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했던 '된장 손주'가 조선의 4번타자가 되기까지
[이준목 기자]
▲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한 장면. |
ⓒ tvN |
인생을 살면서 종종 믿을수 없는 일이 벌어질 때 '해가 서쪽에서 떴나'라는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그것은 우연이 아니라 누군가의 노력과 열정으로 만들어낸 기적일지도 모른다. 10월 26일 방송된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166회는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 특집으로 은퇴한 야구선수 이대호, 배우 진선규, 모델 배유진, 주식 투자가 최원호가 출연하여 부단한 노력 끝에 각자의 인생에 경이로운 순간을 만들어낸 이야기를 들려줬다.
배유진은 한국인 어머니와 나이지리아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 출신 6년차 모델이다. 배유진은 이국적인 외모 때문에 외국인으로 자주 오해를 받지만 주민등록증도 있는 엄연한 '한국인 모델'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배유진은 어릴 때부터 SNS에서 유명 모델들의 화보를 따라하다가 한 매거진의 연락을 받고 중학교 2학년 때 모델로 처음 데뷔하게 됐다. 데뷔 7개월 만에 모델들의 꿈의 무대인 서울 패션위크에서 14개 브랜드의 무대를 누비며 슈퍼루키의 탄생을 알렸다.
롱다리가 트레이드 마크인 배유진은 176cm의 장신에 다리 길이만 120cm에 이르는, 모델로서 축복받은 신체조건을 가졌다. 별도의 트레이닝이나 경험없이 모델에 입문했음에도 배유진은 오히려 첫 워킹에서 전문가들로부터 '자유롭게 걷는다'는 극찬을 받을 만큼 타고난 모델 DNA를 입증했다.
아버지와 연락이 끊기고 홀어머니 밑에서 성장한 배유진은 모델 생활을 하게 되면서 가장 큰 소득으로 "스스로 단점투성이인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그게 다 장점이었다"는 소감을 밝혔다. 어린 시절부터 혼혈인이고 이국적인 외모 때문에 배유진은 인종차별적인 말들을 자주 들어야 했고 어머니 역시 상처를 받았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배유진은 "그럴수록 더 성장할 수 있는 너 자신에게 집중해야지, 그런 말에 일일이 신경쓰면서 아파하면 결국 너만 손해다"는 어머니의 강한 가르침을 받고 자랐다고 고백했다. "엄마는 되게 훌륭하고 멋있는 분"이라고 자부심을 드러낸 배유진은 영상편지를 통하여 "나 엄마 진짜 많이 사랑해. 앞으로 행복하게 잘 살자. 내가 효도 많이 할게요"라고 애틋한 마음을 전했다.
주식에 투자하여 수십억 자산가가 된 주식고수 최원호씨가 등장했다. 화제의 웹툰 <외모지상주의>의 작가 박태준의 장인이기도 하다. 사업 실패 후 한때 택시운전과 토스트 장사, 그릇 방문판매 등 여러 일을 전전하며 고생을 겪었던 최원호는 어느 정도 수입이 모이면서 1995년부터 본격적으로 주식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최원호는 IMF 시대에 주가가 크게 폭락한 틈을 타 삼성전자 주식을 대거 사들였다. 우연이 아니라 철저한 공부와 연구를 통한 전략적 선택의 결과였다. 최원호는 앞으로는 컴퓨터 시대가 올 것이라 예측하고 당시 유일한 기술주였던 삼성전자 주식의 성장 가능성을 꿰뚫어봤다.
최원호는 "사람들은 주식을 사고팔고해서 차익이 쌓이는 걸로 안다. 주식은 아무리 짧아도 5년을 기다려야 한다. 부동산은 10~20년을 기다리면서도 클릭 한 번에 팔 수 있는 주식은 너무 쉽게 사고팔려고 한다"며 주식투자의 핵심 본질을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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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진선규는 영화 <범죄도시> <극한직업> <공조2> 등에서 명품조연이자 신스틸러로 대중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한예종 연기과 졸업 이후 2004년부터 대학로 연극무대에서 경력을 시작한 진선규는 오랜 무명생활을 거쳤으나, 2017년 <범죄도시>에서의 강렬한 악역연기로 그해 청룡영화상 남우조연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비상했다.
