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인터뷰] 성실하고 꾸준하게…SF9 재윤의 모데라토
일 년 동안 4개의 작품에서 활약
SF9 재윤에게 올 한 해는 어느 때보다 바쁘고 값진 날들이었다. SF9으로만 무대에 서던 그는 뮤지컬, 연극으로 영역을 넓혀 쉴 새 없이 일 년 동안 네 작품으로 관객들과 만났다. 대학로 소극장부터 대극장까지, 연습과 실력으로 얻어낸 성과라 더욱 뜻 깊다.
FNC 사옥에서 만난 재윤은 지난 일 년을 되돌아보며 단어 하나 쉽게 내뱉지 않았다. 기억과 경험을 상기하며 자신이 느낀 점들을 신중하게 풀어냈다. '담대하고 단단하게', 재윤의 성장이 그의 성정과 맞닿아 있었다.
최근에는 뮤지컬 '서편제'로 8월 12일부터 10월 23일까지 두 달여간의 여정을 마쳤다. 뮤지컬 '서편제'는 어린 송화와 동호가 어른이 되고 아버지 유봉과 갈등을 빚으며 두 오누이가 나의 소리를 찾아 나서는 여정을 다룬 작품이다.
재윤은 아버지 유봉의 우리 소리에 대한 집착에 맞서 자신이 원하는 소리를 찾는 동호를 연기했다. 재윤은 동호로 살던 순간들이 결코 쉽지 않았기에 떠나보내기 아쉽다.
"지난 23일 마지막 공연을 다녀왔어요. 그 때 비로소 이제 끝났구나 싶었죠. 마음이 시원섭섭하더라고요. 아쉬운 것도 있고 뿌듯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고요. 사실 '서편제'를 하면서 목이 안 좋았어요. 좋은 상태로 표현하고 싶었는데 그게 잘 안돼 답답하고 힘들었거든요. 힘들긴 했지만 그래도 후반부로 갈 수록 상태가 좋아져서 위안이 됐죠."
지난 2010년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의 초연을 시작한 '서편제'는 원작 사용 저작권 만료로 이번 공연이 마지막 시즌이었다. '서편제'는 역대 최다 기록인 약 6만 명의 관객을 하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저에게 '서편제'는 처음이자 마지막이 됐어요. 마지막이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이렇게 좋은 극이 계속 있어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들었거든요. 팬들이 너무 좋아해 주셨고요. 처음 대극장에서 공연을 하며 배운 것도, 경험한 것도 많았기에 더욱 기분이 남달라요."
이자람, 차지연, 남경주, 서범석 등 뮤지컬 신에서 입지를 공고히 다져온 배우들이 '서편제'에 참여했다. 재윤은 기라성 같은 선배들과 마주했던 첫 연습날을 떠올렸다.
"문이 열려있어서 들어갔는데 연출, 선배님들이 다 앉아계셨죠. 인사하고 고개 숙이고 앉았는데 얼굴이 빨개지기 시작했어요. 예상은 했지만 내가 과연 여기에서 잘 적응할 수 있을까 무서워졌어요. 제 목표는 단 하나였어요. 연습 때 최대한 배우고 선배님들이 이끌어주시는 대로 잘 따라가자 이 한 마음이었죠."
재윤은 '서편제'에서 10대부터 60대 동호까지 목소리 톤, 걸음걸이, 속도와 표정 등으로 세월과 감정의 변화를 캐릭터에 녹여냈다. 처음에는 한 번도 상상해 보지 않은 60대를 연기해야 한다는 부담과 고민이 있었지만, 자신의 해석과 주변의 도움을 받아 차근차근 풀어냈다.
"제 나름대로 60대의 동호는 어떤 모습일까 표현 해봤어요. 그런데 범석 선생님이 60대지만 정정한 분들도 많다고 나이에 갇혀있지 말라고 하시더라고요. 연출 선생님께서도 나이를 너무 의식하지 말라고 말씀해 주셨고요. 그래서 최백호, 송창식 등 60대지만 여전히 활동하시는 선생님들의 모습을 찾아봤어요. 특히 극 처음이 60대 목소리로 시작돼 많이 신경 썼어요. 동호의 첫 마디가 캐릭터를 설명하는 중요한 신이라 정말 많이 연습했어요. 그 때 하필 해외 일정이 많아서 비행기 안에서 '어디 계신데' 이 한마디를 반복해 읊조리며 연습했던 기억이 나네요."
동호는 아버지와 누나 곁을 떠나 가수, 프로듀서로 성공했지만, 청춘을 다 바쳐 숨어버린 누나를 찾아 헤맨다. 재윤은 그런 동호의 삶을 어떻게 생각할까. 동호가 가진 평생의 외로움과 한을 감히 상상 할 수도 없다.
