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보다 재밌어요" 수학여행 말고 '여행학교' 어때요
[김용만 기자]
제가 교사로 근무하고 있는 경남 김해시 김해금곡고등학교(아래 금곡고)는 지난 10월 18일부터 21일까지 3박 4일간 전국으로 '여행학교'를 다녀왔습니다. '여행학교'라고 하니 낯설겠지만, 이 프로그램은 통상 학교들이 가는 수학여행과는 다릅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수학여행은 정해진 목적과 일정을 학생들이 따라 다니는 것이고 여행학교는 목적, 일정까지 모든 것을 학생들이 직접 만들어서 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행학교의 큰 틀은 정해져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여행을 통해 배움을 얻자. 여행을 통해 진로에 대해 고민해보자'였습니다. 여기서 '진로'는 '직업'과 다릅니다. '직업'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자신의 적성과 능력에 따라 일정한 기간 동안 계속하여 종사하는 일'을 뜻하고, '진로'는 '앞으로 나아갈 길'이라는 뜻입니다.
▲ 서대문형무소를 방문한 아이들 |
ⓒ 김용만 |
많은 학생들이 꿈에 대해 고민합니다. 학생의 꿈에 대해 부모님 포함 선생님들, 어른들도 관심이 많습니다. 그 꿈은 주로 직업을 뜻합니다. 청소년기에 직업을 정해서 준비하는 것은 대견한 것일 수도, 앞서가는 것일 수도 있지만 반대로 보면 인생에서 생길 수 있는 다양한 변수에 대한 준비가 덜됨을 뜻하기도 합니다. 인생은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해서 결국 '직업'보다 내가 살아갈 길, 즉 '진로'에 대해 고민해보자는 것이 금곡고 여행학교의 최종 목적이었습니다.
금곡고는 2022년 10월 26일 현재 전교생은 36명 정도 되는 작은 학교입니다. 해서 소규모 이동학습이 가능했습니다. 주제는 학생들이 정하고 모여서 총 5개 팀이 꾸려졌습니다. 각 팀은 무학년제로 1학년부터 3학년까지, 인원수는 5명~8명 정도였고 각 팀당 2명의 교사가 함께 했습니다. 우선 금곡고 여행학교 팀과 일정을 소개합니다.
1. 버스킹과 영상팀(ON AIR) : 창원 상남동 분소공원 버스킹, 강화도 오디세이 학교에서 버스킹, 서울 홍대 거리 버스킹 관람, SBS 방문 및 견학
2. 문화 예술 관람(아르스 금곡) : 혜화 라온 아트홀에서 한뼘사이 연극 관람, 청계광장 방문, 국립현대미술관, 리움미술관, 히사이시조 OST 콘스트 관람
3. 스포츠 환경팀(팜피린) : 강원도로 이동, 펀클라이밍 체험, 속초 야시장 방문, 와이키키 서프, 해품달(농촌활성화 프로그램) 참가, 강릉 빙상장, 낙산사, 고래 책방 방문
4. 문화 기행 및 서점 탐방(책크인) : 부산 흰여울 문화마을 독립서점 방문, 보수동 책방골목 방문, 서울의 독립서점 및 대형서점 방문, 파주 출판단지 체험, 이건희 컬렉션 방문
5. 한국사, 웹툰팀( T.O.P 서울) : 전쟁기념관, 서대문 형무소, 경희궁, 덕수궁, 종묘, 창경궁, 창덕궁, 경복궁, 운현궁 방문
출발일은 10월 18일이었지만, 학생들은 한달 전 부터 준비했습니다. 선생님들의 약속과 역할은 간단했습니다. '지원하되 간섭하지 말자.' '실패해야 한다. 실패 속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 학생들의 실패를 막지말자'였습니다. 물론 고교 1학년~3학년들로 겉모습은 거의 어른 이상인 학생들도 있지만, 학생들이 미흡하게 준비하더라도 존중하고 인정하는 것이 학교 방침이었습니다. 성공의 경험보다 실패의 경험이 배움이 크다는 것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 버스킹 공연 중인 아이들 |
ⓒ 김용만 |
서울역에 도착하고 본격적인 일정이 시작되었습니다. 학생들은 폰을 켜고 지도를 보며 점심을 먹기로 한 식당으로 향했습니다. 선생님 두분은 단지 따라만 갔습니다.
선생님들은 단체톡방을 통해 각 팀의 현재 상황에 대해 실시간 공유했습니다. '어느 장소를 가고 있다.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다. 오늘 하루는 어땠다' 등 교장선생님과 모든 선생님들은 자신의 팀뿐 아니라 다른 팀의 상황을 체크하며 이동했습니다. 즉 선생님들은 철저히 관찰자의 입장에서 학생들과 동행하며 기록을 했습니다. 학생들은 친구, 선후배와 같이 의논하며 자신들의 일정을 소화했습니다.
