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임클리닉 찾은 남성 정액에 남세균 독소…녹조 또다른 위험

강찬수 2022. 10. 2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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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중순 부산시민들의 식수 원수를 취수하는 경남 물금·매리 취수장 인근 낙동강에 남세균 녹조가 발생, 강물이 짙은 초록색을 띄고 있다. 연합뉴스


국내에서도 녹조를 일으키는 남세균 독소에 대한 걱정이 커지는 가운데 중국에서는 남성 정액에서 남세균 독소가 검출됐고, 이런 내용이 국제 학술지에 논문으로 발표됐던 것으로 확인됐다.

정액 속에 남세균 독소가 많을수록 정자의 숫자나 정자의 운동성이 감소한다는 내용이다.

중국 난징대학과 홍콩 폴리텍대학 연구팀은 이런 내용의 논문을 '환경 보건 전망(Environmental Health Perspectives)'에 지난해 12월 발표했다.

사람 정액에서 남세균 독소 농도를 분석한 것은 이번 연구가 처음이고, 현재까지 유일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남성 1715명 정액 시료 분석


정자와 난자의 수정 순간을 주사 전자현미경으로 포착했다. 중앙포토
연구팀은 2020년 6월부터 2021년 1월 사이에 난징 의과대학 부속 구러우(鼓楼)병원의 불임 치료센터를 찾은 남성 2588명 가운데 1715명의 협조를 얻어 정액 시료를 채취했다.
금욕 기간이 2일 미만이거나 일주일을 초과한 경우는 조사 대상에서 제외했고, 염색체 이상 등의 경우도 제외했다.

참여한 남성들은 모두 20~40세였고, 녹조가 자주 관찰되는 장수(江蘇) 또는 안후이(安徽) 지역에서 3년 이상 거주했으며, 직업적으로 남세균 독소에 노출됐을 가능성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연구팀은 이들의 건강 상태를 체크하고, 정액 시료에서 남세균 독소인 마이크로시스틴 농도를 측정했다. 형태나 운동성 등 정자의 이상 여부도 분석했다.

분석 결과, 정액의 양은 평균 3.5mL(1.8~6.0mL 범위, 중간값은 3.2mL)였고, 정자의 농도는 mL당 평균 6750만 마리(940만~1억6020만 마리 범위, 중간값은 5660만 마리)였다.

총 정자 숫자는 평균 2억2520만 마리(2810만~15억4860만 마리 범위, 중간값은 1억8370만 마리)였다.


독소 농도 높으면 정자 숫자 감소


남세균 독소인 마이크로시스틴의 분자 구조. 세부 구조 차이로 인해 마이크로시스틴은 270여 종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구팀은 효소결합면역흡착법(ELISA)으로 정액 속의 총 마이크로시스틴 농도를 측정했는데, L당으로 환산한 평균 농도는 0.16㎍(마이크로그램, 1㎍=100만분의 1g), 즉 0.16 ppb였다.

분포 범위는 검출 한계 미만에서부터 최고 0.28ppb까지 검출됐는데, 중간값 역시 평균값과 같은 0.16ppb였다.

연구팀은 이런 지표들 사이의 관련성을 파악하기 위해 통계수치인 베타(β) 계수를 산출했다. 베타 계수는 A 지표가 1단위만큼 변화할 때 B 지표가 어느 정도 변화하는지를 나타내는 값이다.
β 계수가 양수이면 같은 방향으로 비례해서 증가했음을, β 계수가 음수이면 반비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연구팀은 논문에서 남세균 독소인 마이크로시스틴 농도와 총 정자 수 사이에 음의 상관관계가 나타났다고 밝혔다.

또, 정자의 전체적인 운동성, 전진 운동성, 곡선 속도 등에서도 β 계수가 음수로 나타났다. 독소 농도가 높을수록 정자의 운동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정자의 머리가 비정상적인 형태를 보인 비율은 β 계수가 양수로 산출돼 독소 농도와 비례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연구팀은 "이러한 결과는 마이크로시스틴이 정자의 활력과 형태를 손상하는 독소일 수 있다는 가설을 뒷받침한다"며 "마이크로시스틴이 비정상 정자의 비율을 증가시키고 정자 운동성을 감소시킨다는 이전의 동물 연구의 결과와도 일치한다"고 설명했다.


혈청 분석 없는 것은 한계


중국 안후이성 차오호에 발생한 녹조. [hello-travel.com 제공]
연구팀은 "정액을 분석한 것은 소변이나 혈청에서 측정하는 것보다 마이크로시스틴이 남성 생식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직접 파악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번 연구는 혈청 분석이 없어 혈청 속 마이크로시스틴 농도와 정액 속 마이크로시스틴 농도 사이의 관계를 파악하지 못한 점은 한계로 지적됐다.
또, 다른 환경오염 물질의 영향에 대한 분석이 이뤄지지 않은 점, 전체 연구 대상이 단일 클리닉을 방문한 사람에 한정돼 이를 일반화할 수 있는지에 대한 추가적인 연구도 필요하다.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연구팀은 "정액 속 마이크로시스틴 농도가 남성 정자의 질과 관련이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며 "세계적으로 만연하는 남세균 녹조를 통제해야 한다는 인식을 높이는 데 참고자료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미국 캘리포니아주 환경보호국 환경건강위험평가소(OEHHA)는 주민들에게 '공지하는 기준'을 제시하는데, 수돗물에서 0.03ppb 이상의 마이크로시스틴이 들어있을 경우 3개월 이상 마시지 않도록 하고 있다. 남성 정자 수의 감소 등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녹조가 발생한 여름 내내 마이크로시스틴이 들어있는 물을 마신다면 남성의 생식 능력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는 경고인 셈이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kang.chan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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