"무대를 하면서 든 생각은 너무 외로운 사람이란 거였어요. 어떤 그리움과 외로움을 견뎌야 했을까요? 또 나이 60세가 되도록 누나를 찾지 못한 감정은 대체 뭘까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죠. 가수, 제작자로 성공해 세상이 알아주는 사람이 됐지만 어딘가 채워지지 않는 허함을 계속 가지고 있었을 테니까요. 이건 극이고 시점이 확확 넘어가지만 실제 상황이면 하루하루를 그렇게 보내야 하잖아요. 외로운 감정의 밀도는 상상도 못하겠어요."
무대 위에서의 실수는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무대 아래로 북을 떨어뜨리는 실수를 한 것. 웃으면서 이야기 했지만 여전히 등골을 오싹하다.
"북을 무대 밖으로 떨어뜨리는 실수를 했는데 '서편제'가 시작된 이후 12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고 하더라고요. 그 때 '절대 웃지 말자, 당황하지 말자. 나는 지금 동호다'라는 생각으로 마인드 컨트롤을 했어요. 그런데 남경주 선생님이 자연스럽게 북을 주우러 가시더라고요. 여유에서 나오는 대처가 저런 거구나 싶었죠. 또 하나 배웠어요. 퀵 체인지 때 의상이 땀에 젖었던 기억이 나요. 시간을 돌려도 그 때로는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웃음)."
지난해 10월 뮤지컬 '창업'을 시작으로 연극 '환상동화', '또! 오해영', '서편제'까지 배우로서 일 년 만에 다채로운 커리어를 쌓았다. 이는 팬데믹으로 SF9이 무대 위에 서는 자리가 적어지자 다른 창구로 팬들과 만나고 싶다는 마음에서 시작됐다.
"코로나19 때문에 정말 힘들었어요. 활동을 해도 팬을 볼 수가 없었거든요. 그 때 '창업'을 하게 됐어요. 뮤지컬이 팬들과 만날 수 있는 감사한 명분이 됐죠. 큰 기대 없이 시작했는데 '환상동화' 연극 제의가 들어온 거예요. 제 첫 반응이 '제가요? 연극이요?'였어요. 하하. 그런데 도전해 보고 싶더라고요. 감사하게도 '또! 오해영'까지 할 수 있게 되니까 '이번에도 잘 싸워보자' 싶었죠. 이후에 '서편제'까지 캐스팅 제의가 와서 정말 기뻤어요. 팬들이 대학로 소극장에서 대극장까지 서게 된 저의 모습을 보고 많이 성장했다고 좋아해 주셨어요. 저 역시도 스스로 수고했고 대견하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재윤은 새로운 도전에 앞서 겁이 났지만, 이내 곧 뮤지컬과 연극에 흥미를 느꼈다. 직접 해보니 실시간으로 무대 위에서 관객과 소통하는 일은 즐거웠고, 잘하고 싶은 욕심까지 생겼다.
"사실 제 MBTI가 INFP라 걱정이 많아요. 그런데 일로 닥치니까 피하고 싶지 않더라고요. 무조건 경험해 보고 싶었어요. 시간이 지나니 점점 잘하고 싶다란 생각이 들었고요. 항상 무대에 올라가기 전에는 긴장이 돼요. 그런데 공연 20분 전이면'역으로 감동시키면 어떤 그림이 될까'라고 마음이 바뀌어요"
그의 첫 뮤지컬 '창업'은 고려의 멸망과 조선 건국에 이르는 역동적인 시대를 뮤지컬화 한 퓨전 사극. 재윤은 이방원 역을 맡아 과감하고 냉혹한 리더십으로 조선의 건국을 주도하고, 훗날 태종이 되는 인물을 연기했다. 이방원의 거친 모습은 물론, 서러움, 쓸쓸함 등의 감정을 담아내 호평을 얻었다.
특히 회한의 눈물을 흘리고 토해내는 장면은 그 동안 재윤에게 볼 수 없었던 모습으로 팬들 사이에서도 화제가 됐다.
"'창업' 대본을 보는데 마지막이 이방원이 왕좌에 올랐지만, 눈물이 흐른다'라고 써 있더라고요. 어떻게 눈물을 흘려야 하지 싶더라고요. 제가 눈물도 별로 없어요. '에라 모르겠다' 하고 연습에 들어갔는데 마지막 신에서 영규가 저에게 노래를 불러주는데 눈물이 나더라고요. 너무 울컥해서 엉엉 울었어요. 매번 눈물이 나진 않았어요. 하지만 작품을 통해 억지로 눈물을 짜낼 필요가 없더라는 걸 배웠어요. 오히려 더 억지스러울 수 있더라고요."
'창업'이 첫 뮤지컬이라면 '환상동화'는 그에게 첫 연극이었다. '환상동화'는 서로 다른 성격과 사상을 가진 사랑광대, 전쟁광대, 예술광대가 등장해 '사랑', '전쟁', '예술'에 대한 속성을 담아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는 액자식 구성의 작품으로 고정 팬층이 두텁다. 재윤은 귀여움과 순수함이 묻어 나오는 자신만의 사랑광대를 완성하는 데 중점을 뒀다.
