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해외 도피범 공소시효 정지 규정 재판시효에는 적용 안 돼”… 첫 판결

최석진 2022. 10. 27.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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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동 대법원.

[아시아경제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해외로 도피한 범죄자의 공소시효를 정지시키는 형사소송법 조항은 범죄행위 종료시부터 진행되는 일반적인 공소시효에 적용될 뿐, 기소 후 판결 확정 없이 일정 기간이 지났을 때 공소시효가 완성된 것으로 간주하는 이른바 재판시효(의제공소시효)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첫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특정경제범죄법상 사기 혐의로 기소된 주류도매업자 A씨의 상고심에서 면소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7일 밝혔다.

재판부는 "원심이 판결의 확정 없이 공소가 제기된 때로부터 15년이 경과해 구 형사소송법 제249조 2항에서 정한 시효가 완성됐다는 이유로 피고인에 대해 면소를 선고한 1심 판결을 그대로 유지한 것은 정당하다"며 "원심판결에 상고이유 주장과 같이 형사소송법 제253조 3항의 적용 범위에 관한 법리 등을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없다"고 이유를 밝혔다.

이번 사건에 적용된 개정 전 형사소송법 제249조(공소시효의 기간) 2항은 '공소가 제기된 범죄는 판결의 확정이 없이 공소를 제기한 때로부터 15년을 경과하면 공소시효가 완성한 것으로 간주한다'는 조항이다.

'기소된 때'를 기산점(기간 계산의 시작 시점)으로 하며 '범죄행위 종료시'를 기산점으로 진행되는 일반적인 공소시효와 구별해 실무상 '재판시효' 내지 '의제공소시효'로 불린다.

해당 조항은 2007년 12월 개정돼 25년이 경과해야 시효 완성이 의제되는 것으로 바뀌었다.

형사소송법 제253조(시효의 정지와 효력) 3항은 '범인이 형사처분을 면할 목적으로 국외에 있는 경우 그 기간동안 공소시효는 정지된다'는 조항으로 1995년에 신설됐다.

A씨는 1995년 유흥주점 인수대금 등을 마련하기 위한 목적으로 피해자들로부터 5억6000만원을 편취한 혐의로 1997년 8월 재판에 넘겨졌다.

A씨는 기소된 이후 1997년 9월 12일부터 1998년 4월 14일까지 5차례에 걸쳐 미국으로 출국했다가 다시 입국하기를 반복하다가 1998년 4월 28일 마지막으로 미국으로 출국한 뒤 입국하지 않았다.

결국 1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없는 상태에서 재판을 진행한 뒤 2020년 4월 3일 공소시효가 완성됐다는 이유로 면소를 선고했다.

재판에서는 처벌을 면하기 위해 해외로 도피한 범인에 대해 공소시효를 정지시키는 형사소송법 제253조 3항이 기소된 뒤 판결 확정 없이 일정한 기간이 지났을 때 공소시효가 완성된 것으로 간주해주는 같은 법 제249조2항에도 적용되는 것인지가 쟁점이 됐다.

검사는 ▲기소된 뒤 처벌을 면하기 위해 해외로 도피한 피고인도 처벌할 필요성이 있고 ▲기소되지 않은 피의자가 해외로 도피한 경우에는 공소시효가 정지되는 반면, 보다 혐의가 뚜렷해 이미 기소된 피고인의 경우에는 재판시효가 정지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은 형평에 반하며 ▲해외 도피범에 대한 공소시효 정지를 규정한 형사소송법 제253조 3항이 구 형사소송법 제249조 제2항보다 나중에 신설된 조항인 만큼 '신법 우선의 원칙'에 따라 당연히 재판시효에도 적용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1심 재판부는 "공소제기 후에 처벌을 모면하기 위해 국외로 도피한 피고인을 처벌할 필요가 있음은 부인할 수 없고, 또한 공소제기 전에 국외로 도피한 피의자의 경우와의 형평을 고려하면 공소제기 후에 국외로 도피한 피고인에 대해서도 '공소시효완성 간주'(재판시효)의 시효를 정지할 필요성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그러나 피고인에 대한 처벌의 필요만으로 공소시효 정지를 규정한 형사소송법 제253조 3항이 구 형사소송법 제249조 2항에 적용된다고 해석하는 것은 형사처벌에 관한 법규를 피고인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지나치게 유추하거나 확장해석하는 것으로서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어긋날 우려가 있다"며 검사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그와 같은 판단의 근거로 ▲형사소송법 제253조 1항, 2항과의 균형과 ▲구 형사소송법 제249조 2항의 규정 형식, 등 두 가지를 들었다.