당시 청룡영화상에서의 수상 소감은 많은 화제가 됐다. 상을 들고 눈물을 흘리며 "상 받을 줄 알았으면 청심환 하나 더 먹고 오는 건데", "저 멀리 우주에 있는 좋은 배우라는 목표를 향해서 조금씩 나아가는 배우가 되겠다" 등 영화에서의 악역 이미지와는 180도 다른 순수하고 따뜻한 진선규의 모습은 뭉클한 감동을 남겼다.
진선규는 <범죄도시> 이후 주가가 높아지며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는 조언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갑자기 물이 들어왔는데 갑자기 저으면 안 될 것 같다"며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고. "아직 어디로 가야할지 방향도 모르는데 무작정 노만 젓다보면 뱅글뱅글 돌거나 아예 다른 방향으로 갈 수도 있다. 그래서 '노 젓기 전에 지도 한 번 다시 보자'는 결론을 내렸다"고 고백했다.
진선규는 당시 갑자기 시선이 주목되고 자신의 위치에 달라졌던 모습이 "사실 무서웠다"고 남모를 고민을 털어놨다. 유재석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그때 정신차려야 한다. 다들 나를 가만두지 않으니까"라며 진선규의 이야기에 공감했다. 평소 직언을 잘하는 아내인 배우 박보경은 시상식에서 "정신차려"라고 남편에게 뼈있는 조언을 해주기도 했다고.
무명 시절 가난했던 배우 부부는 생활고에 시달리며 쌀을 살 돈조차 없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어떤 힘든 상황에서도 '괜찮아'라며 쿨하게 의연함을 잃지 않았던 아내 덕분에 어려움을 극복하고 진선규는 오롯이 배우의 길에 집중할 수 있었다. 진선규는 "과거를 생각하면 힘들었다기보다 그런 아내와 동료들이 있었기에 즐거운 연기를 놓치지 않고 해나갈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8년간 육아와 내조에 헌신했던 아내 박보경도 최근 다시 배우활동을 재개하며 드라마 <작은 아씨들>의 악역 등 여러 작품에서 활발하게 활약중이다. 박보경은 "내가 연기를 좋아했던 사람이구나. 하고 싶었구나 느꼈다"고 밝히며 "요즘 아이가 '엄마도 꿈이 배우였어?'라고 물어보더라. 이제는 '응, 엄마도 꿈이 배우였어. 그리고 지금 꿈을 이뤄나가려고 노력하고 있어'라고 말해줄 수 있어서 감사하다"며 눈시울을 글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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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4번타자' 이대호가 이날의 마지막 자기님으로 등장했다. 한미일 프로야구를 모두 경험하고 KBO리그에서만 통산 1971경기 타율 .309, 2199안타 374홈런 등 찬란한 업적을 남긴 이대호는 2022시즌을 끝으로 31년의 야구인생을 정리하고 지난 10월 8일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이대호는 "은퇴하고 3일은 자다 일어나서 울기를 반복했는데 이제 좀 적응이 됐다.처음엔 진짜 은퇴한 건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좀 허전하더라"고 밝히며 은퇴 새내기로서의 후유증을 밝혔다. 이대호는 은퇴 시즌에도 타율 .331, 179안타 23홈런 101타점의 놀라운 기록을 남겼다. 불혹의 선수라고는 믿기 힘든 활약에, 우스개 반-아쉬움 반으로 참치마요-치킨마요에 이은 '이대호 은퇴하지 마요'라는 대한민국 3대 마요의 주인공이라는 누리꾼들의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이대호는 "더 뛰려고 했으면 뛸 수 있었지만, 나이가 들다보니 이제 조금 힘든 감도 있고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결심했다, 후배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었다"며 은퇴를 번복하지 않은 이유를 밝혔다.