"사랑스러운 광대이고 싶었어요. 연출님이 '애교가 많느냐'고 물어보시길래 팬들에게 애교가 넘친다고 대답했더니 편하게 한 번 해보라고 하시더라고요. 형들도 '하고 싶은 대로 해봐라, 과하면 빼면 되지 않느냐'라고 제가 열어놓고 보여줄 수 있도록 격려해 주셨어요. 그래서 형들과 리허설과 연습을 하면서 저만의 사랑 광대가 나올 수 있도록 노력했죠."
'아이돌 멤버'라는 꼬리표나 편견은 크게 개의치 않으려 한다. 최선을 다해 최고의 표현을 보여주면 된다는 생각이다.
"스스로 깨야 한다는 부담감은 있어요. 하지만 이걸 어떻게 봐주실까는 관객들의 몫인 것 같아요. 저는 보러 오시면 감사하게 생각해 최선을 다할 뿐이에요. 이후의 감상은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니까요."
재윤이 SF9으로 무대 설 때와 뮤지컬 배우로서 내뱉는 발성부터 목소리 톤, 음역대까지 확연히 다르다. 이는 데뷔 후 자신의 강점과 약점을 잘 파악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노력한 시간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회사에 들어온 이후 보컬 레슨을 지금까지 받고 있어요. 저는 제가 무엇이 부족한 지 너무 잘 알아서 그걸 극복하려고 한 우물만 파거든요. 뮤지컬에도 관심 있어서 영상을 찾아보고 연습도 해본 적이 있어요. 그 동안 연습하던 것들을 실제 뮤지컬에 써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거죠. 확실히 SF9 재윤으로 활동할 때와 뮤지컬 배우 재윤의 모습과 목소리가 달라지더라고요. 지금도 추구하고자 하는 방향이 있으면 계속 연습을 해요."
노래 뿐만 아니라 연기도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다. 특히 '서편제'의 동호는 드라마와 감정의 낙폭이 큰 인물이었지만, 어색함이 없었다.
"코로나 때 노래할 수 있는 무대가 적어져서 진짜 힘들었어요. 노래 할 수 있는 곳은 지하 연습방 뿐이었어요. 그곳에서 혼자 노래하는 것도 너무 지치더라고요. 저는 팬, 관객들과 만나야 살아있는 기분이 들거든요. 그래서 '연기를 한 번 배워볼까' 싶었죠. 그런데 연기를 배우고 웹드라마를 해보니 쉽게 도전할 영역이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노래만 해야겠다 체념했는데 '창업'을 하면서 다시 도전할 기회가 생겼죠. 그 때도 연기가 너무 어려워 고민이 많았어요. 그래도 뮤지컬을 하려면 해야 했죠. 다행히 선배님들이 도와주셔서 잘 마무리 한 것 같아요."
재윤이 하는 모든 일의 원동력은 팬들의 사랑이다. 2016년 10월 5일 데뷔한 SF9은 올해 6주년을 맞았다. 11월 18일 서울을 시작으로 같은 달 30일 뉴욕, 12월 2일 시카고 등 미국 5개 도시에서 '딜라이트 투어'(2022 SF9 LIVE FANTASY #4 DELIGHT TOUR)를 앞두고 있다. 오프라인 무대에서 팬들과 만날 생각에 들떠있다. 재윤은 팬들을 위해 새로운 무대를 준비 중이라고 귀띔했다.
"6주년까지 온 것도 너무 좋고, 6주년을 축하해 주는 팬들이 있다는 것도 감사해요. 팬이 많아진 것도 기쁘고요. 7주년, 8주년, 9주년 앞으로 숫자가 안전하게 갔으면 좋겠어요. 저는 팬들이 너무 좋거든요. 저희만 나오면 눈에 별을 박은 안광으로 집중 해요. 그 모습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모를 겁니다. 그 눈빛들을 받고 있으면 정말 행복해요. 또 저희를 귀여워해 주는 것도 너무 좋아요. 저희 멤버들이 키 등 체구가 큰데 훨씬 작은 팬들이 '아기', '갓기'라면서 해주는게 너무 귀엽거든요.(웃음) 이 직업이 아닌 이상 느끼기 힘든 사랑이라 항상 감사해 하고 있어요."
재윤의 강점은 성실함과 호기심이다. 마음에 드는 일이 생기면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란 생각부터 하게 된다. 이 성실함과 호기심, 그리고 아직 보지 못한 재윤의 모습과, 가능성이 뮤지컬 배우 재윤을 기대하게 만든다.
"아직 갈 길이 멀어요. 하고 싶은 일들도 많아요. '서편제'를 끝으로 텀이 생기겠지만 기회가 되면 계속 좋은 작품으로 인사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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