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 사라져도 자연의 생명력은 왕성합니다

이완우 입력 2022. 10. 27.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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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임실 마당재와 토종 씨앗을 지키는 농부 김창호씨

전라북도 임실군 문화관광해설사. 향토의 역사 설화 자연에서 사실을 확인하여 새롭게 인식하고 의미와 가치를 찾아서, 우리 지역의 역사 설화 자연의 소재를 이야기로 엮어갑니다. <기자말>

[이완우 기자]

고갯마루가 운동장 같은 마당재

섬진강 상류인 임실군 관촌면 덕천리 동쪽으로 덕곡마을을 지나 덕천1길을 4km쯤 가면 마당재에 이른다. 이 고개는 덕곡마을에서 복흥리 금정 마을로 넘어가는 고개다. 이 고개는 금남호남정맥에서 분기한 성수지맥의 고덕산에서 섬진강 변의 성미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를 넘는다.

고개를 넘는 마루에 넓은 평지가 있어 '마당재'라 불린다. 마당은 우리의 주거 공간에서 이제 추억의 영역으로 물러나고 있다. 마당재라는 이름에 향수(鄕愁)처럼 이끌려서 이 고갯길 마당의 흔적을 찾아갔다. 지난 23일, 상강(霜降) 절기는 초목의 낙엽을 재촉하고 가을바람이 삽상하다.

이 고개는 인적이 끊긴 지 오래다. 고갯길은 관목이 길을 막으며 찔레나무가 가시를 세웠고 억새가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한 걸음씩 앞으로 나가기가 쉽지 않다. 인적 끊긴 산길은 낫이 유용하다. 낫으로 조금씩 길을 찾아가며 전진하는데, 풀숲의 우거진 나무와 가시에 옷이 찢기고, 갈고리 달린 풀씨들이 옷에 수없이 달라붙었다.
 
 인적이 끊겨 자연으로 돌아가는 마당재 원경
ⓒ 이완우
 
잊힌 고갯길에는 억새의 하얀 꽃, 솔바람 소리와 늦가을의 서늘한 공기가 고개의 옛날 이야기를 지키고 있다. 청량한 가을 햇살이 풍요롭다. 잊힌 고개가 쓸쓸할 거라는 감상은 편견에 지나지 않았다. 고갯길의 흔적을 지워가고 자연으로 회복되어 풍요롭고 평온한 숲이 되고 있다. 전봇대와 전선이 관목과 풀숲을 헤치고 조용히 고개를 넘어가고 있다.
 
 억새 군락지가 된 마당재 고갯길
ⓒ 이완우
 
고갯마루는 여느 마당 넓이가 아니었다. 운동장만큼 넓은 완만한 경사의 구릉이었다. 1만분의 1 축척의 문화유적분포 지도(2007년. 임실군)에서 이 마당재의 위치를 살펴보았다. 고개 능선의 마루금 방향으로 200m와 고갯길 방향으로 100m 범위의 등고선 너비가 지도의 다른 부분과 달리 눈에 띄게 넓게 되어 있다. 지도상으로도 고개 이름에 걸맞은 지형의 특징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운동장만큼 넓은 완만한 경사의 마당재 고갯마루
ⓒ 이완우
 
작은 두 마을을 잇는 마당재 고갯길은 이제 길의 흔적이 사라져 간다. 마당재 고갯길을 통한 정보의 교류나 인적 물적 통행은 오래전에 끊겼다. 길의 역할을 상실하고 자연으로 돌아가고 있다. 길에 얽힌 추억과 지역 주민들의 삶의 기억도 이 고개에서는 사라져 가고 있었다. 고갯길은 없어져 가도 마당재 이름은 아직 행정지명으로 남아 있다.

마당재 어귀의 토종 씨앗 농장

마당재 어귀 농장의 밭두렁에는 가을 햇살에 여러 작물이 익어가고 있다. 김창호(68세, 임실군 관촌면 덕천리)씨가 토종 씨앗을 지키며 농작물을 재배하고 있다. 그는 '소박한 촌부(村夫)'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우리 토종 씨앗 지키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현재 20여 종의 토종 씨앗을 보유하고 있다. 전북 진안군 부귀면에서 토종 씨앗이 많이 나오는데, 경북 밀양시나 강원도 화천군에서 구한 씨앗도 있단다.

괴산 찰호마을 토마토, 담배상추, 수비초 고추, 너부네상추, 나물콩, 성주 메주콩, 부엉다리콩, 삼동파, 순천 재래쌀보리388, 겉보리, 달래파, 청방배추, 임실 신평 쇠뿔고추 등. 그는 토종 씨앗들을 열거하고 특징을 설명하며 표정이 밝아졌다. 그는 토종 씨앗 지키기 모임에 가입하여 회원으로 활동한다. 토종 씨앗의 순수 형질을 잘 유지하게 재배하고 몇 년간은 다른 지역으로 보내서 재배하여 씨앗들의 환경 적응 능력을 높인다고 한다.

