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개 일자리 고맙다” 美 조지아주 현대차 공장 기공식 르포
미국 조지아주 동부 해안 도시 서배너에서 자동차로 40분쯤 달리자 지평선 끝이 잘 보이지 않는 허허벌판이 나왔다. 현대자동차가 오는 2025년 완공을 목표로 전기차 공장을 지으려는 브라이언 카운티(주 아래 행정단위) 메타사이트 부지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25일(현지시간) 이곳에서 브라이언 켐프 조지아 주지사 등 정·재계 관계자들을 초청해 기공식을 열었다.
공장 부지와 시내 공연장에서 차례로 열린 기공식 행사에는 라파엘 워녹 상원의원, 존 오소프 상원의원 등 조지아주 정치인과 관료뿐만 아니라 백악관과 상무부 등 연방 정부 고위 당국자들도 참석했다. 이들은 한목소리로 현대차가 조지아주에 일자리를 만들어줘 고맙다고 했다.
"신규 일자리 1만 개…인재도 키워서 공급"
켐프 주지사는 축사에서 “우리에게 와줘서 고맙다는 말을 조지아주 주민을 대표해 전한다”면서 현대차의 55억4000만 달러(약 7조5000억원) 투자는 “조지아주 역사상 최대 규모”라고 밝혔다. 켐프 주지사는 또 “현대차가 미국 시장에서 전기차용 배터리와 관련 부품의 안정적인 공급망을 확보하기 위해 앞으로 몇 년간 일자리 8100개 이상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휴 톨리슨 서배너개발청(SEDA) 청장은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공장 건설 인력과 연관 부품업체 등 간접 일자리까지 더하면 일자리 1만 개 이상이 창출될 것으로 예상한다”면서 “작은 시 하나가 새로 세워지는 것과 같은 규모”라고 설명했다. 조지아주는 총 18억 달러(약 2조6000억원) 규모의 인센티브 패키지를 제공키로 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날 성명을 통해 "미국 제조업과 인프라를 재건하기 위해 민주당이 의회에서 처리한 나의 경제 정책이 이번에는 조지아주에서 성과를 내고 있다"면서 "전기차 공장은 지난 5월 한국 방문 중 발표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공식에 참석한 돈 그레이브스 상무부 부장관은 "조지아뿐 아니라 미국에 역사적인 투자를 하는 현대차에 행정부 전체를 대신해 축하를 전할 수 있어 기쁘다"면서 "이번 투자는 조지아에 수천 개의 일자리를 만들 뿐 아니라 스마트자동차 기술, 전기차 배터리 분야에서 미국과 한국 간 협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 회장은 "'인류를 위한 진보(Progress for Humanity)'라는 현대차그룹의 비전을 실행하기 위한 최적의 장소, 최적의 파트너를 드디어 찾게 됐다"면서 "조지아와 현대차그룹은 새 공장 '메타플랜트 아메리카'를 전 세계가 선망하는 최고 수준의 전기차 생산 시설로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지역사회는 일자리가 생기고 새로운 시도가 일어나는 데 대해 들뜬 모습이었다. 교육계는 현대차에 맞춤형 인재를 만들어 제공하겠다고 나섰다. 인근 채텀 카운티 교육청의 앤지 루이스 행정국장은 "현대차에 어떤 인재를 찾고 있는지 질의를 넣고 기다리고 있다"면서 "요구사항에 맞춰 인재를 길러 노동력을 제공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사실상의 선거 운동전 된 기공식
기공식이 열린 25일은 상원의원과 주지사 등을 뽑는 중간선거가 2주 앞으로 다가온 시점이었다. 조지아주는 주지사와 상원의원 1석 등이 선거 대상이다. 행사 주최 측은 "오늘은 정치 얘기는 하지 않는 것"으로 했다고 전했지만, 정치인 참석자들은 연설 기회를 본인의 성과를 홍보하는 기회로 삼았다.