먼저 재판부는 해외 도피범에 대한 공소시효 정지를 규정한 형사소송법 제253조 3항은 '시효의 정지와 효력'이라는 표제 아래 같은 조 1항, 2항과 함께 규정돼 있기 때문에 적용 범위를 판단할 때 앞에 배치된 1항과 2항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즉 제253조 1항과 2항은 범인 또는 공범자에 대한 공소 제기로 인한 공소시효 정지를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만약 이들 조항이 구 형사소송법 제249조 2항에 적용된다고 보면 이미 공소가 제기된 범죄자의 공소시효가 본인 또는 공범자에 대한 공소 제기로 정지된다는 모순이 생긴다는 것.

또 재판부는 법 제249조 2항의 재판시효는 '공소시효가 완성된 것으로 간주한다'는 법률효과가 생기기 위한 법률요건으로 '공소가 제기된 범죄가 판결의 확정 없이 공소를 제기한 때로부터 15년이 경과할 것'이라고 정하고 있을 뿐 공소시효의 완성 여부와는 무관한 제도이기 때문에 공소시효의 정지 여부와도 무관하다고 판단했다. 규정의 형식상 공소시효 정지에 관한 법 제253조가 적용될 여지가 없다는 의미다.

2심 재판부 역시 이 같은 1심 재판부의 판단이 옳다고 봤다.

재판부는 "공소시효의 정지를 규정한 형사소송법 제253조 3항은 범죄행위의 종료 시부터 공소제기 시까지의 기간에 대해 적용되는 것인 반면, 공소시효완성 간주를 규정한 구 형사소송법 제249조 2항은 공소가 제기된 때에 비로소 공소시효완성 간주의 시효가 진행하는 것이므로, 양 조항은 그 적용 시점을 달리하는 것이다"라며 "따라서 형사소송법 제253조 3항이 구 형사소송법 제249조 2항보다 나중에 신설된 규정이라는 이유만으로 구 형사소송법 제249조 2항보다 우선 적용돼야 한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대법원의 판단도 같았다.

재판부는 "형사소송법 제253조 3항의 입법 취지는 범인이 우리나라의 사법권이 실질적으로 미치지 못하는 국외에 체류한 것이 도피의 수단으로 이용된 경우에 그 체류기간 동안은 공소시효가 진행되는 것을 저지해 범인을 처벌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형벌권을 적정하게 실현하고자 하는 데 있다"고 전제했다.

이어 "위와 같은 법 문언과 취지 등을 종합하면, 형사소송법 제253조 3항에서 정지의 대상으로 규정한 '공소시효'는 범죄행위가 종료한 때로부터 진행하고 공소의 제기로 정지되는 구 형사소송법 제249조 1항의 시효를 뜻하고, 그 시효와 별개로 공소를 제기한 때로부터 일정 기간이 경과하면 공소시효가 완성된 것으로 간주된다고 규정한 구 형사소송법 제249조 2항에서 말하는 공소시효는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재판부는 "따라서 공소제기 후 피고인이 처벌을 면할 목적으로 국외에 있는 경우에도, 그 기간 동안 구 형사소송법 제249조 2항에서 정한 기간의 진행이 정지되지는 않는다"고 결론 내렸다.

대법원 관계자는 "국외 도피로 인한 공소시효정지 규정이 형사소송법 제249조 2항의 시효(재판시효)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을 명시적으로 확인한 첫 번째 사례로서, 형사법 영역에서 피고인에게 불이익한 방향으로의 유추해석이나 확장해석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죄형법정주의 원칙을 강조한 판결"이라고 이번 판결의 의미를 밝혔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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