이 지역 임실군 신평면이 원산지로 보이는 신평 쇠뿔고추를 다른 지역에서 한국종자원에 종자 등록을 했다고 한다. 이 고추 종자를 얻고 싶어 그 고추를 재배하는 농장을 방문하여 고추씨를 약간 얻었다. 올해 고추씨를 비닐하우스 온상에 소중히 재배하였는데, 비닐하우스 온도 조절에 실패하여 모두 고사하였다며 애달파한다. 이 지역의 토종 씨앗을 지키지 못한 안타까움이 묻어난다.
 
 토종 씨앗 작물 부엉다리콩
ⓒ 이완우
 
김창호씨는 강원도 인제군 깊은 산골의 평생 그곳을 떠나본 적 없는 할머니의 밭에서 청방배추를 발견하고 그 씨앗을 구할 수 있었다. 청방배추는 청나라 황실에서 재배되던 배추로서 1960년대 중반까지 우리나라 농가에 많았다고 한다. 김장용 배추로 널리 재배되다가 개량 품종에 밀려났다. 청방배추는 육질이 단단하고 고소한데, 식감이 약간 질겨서 김장하여 바로 먹기보다 6개월 이상 숙성될 때 식용에 적기라고 한다.

경북 경주시의 부석태 콩 씨앗을 구하여 2년째 재배하며 관찰 중이라고 한다. 전북 진안군과 임실군의 토종 씨앗 부엉다리콩과 연관성을 살피는 중이라고 했다. 그의 토종 씨앗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고 그의 검게 탄 얼굴만큼 토종 씨앗을 지키려는 신념이 강하게 느껴졌다.

마당재 토종 씨앗 농부

오뉴월 하룻볕은 풋나무가 두 짐이다. 이 속담처럼 봄여름의 하루해는 길고 어린 나이에 농사일은 끝이 없었다. 친구들은 중학생 교복을 입고 학교에 가는데, 소년은 지게 짐을 무겁게 지고 밭으로 갔다. 길에서 친구들을 만나기도 했다. 친구들에게 부끄러워 숨으려고 했지만, 지게 짐의 무게로 행동은 굼뜨고 친구들과 마주쳤다. 학교 가는 친구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소년의 어린 뺨에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소년은 어린 나이에 부모님 곁을 떠나 도시로 향했다. 세월이 흘러 조그만 사업도 경영하게 되고, 고향에서는 크게 성공했다고 했다. 어느 날 참석한 강연이 귀향의 계기가 되었다. 1930년대에 소련의 연해주 지역에 살던 고려인들이 중앙아시아에 강제로 이주하여 어려운 과정을 이겨내고 우뚝 선 역사의 강연이었다.

소년의 모친은 6·25 때 황해도에서 월남하였다. 소년의 부모님은 마당재 어귀에 정착하여 화전민처럼 황무지를 개척하여 농토를 일구어냈다. 소년은 50대 후반의 장년이 되어 부모님의 뜻을 받들어 농토와 우리 토종 씨앗을 지키기로 결심하고 귀향 귀농을 실행하였다. 김창호씨는 현재 68세의 만학도로서 임실군 오수면에 있는 학력인정 평생교육시설 인화초중고등학교의 중학교 2학년에 재학하며 학업에도 노력하고 있다.
 
 임실 사선대 국제조각공원 조각, 작품명 상승
ⓒ 이완우
 
마당재를 내려와 임실 사선대 국제조각공원에서 작품을 둘러보았다. 가까운 곳 주민이 당나귀를 데리고 산책을 나왔다. 조각공원을 산책하는 당나귀 모습은 선물처럼 다가온 생명력 넘치는 신선한 풍경이었다. 수십 점의 조각 작품이 넓은 잔디밭에 전시되어 있는데 이 조각공원에 올 때마다 한 작품을 집중하여 살펴본다.

작품명 : 상승
작가 : 이강원(한국)
재질 : 스테인리스, 철판
제작년도 : 2002년

작가의 작품 설명을 한 관객의 시선으로 정리하여 본다. 자연과 환경을 대표하는 산의 형태를 단순화했다. 산은 압축되어 굴절되고 중첩되면서 상승하는 자연의 강한 힘을 사각기둥으로 간결하게 표출한다. 밝은 선홍색은 자연의 강한 생명력이다. 거울처럼 반사되는 스테인리스 철판은 단조로움을 벗어나 산뜻한 감상의 재미를 준다.

고갯길로서는 잊힌 마당재가 오히려 자연의 생명력으로 충실해지고 있다. 토종 씨앗이 농부의 집념으로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다. 조각 작품 '상승(上昇)' 앞에 오래 서 있었다. 오늘 여행은 마당재 고개와 토종 씨앗 농장의 사실적인 여정(旅程)과 견문(見聞)이 충실하다고 생각한다. 오늘 여행의 주관적 감상(感想)은 조각 작품 '상승(上昇)'의 강한 생명력 공감으로 충분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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