은퇴 시즌, 떠나는 레전드를 상대하는 후배 투수들이 이대호를 예우하는 모습은 감동을 안겼다. NC 에이스 구창모는 타석에 선 이대호를 상대하기 전 모자를 벗어 정중하게 인사를 하기도 했고 이대호도 웃으며 답례했다. 구창모는 "같이 경기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다"며 선배에 대한 존경심을 드러냈다. 하지만 이대호는 "인사를 하고나서 냅따 몸쪽으로 공 세 개를 던져버리더라. 깔끔하게 삼진먹고 들어갔다"는 뒷이야기를 전하며 폭소를 자아냈다.
이대호는 야구를 처음 시작하게 된 계기가 추신수 때문이었다고 밝혔다. 이대호가 있던 초등학교로 전학을 온 추신수가 또래보다 덩치 큰 이대호를 보고 야구를 하자고 권유했다고. 같은 초등학교-같은 반에 있던 동갑내기 친구가 둘 다 한국야구를 대표하는 슈퍼스타로 성장하는 동화같은 스토리가 이루어졌다. 이대호는 메이저리그 경기에서 추신수를 만났던 순간을 떠올리며 "너무 신기했다"고 남다른 감회를 드러냈다.
이대호는 경남고 시절 투수로 명성을 떨쳤지만 롯데에 입단하며 타자로 전향했다. 프로에 와서 뒤늦은 타자 전향은 쉽지 않았다. 이대호는 팀성적부진-감독교체-무릎 부상 등을 겪으며 힘든 시간을 보냈다. 어쩌면 이대호의 야구인생을 통틀어 가장 암울했던 시간이었다. 하지만 이대호는 "계속 이기고 싶었고 지기 싫었던 마음이 이때까지 저를 있게 했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이대호는 해마다 꾸준히 성장을 거듭했고 2006년에는 타격 트리플크라운, 2010년 타격 7관왕과 9경기 연속 세계 신기록 등을 달성하며 한국야구를 대표하는 타자로 자리잡았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는 국가대표로 한일전에서 투런홈런을 날리는 등 맹활약으로 금메달까지 목에 걸었다.
이대호는 타석에서는 항상 감정표현을 자제하고 덤덤한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 한일전에서 홈런을 때리고도 세리머니를 하지 않은 이유에 대하여 "선배들이 너무 좋아하면 실력이 안 되는데 이겨서 기뻐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하더라. 그래서 이기는 것이 당연하다는 표정을 짓는 게 습관이 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내심으로는 화려한 세리머니를 하는 후배들이 부러웠다고. 은퇴 시즌에 만루홈런을 치고 모처럼 빠던(배트플립)을 시도했던 이대호는 방망이를 너무 위로 던져서 하마터면 맞을까봐 움찔하느라 생각만큼 멋있게 세리머니를 하지 못했던 일화가 후회된다며 웃음을 자아냈다.
완벽한 타자로 꼽히는 이대호의 유일한 약점은 거구에 걸맞게 도루였다. 연고지인 부산에서는 말도 안되는 소리가 나왔을 때 '이대호 도루하는 소리하고 자빠졌네'라는 격언이 탄생하기도 했다. 또한 징크스에 예민한 이대호는 그날 좋은 타격감을 발휘한 방망이는 두 번 정도 쓰고나면 저금하듯 따로 보관해놓고 다른 방망이로 교체한다고 밝혔다.
이대호는 한국뿐만 아니라 상위리그로 꼽히는 일본과 미국까지 진출하여 경쟁력을 증명했다. 이대호는 메이저리그 도전 시절 주전급을 제외하고 100명이 넘는 선수들이 2~3자리를 놓고 경쟁하던 시기를 회상하며 "한 5일 지날 때마다 10명씩 선수들이 사라진다. 스프링캠프가 끝나고 감독이 살아남았다고 악수를 하더라. 그렇게 많은 경험을 했는데 엔트리에 들었다고 축하받는 게 그렇게 기분이 좋은 줄 몰랐다"며 오랜만에 느껴본 경기 출전의 소중함을 회상했다. 미국 도전은 비록 1년 만에 끝났지만, 이대호는 '한미일에서 모두 두 자릿수 홈런을 거둔 최초의 선수'라는 타이틀을 남겼다.