재선을 노리는 라파엘 워녹 상원의원은 “오늘은 조지아주가 갖게 된 새로운 일자리, 새로운 기회를 축하하는 날”이라며 “나는 고향 서배너에 세계 정상급 첨단 제조 시설과 급여를 많이 주는 좋은 일자리 만드는 것을 지원하는 데 초점을 맞춰왔다"고 말했다. 상원에서 일자리 관련 법안을 통과시키는 데 앞장선 결과 연방 정부 예산으로 기술 인력 양성이 가능하게 됐다며 업적을 홍보했다.
워녹 의원은 "이젠 좋은 일자리를 찾기 위해 이 지역을 떠나지 않아도 된다"면서 “이번 공장 신설은 우리 경제를 미래 수십 년 동안 경쟁력 있는 경제로 발전시키는 데 중요한 한 걸음"이라고 말했다.
켐프 주지사는 공화당, 워녹 의원과 오소프 의원은 민주당 소속이다. 중요 초대 손님 소속이 달라 '초당적' 균형을 이루긴 했지만, 양당이 현대차의 조지아주 투자를 추켜세우는 이유는 달랐다.
민주당은 전기차와 청정에너지원 등 바이든 행정부의 친환경 정책 달성에 초점을 맞추었지만, 공화당은 일자리 창출과 기업 하기 좋은 환경 등 친기업 행보를 강조했다.
알리 자이디 백악관 국가기후보좌관은 연설에서 정 회장이 약 1년 반 전 백악관을 찾아온 일화를 들려줬다. 자이디 보좌관은 “정 회장은 자동차 부문의 미래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설명하고, 순수 전기차의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했다"고 전했다.
그 후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 5월 한국을 방문해 정 회장을 다시 만났을 때 조지아주 투자가 확정됐고 “말과 상상이 현실이 됐다”면서 “우리는 청정에너지 기술에 ‘메이드 인 조지아’ 도장을 찍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지 언론은 중간선거를 2주 앞두고 기공식을 연 것은 현직인 켐프 주지사에게 도움이 된다고 해석했다. 애틀랜타 저널 컨스티튜션(AJC)은 현대차는 지난 5월에도 켐프 주지사의 공화당 예비선거(당내 경선) 직전에 투자를 공식 발표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현장에서 만난 주민 듀크 부키 씨는 “일자리 창출에 여야가 없고 전기차와 내연기관차 구분도 없다고 생각한다"면서 "일자리를 가져오는 일은 주민들 사이에선 초당적(bipartisan) 지지 사안임이 틀림없다"고 말했다.
한국산 전기차 구제 방안은 언급 없어
현대차가 한국에서 만들어 수출하는 전기차에 대한 세제 혜택을 배제한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이 최근 논란이 됐지만, 이 자리에서 미국 측 참석자들은 이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워녹 상원의원은 정책 시행을 현대차가 전기차 공장을 완공한 이후 시점으로 미루자는 걸 골자로 한 IRA 개정안을 발의한 당사자이지만, 이날 연설에서는 언급을 삼갔다.
자이디 보좌관은 오히려 IRA는 "전기차 배터리에 각종 세제 혜택을 제공하는 역사적인 법으로, 초당적 협력으로 통과됐다"고 소개하며 바이든 행정부의 기후변화 대응 노력을 추켜세웠다.
바이든 대통령은 성명에서 이번 현대차 투자는 지난 2년간 행정부와 민주당이 통과시킨 "역사적인 법안의 핵심"이라면서 "공화당이 원하는 대로 법을 폐지하는 일이야말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못 박았다.
공화당은 친환경 정책 확대, 증세, 국세청(IRS) 요원 증원 등을 이유로 IRA에 반대하고 있으며 중간선거에서 의회 다수당을 차지하면 법을 개정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기공식에 참석한 조태용 주미대사만이 연설에서 "한국 기업은 이 법의 전기차 세제 혜택으로부터 불이익을 받을 위험에 처해 있다"고 지적했다. 현지 언론 AJC는 조 대사가 IRA 통과 주역인 오소프 상원의원과 워녹 상원의원이 앞줄에 앉아 있는 가운데 날카로운 발언을 했다고 전했다.
서배너(조지아주)=박현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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