 상상도 할 수 없다”면서 “음반을 단순히 친환경적으로 제작한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각 엔터사와 음반 차트 운영사가 소비 조장 마케팅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물 음반 패키지 속 ‘미공포’(미공개 포토카드)와 무작위 포토카드 등이 소비자보호법 제3조(물품 및 용역을 선택함에 있어 필요한 지식 및 정보를 제공받을 권리)에 어긋나고 사행성을 조장할 우려가 있다고도 주장했다. 최 활동가는 “여러 기획사를 한꺼번에 관리·감독하려면 법과 제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K팝 팬덤 ‘스밍 전쟁’, 탄소 폭탄으로 돌아온다

멜론, 지니 등 음원 스트리밍 업체들도 온실가스 배출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이다연 케이팝포플래닛 활동가는 “한국 스트리밍 업체들이 사용하는 데이터 센터는 대부분 화석 연료에서 전력을 얻는다. 이 과정에서 엄청난 탄소가 배출된다”면서 “매체 스트리밍 1시간으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 양은 플라스틱 빨대 40개를 쓰는 것과 같다”고 꼬집었다. 주요 스트리밍 업체의 경우 모회사 차원에서 탄소중립 선언을 내놓긴 했으나, 이를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에 어떻게 적용할지는 불투명한 상태다. 2018년 재생에너지 100% 전환을 이룬 애플뮤직, 매년 기후행동 보고서를 발표해 자사 온실가스 배출 현황과 향후 계획을 공개하는 스포티파이 등 해외 업체와 비교하면 갈 길이 멀다.

케이팝포플래닛이 벌인 ‘멜론은 탄소 맛’ 캠페인 홍보 사진. 케이팝포플래닛

이에 케이팝포플래닛은 최근 한국 음원 스트리밍 업체들을 상대로 2030년 재생에너지 100% 사용을 약속하고, 현재 데이터센터에서 사용하고 있는 재생에너지 비율을 투명하게 공개할 것을 요구하는 ‘멜론은 탄소 맛’ 캠페인을 펼쳤다. 이다연 활동가는 “캠페인 시작 한 달 만에 53개국에서 1만명 넘는 K팝 팬들이 청원에 참여했다”며 “한국 IT 기업들은 기후 행동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기업 입장에선 ‘재생 에너지가 비싸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2040년까지 카본 네거티브(온실가스 순 배출량 0 이하)를 달성하겠다고 밝힌 네이버 측 관계자는 “재생 에너지 발전 단가가 낮은 미국과 달리, 한국은 재생에너지 발전소 생산량이 저조하다. 때문에 재생에너지로 전환할 경우, 기업이 부담하는 발전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한다”고 설명했다.

“변하지 않을 수 없다” 기획사들 속사정

SM엔터테인먼트, JYP엔터테인먼트 등 대형 기획사들이 최근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에 관심을 쏟는 모습은 고무적이다. SM엔터테인먼트는 지난 7월 유엔글로벌콤팩트(UNGC)에 가입하고 ESG 경영 강화에 나섰다고 밝혔다. JYP엔터테인먼트도 비슷한 시기 ESG보고서를 발간하고 한국형 RE100(재생에너지 100%)을 이행했다. YG엔터테인먼트와 하이브는 최근 친환경 음반과 디지털 플랫폼 음반을 각각 선보였다.

김효실 한겨레 기자는 “케이팝포플래닛 등 K팝 팬들의 단체 행동과 2030년 시행되는 코스피 상장사 ESG 의무공시로 인해 대형 기획사들이 변하지 않을 수 없는 분위기”라며 “민간에서 자발적으로 (기후 위기에 대응하려고) 노력하는 점은 긍정 평가할 만하다”고 짚었다. 안미란 문화체육관광부 대중문화산업과장은 “음악 산업이 기후 행동에 나서도록 지원하는 방안과 업계 동참을 주문하는 역할을 확대해 나가야겠다. (기획사뿐 아니라) 일반인의 공감과 참여를 이끌기 위해 음악 업계와 함께 고민하고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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