매일 일정 종료 뒤 나눔 시간... "학교 수업보다 더 흥미로웠어요"
▲ 강원도를 방문한 아이들 |
ⓒ 김용만 |
모든 팀은 하루 일정이 끝나고 나면 다같이 모여 하루 평가를 했습니다. 그 날의 기억남는 일, 아쉬웠던 점, 다음 날 일정을 같이 공유하며 하루를 마무리 했습니다.
모든 학생들과 선생님들은 하루 평가 시간에 하루가 어땠는지 직접 말로 표현해야 합니다. 그리고 상대가 말할 땐 경청합니다. 상대의 생각을 듣고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것 또한 필요한 교육활동이기 때문입니다. 학생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대화하는 법을 익혀갔습니다.
3박 4일은 빨리 지나갔습니다. 하루하루는 힘들었지만 3박 4일은 짧았습니다. 여행학교 중 한 학생과 인터뷰를 했습니다.
- 이번 여행학교 어땠나요?
"네, 저는 정말 좋았습니다."
- 많이 걷고 빡빡한 일정으로 힘들진 않았나요?
"물론 육체적으론 힘들었습니다. 선생님, 혹시 그거 아시나요? 몸은 너무 힘든데 재미있는거요. 제가 딱 그랬어요. 발바닥은 너무 아픈데 재미있었어요. 하나라도 눈에 더 담고 싶었어요. 저는 학교 교육보다 여행학교가 더 흥미로웠어요. 저에겐 딱! 이었어요."
- 일반학교의 수학여행과 우리학교의 여행학교는 비슷한 것 아닌가요?
"아니에요. 수학여행과 여행학교는 분명히 달라요. 뭐랄까, 저의 편견일 수도 있는데요. 일반학교에서 수학여행은 '놀러간다, 약간의 일탈행동을 한다'는 인식이 있었어요. 하지만 여행학교는 '배우러 간다. 내가 직접 해야 한다'는 생각 뿐이었어요. 팀별 자유시간이 있었잖아요? 우린 그 시간에 우리끼리 모여 간식을 먹으며 각자를 알아가는 시간을 보냈어요. 몸은 피곤했지만 그 시간 또한 정말 재미있었어요. 그리고 수학여행은 따라다니는 느낌이고 불만도 많았던 것 같은데, 여행학교는 별로 불만이 없었어요. 그게 참 신기했어요."
- 이번 여행학교가 도움이 된 것 같나요?
"네 장점이든 단점이든 도움이 되었어요. 우리가 직접 일정을 짜고 추진하고 기록하는 것, 그리고 11월 2일 부모님들 앞에서 발표하는 것까지 저는 정말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 여행학교를 후배들에게 추천할 수 있겠어요?
▲ 한강을 방문한 아이들 |
ⓒ 김용만 |
신기했습니다. 실제로 아이들은 음식 메뉴부터 잠자리, 일정에 대해 투덜거리지 않았습니다. 모든 팀들이 유쾌하게 생활하고 있다는 것을 학생들 소셜미디어에 올라오는 사진과 글을 보며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다가오는 11월 2일, 김해 금곡고 학생들은 여행학교 개인 발표를 합니다. 그 때가 되어야 학생들이 각자 무엇을 느꼈는지, 어떤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를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학생들이 발표 자료를 준비하는 동안 선생님들은 따로 모여 평가회를 했습니다.
▲ 서점을 투어하는 아이들 |
ⓒ 김용만 |
김해금곡고는 올해(2022년) 개교 3년차인 학교입니다. 여행학교도 올해 3년차 입니다. 해가 바뀌면서 학교 교육과정도 다듬어지고 있습니다. 저는 올해 금곡고에 왔기에 이전의 여행학교에 대해선 잘 모릅니다. 하지만 3학년들이 올해 여행학교가 정말 좋았다고 말하는 걸로 봐서는, '여행학교'라는 이 곳의 교육과정이 점점 성숙해지고 있는 듯합니다.
학생들의 성장도 중요하듯 학교의 성장도 중요합니다. 단지 오래되었다고 해서 그 학교가 마냥 좋은 학교일 수 없습니다. 교사도, 학부모도, 같이 성장해야 합니다. 학생들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 애쓰는 학교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덧붙이는 글 | 김해금곡고등학교는 2020년 개교한 작은 기숙사형 공립 대안학교이며, 저는 이곳의 교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추후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될 예정입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윤 정부 또 최하위권... 한국, 눈 떠보니 후진국
- 멀쩡한 영국 통계 끌어와 성소수자 때린 국힘 의원
- 감사원 착오 지적한 국정원 "SI 통해 공무원 피격 확인, '월북' 단어 포함"
- 고향에 기부금 내면 답례품... 죽어가던 소도시 살아났다
- 임시정부가 암살하고 매장해버린 김립의 진실
- 밭일 하는 96세 엄마를 둔 나는 대한민국 5%?
- 어설프게 보여도... 리듬 타는 중입니다
- '윤 측근' 국정원 기조실장, 넉달만에 돌연 사직… 배경 의혹 증폭
- 대학축제 '5천' 요구하기도... "알바해서 낸 등록금 아까워"
- 이주호 "'민주주의→자유민주주의' 필요", 교과서 전쟁 터지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