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듀테크에 '꽂힌' 후보자, 학교는 상점이 될 지도 모른다
[신정섭 기자]
지난 6월 국무회의에서 반도체 인력 집중 양성을 주문하면서 "교육부도 경제부처처럼 해야 한다"라고 말했던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9월 29일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을 주도했던 이주호 한국개발연구원 정책대학원 교수를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디지털 대전환에 걸맞은 미래인재 양성과 교육격차 해소'라는 자신의 정책 구상을 실현할 적임자로 그를 낙점한 것으로 보인다.
이주호 후보자는 지난해 6월 자신이 이사장을 맡았던 아시아교육협회 등이 주관한 '2021 하이 터치 하이 테크(High Touch High Tech) 글로벌 컨퍼런스'에서 'AI로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대체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에듀테크를 활용해 수시로 학생을 평가하고 그 결과를 누적해 대입에 활용하면 된다는 관점이다.
▲ 윤 정부 세 번째 교육부 장관 후보자, 이주호 교수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 9월 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국교육시설안전원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첫 출근을 하며 후보자 지명 소회를 밝히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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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인식이 얼마나 위험한지 따져보기에 앞서, 그가 이명박 정부 시절 교과부 장관으로서 한 일을 되돌아보자. 경제학자 출신인 이주호에겐 공교육을 황폐화하고 아이들을 무한경쟁의 고통으로 몰아넣은 장본인이라는 평가가 뒤따른다. 줄 세우기 일제고사가 그의 '첫 작품'이다. 부작용은 심각했다. 오죽하면 박근혜 정부조차도 일제고사 대비 문제 풀이 파행 사례가 속출하자 초등 학업성취도평가를 전격 폐지했겠는가.
자사고는 그의 '두 번째 작품'이다. 수요자의 학교 선택권 보장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은 귀족 학교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학교 양극화를 부추겼다. 대학에 이어 고등학교마저 서열이 매겨지면서, 거의 모든 학생이 다니는 일반고는 실력 없는 학교로 낙인찍혔다. 1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으나, 고교 서열화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에게 전가되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학생인권 탄압은 그의 '세 번째 작품'이다. 일부 시도의 학생인권조례에 재의를 요구하는 한편, 이를 무력화하기 위해 두발 및 복장 단속, 소지품 검사 등을 합법적으로 시행하는 내용의 초중등교육법시행령 개정을 추진하기도 했다. 교원평가 법제화 시도는 '덤'이었다.
미래 교육 역량은 AI나 스마트 기기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최근 그가 제시한 미래 교육 청사진(?)에 대해 논해보자. 우선, AI로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대체한다는 그의 주장은 위험해 보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교육정보 기술(에듀테크)에 대한 맹신에서 비롯한 아이디어 수준의 설익은 정책 스케치다.
에듀테크를 활용해 수시로 학생을 평가하고 그 결과를 누적해 대입에 활용한다는 생각은, 작금의 살인적 입시 경쟁교육을 완화하기는커녕 외려 심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말이 좋아 공정한 데이터 축적이지, 사실상 교사와 학생을 점수의 '노예'로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윤석열 정부가 시동을 건 컴퓨터 기반 맞춤형 자율 학업성취도평가도 같은 맥락으로 읽히는 것은 기우일까.
우리는 '미래 교육 역량'과 '스마트 기기 활용 교육'을 같은 값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이주호도 그런 사람인 듯하다. 그는 평소에 AI 사교육을 옹호하는 듯한 발언을 여러 차례 했고, 자신이 이사장을 맡았던 협회가 에듀테크 기업으로부터 고액의 후원금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 만약 장관 자리에 앉을 경우 이해충돌 우려도 나온다.
미래 교육 역량은 AI나 스마트 기기로부터 나오지 않는다. 2018년에 발표된 OECD 교육 2030 보고서는 "기후위기에 맞선 긴급한 조치와 행동이 요구된다"고 명시했고, 지난해 나온 UNESCO 2050 보고서는 "손상된 지구를 치유하기 위한 교육과정을 마련해야 하며 기후변화 교육을 특별히 강조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선진국은 미래 교육 역량을 기후위기에 대처하는 창의적인 사고와 정의로운 행동 역량으로 보고 있다.
국어사전에서 '상점(商店)'을 검색하면 "일정한 시설을 갖추고 물건을 파는 곳"이라고 풀이한다. 만약 이주호 이명박 정부 시절 교과부장관이 다시 윤석열 정부의 교육부 수장이 된다면, 대한민국 학교는 상점이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새로운 교원능력개발평가와 전집 학업성취도평가, 에듀테크에 기댄 평가 시스템, 그에 따른 학생부 기록 등이 안착한다고 상상해 보라.
학교 안에서 이뤄지는 모든 교육활동은 계량화된 수치로 평가될 것이다. 교사는 다양한 지식 상품 목록을 제시하면서 물건값을 입력한다. 학생은 지적 수준에 맞추어, 학부모는 경제적 여건에 맞게 쇼핑한다. 아동의 발달단계에 걸맞은 전인적 성장은 뒷전으로 밀린다. 경쟁교육 철폐나 대학 서열 해체는 꿈도 꾸기 어렵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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