이대호는 화제가 됐던 감동적인 은퇴투어를 떠올렸다. "프로선수가 되고 독하게 살다보니 눈물을 안 흘렸는데 감정이 이상하더라"고 고백했다. 이대호는 올스타전에서도, 그리고 사직구장에서의 마지막 경기에서도 눈물을 흘렸다. 불우했던 가정환경과 가난을 극복하고 최고의 선수로 올라서기까지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이대호의 기억을 스쳐지나갔다. 절친한 후배 강민호와 친구 추신수는 이대호의 은퇴에 눈물을 흘리며 복잡한 감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2022년 10월 8일, 바로 이대호의 은퇴경기가 열린 날은 부친의 기일이이었기에 더욱 특별한 감회로 다가왔다. 이대호는 마지막 경기에서 경남고 시절 이후 최초로 투수로 깜짝 등판하는 이벤트를 선물했고, 대타로 나선 LG의 마무리투수 고우석을 투수 앞 땅볼로 잡아내고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 홀드를 기록하는 명장면을 연출했다.
또한 이대호는 이날 경기를 마치고 전설 최동원에 이어 두 번째로 롯데 구단의 영구결번(10번)이 됐다. 이대호는 농반진반으로 "앞으로 제 번호를 쓸 수 있는 사람이 딱 한 명 있다. 우리 아들이 야구를 해서 롯데에 입단한다면"이라는 조건을 달며 미소를 지었다.
이대호의 야구인생에서 역시 할머니의 존재를 빼놓을 수 없다. 이대호는 일본프로야구 시절 할머니의 존함인 '오분이'를 의미하는 25번을 달기도 했다. 마지막 은퇴사에서도 이대호는 할머니를 언급하며 "하늘에 계신 할머니, 늘 걱정하던 손자 대호가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박수를 받고 사랑받으면서 떠나는 선수가 됐다"고 고백하면서 눈물을 쏟은 장면은 뭉클한 감동을 자아냈다.
이대호는 어릴 적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가 재가하면서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할머니는 시장에서 장사를 하면서 이대호를 키웠고, 전당포에 금가락지를 맡겨 돈을 빌리고 갚기를 반복하면서도 손자의 뒷바라지에 헌신하며 일생을 바쳤다. 이대호는 "시장에서 할머니는 '된장파는 할머니' 저는 '된장 손주'로 불렸다. 제가 야구를 하면서 상을 받아오면 자랑하면서 기분 좋아하셨던 게 생각난다"며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전했다.
안타깝게도 할머니는 이대호가 프로로서 성공하는 모습을 보지 못 하고 고등학교 2학년 때 세상을 떠났다. 할머니에게 좋은 집, 좋은 음식으로 보답하고 싶었던 이대호는 성공해야 하는 이유를 잃고 한동안 방황하기도 했다고. 이대호는 은퇴사를 통하여 "할머니한테 감사하다는 표현을 많은 분들 앞에서 한 번은 꼭 하고 싶었다"고 고백했다.
할머니의 빈 자리를 채워주며 이대호의 성공을 이끌어준 또 한 명의 소중한 은인은 바로 아내 신혜정씨였다. 이대호는 "아내가 20년동안 새벽까지도 자신을 기다리지않고 먼저 자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일이 없다"며 야구선수의 아내로 살아야 했던 고충을 묵묵히 견뎌준 아내에게 진심어린 고마움을 전했다.
이대호는 야구선수로서 부와 명예를 누린 만큼 기부 활동에도 적극 동참했다. 이대호는 자신의 후원으로 수술을 받고 건강을 되찾은 팬이 경기장에 찾아와서 감사를 전하는 모습에 울컥했던 일화를 떠올리며 "내가 참 잘했구나. 앞으로 더 열심히 해야지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부산의 아들'로 불렸던 이대호의 은퇴식이 끝나고도 많은 팬들은 사직구장에서 이대호의 응원가를 열창하여 아쉬움을 달랬다. 이대호는 끝내 롯데 팬들에게 우승을 선물해주지 못한 미안함과 감사함을 동시에 전하며 "많은 분들이 저를 사랑해주시는 것을 은퇴투어하면서 많이 느꼈다. 사랑받은 만큼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좋은 일을 많이 할 수 있도록 잘 살아나가겠다"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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