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은 역사를 잊지 않는다…

2022. 10. 26.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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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훈의 세계건축기행] (2) 베를린 유대인 박물관(Jewish Museum Berlin)

유럽을 대표하는 스마트시티 베를린은 미래 도시 모델로 손꼽힌다. 하지만 이 도시만큼 과거를 치열하게 기억하는 곳도 드물다. 베를린은 다양한 건축물을 통해 역사의 잘못을 기록하고, 나치가 자행한 홀로코스트 희생자를 추모한다. 도시 곳곳에서 무시로 유대인 추모와 전쟁 참회 시설을 만날 수 있고, 사람들은 일상에서 역사의 기억을 현재로 소환한다. 첨단 도시 베를린을 ‘기억의 도시’로 부르는 이유다.

기억의 건축물 중에서도 ‘베를린 유대인 박물관(Jewish Museum Berlin)’은 목적성과 예술성을 모두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강렬한 외관과 창조적 공간은 유대인 역사와 홀로코스트의 참상을 깊이 이해하고, 또 상상하게 한다. 독일이 부끄러운 역사를 이토록 열심히 후대에 알리는 까닭은 진정한 참회가 가해자와 피해자의 아픔을 모두 치유하는 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역사는 과거를 성찰함으로써 앞으로 나아간다.

▶역사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도 서로 연결돼 있다는 메시지

베를린 린덴스트라세 9-14번지. 베를린 유대인 박물관에 도착하면 주황색 지붕의 바로크 양식 2층 건물을 만난다. 옛 프로이센 법원으로 건축돼 1938년 나치가 폐쇄하기 전까지 유대인 박물관으로 사용됐다. 역사가 있는 건물이지만 방문객들은 관심을 두지 않는다. 바로 옆 범상치 않은 건축물이 시선을 독점해버리기 때문이다.

베를린 유대인 박물관은 국제 공식 개관은 2001년이지만, 1999년 유물이 없는 상태에서 건물만 개방했는데도 수많은 방문객을 불러 모았을 정도로 주목받았다.

1989년 베를린시는 독일의 역사적 범죄 홀로코스트에 대한 참회와 피해자를 위로하고, 역사적 화해의 의미로 옛 박물관 옆에 새로운 건물을 짓기로 결정했다. 국제 공모로 폴란드계 유대인 다니엘 리베스킨트(Daniel Libeskind)가 선택됐다. 하지만 건축가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정치적 논쟁이 뜨거워지고, 건축 계획이 표류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으며 완공까지 10년의 시간이 걸렸다.

짙은 회색 아연 도금의 금속성 외벽 패널 파사드(Facade)와 마치 칼로 난도질이라도 한 듯 길게 찢어진 형상의 창문은 나치 학살로 희생된 수백만 유대인의 고통을 보여주는 상징적 디자인이다.

건물은 지그재그로 아홉 번 구부러지는 형태인데, 유대민족의 상징인 다윗의 별을 형상화했다. 그런데 이 독특한 건물에는 출입구가 없다. 서늘한 느낌을 주는 금속성 외피와 문이 없는 건물에서 외부와 단절된 외로움, 고립된 슬픔이 느껴진다. 박물관 입구는 바로 옆에 있는 옛 유대인 박물관이다. 오직 이곳의 지하 통로를 이용해야만 박물관으로 들어갈 수 있다.

독일의 고전 건축양식을 보여주는 구 유대인 박물관과 리베스킨트 빌딩으로 부르는 새로운 유대인 박물관은 각각 독일과 유대인의 역사를 의미한다. 리베스킨트는 두 건물을 지하로 연결함으로써, 역사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도 서로 연결돼 있으며 분리될 수 없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실제로 리베스킨트는 이 건물을 홀로코스트 기념관으로만 설계하지는 않았다.

그는 유대인 박물관이 독일과 유대인의 상호 이해를 깊게 하는 도구로 사용되기 바란다는 뜻을 지속적으로 강조했다. 10년간 5900만달러가 소요된 박물관에는 고대 로마 시대 게르만과 유대인의 교류사부터 현재까지 역사적 관계를 보여주는 3900여점의 유물과 유적을 전시하고 있다. 이를 보고 있노라면 독일과 유럽, 유대인의 관계가 단지 홀로코스트의 비극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박물관이 홀로코스트를 기억하면서 동시에 미래를 이야기하는 공간인 셈이다.

위의 사진 ‘기억의 공간’에는 철로 만든 1만여개 얼굴 형상이 낙엽처럼 깔려 있다.

▶‘추방의 정원’ ‘홀로코스트 타워’ ‘기억의 공간’ 세 명소

입구에서 이어지는 깊은 계단과 지하 복도는 마치 시간 여행의 길로 들어서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창과 하늘을 통해 들어오는 빛이 벽과 부딪히며 공간에 영적 분위기를 더한다. 리베스킨트는 내부를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수직적 동선을 따라 처참한 과거와 참회하는 현재, 그리고 미래의 공간으로 구성했다. 이어지는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역사의 흐름을 이해하고 미래 역사를 생각하게 유도하는 건축가의 스토리텔링이 뛰어나다.

박물관에는 세 곳의 명소가 있다.

하나는 ‘추방의 정원’이다. 독일에서 추방된 유대인의 이민 경로를 상징하는 공간이다. 콘크리트 기둥 49개가 같은 간격으로 서 있고, 기둥 위에는 인내와 영광을 상징하는 올리브 나무가 자란다. 마치 유대인 화장터 묘비석을 연상케 하는 기둥 사이에 서면 추방당한 자들이 느꼈을 상실의 고통이 무겁게 다가온다.

다른 한 곳은 ‘홀로코스트 타워’다. 높은 콘크리트 벽체로 사방이 막힌 공간은 꼭대기의 작은 틈으로 스며들어온 가냘픈 빛이 전부다. 오직 빛과 그림자만으로 수용소 안에 갇힌 유대인의 절망과 공포의 감정을 연출해냈다.

하이라이트는 ‘기억의 공간’이다. 높은 콘크리트 벽 사이 좁은 공간의 바닥에 이스라엘 현대 미술가 메나셰 카디시만(Menashe Kadisgman)의 ‘낙엽’이라는 작품이 깔려 있다. 바닥에 깔린 철로 만든 1만여개 입을 벌리고 있는 얼굴 형상이 발로 밟으면 철이 부딪히는 소리가 난다. 홀로코스트로 희생된 영혼의 비명처럼 들리는 탓에 한 걸음 한 걸음을 옮기기가 쉽지 않고 사람들이 숙연해진다.

1999년 우여곡절 끝에 유대인 박물관이 유물도 없이 1차 개관을 하던 날, 당시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가 기념 행사장을 찾았다. 이 자리에는 과거 홀로코스트의 희생자가 될 뻔했던 다니엘 리베스킨트의 부친도 와 있었다. 공교롭게도 슈뢰더 총리의 아버지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으로 참전했다. 슈뢰더 총리는 90세였던 다니엘의 부친 앞에 무릎을 꿇고 감사와 사과의 뜻을 전했다. 유대인 희생자를 기리고 홀로코스트에 대한 역사적 과오를 반성하는 동시에 통일 독일의 미래를 열어나가는 의미 있는 행동이었다.

2001년 정식 개장 때 많은 독일 언론은 박물관 개장을 대서특필하면서 ‘그날 저녁, 베를린이 성숙해졌다’고 헤드라인을 뽑았다.

[김종훈 한미글로벌 회장]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81호 (2022.10.26~2022.11.0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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