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한국감평사협회 공정위 상대 승소 판결 뒤집어… "문서탁상자문 금지 경쟁제한성 따져 봐야"
[아시아경제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한국감정평가사협회(협회)가 소속 회원들의 문서탁상자문을 전면 금지한 것은 사업자단체에게 금지된 부당한 공동행위 유형 중 하나인 '용역 거래의 제한'에 해당될 수 있어 경쟁제한성을 살펴봐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탁상자문은 금융기관 등 의뢰인이 정식 감정평가를 의뢰하기 전에 토지 등의 대략적인 예상가액 등을 알아보는 것을 일컫는 실무용어다.
대체로 정식 감정평가를 의뢰하기 전에 대출 여부 등을 신속하게 결정하고 불필요한 정식 감정평가 비용을 절감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는데, 일반적으로 감정평가업자가 탁상자문을 의뢰받으면 소속 일반 직원이 현장 실지조사 없이 사무실에서 물건의 간략한 정보만을 토대로 평가 전례와 인근 실거래가 내역 등을 참고해 대략적인 예상가액을 산정해 알려준다.
전달 방식에 따라 음성으로 전달하는 구두탁상자문과 간략한 물건정보 및 예상가액이 기재된 서면 등을 통해 전달하는 문서탁상자문으로 구분된다.
앞서 원심은 협회가 문서탁상자문을 전면 금지시켰다고 해도 구두탁상자문이라는 대체 용역이 있기 때문에 공정거래법상 부당공동행위 유형에 처음부터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 사건 발생 당시의 공정거래법(이하 같음) 제19조(부당공동행위) 1항 3호가 금지하고 있는 '용역의 거래를 제한하는 행위'는 용역의 제공이나 구매 등 거래를 일부 또는 전부 제한하는 행위이면 충분하고, 일정한 거래분야에서 제한의 대상이 되는 용역과 대체 가능한 용역이 존재하는지 등을 고려해서 판단할 필요가 없다는 이유로 원심판결을 뒤집었다.
26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협회가 공정위를 상대로 낸 시정명령 및 과징금납부명령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원심 판단에는 공정거래법 제19조 1항 3호의 적용범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이유를 밝혔다.
협회는 2012년 5월 25일 개최한 임시이사회에서 소속 회원들의 문서탁상자문을 전면 금지하고 구두탁상자문만을 허용하는 내용의 '탁상감정 방식 변경에 관한 건'이라는 제목의 안건을 의결했다.
이에 따르면 같은 해 6월 7일부터 모든 감정평가 의뢰인에게 문서탁상자문을 제공하는 행위가 금지되고, 구두탁상자문의 형태로 예상가액의 30% 범위에서 추정가격을 제공하는 것만 허용됐다.
구체적으로는 ▲은행에서 보관 가능하도록 인쇄가 가능한 탁상감정 ▲유상, 무상을 불문한 모든 문서탁상감정 ▲이메일로 탁상감정을 보내는 것 ▲팩스로 탁상감정을 보내는 것 ▲문자메시지나 그림 파일 등으로 추후 인쇄 가능하게 보내는 것 ▲우편으로 탁상감정을 보내는 것 ▲전화 상으로 기존의 탁상감정처럼 단가·면적·금액을 통보하는 것이 금지됐고, 전화 상으로 가령 '약 10억원에서 13억원 정도 될 수 있습니다'라는 식으로 일정 범위(약 30% 범위)에서 추정치를 보내주는 것만 허용하는 내용이었다.
이후 협회는 2012년 5월 29일 소속 회원들에게 이 같은 안건이 의결된 사실을 통보한 뒤 의결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 상벌규정을 개정, 금지된 문서탁상자문을 하는 회원들에 대한 징계 규정까지 마련했다.
그리고 공정위는 협회의 이 같은 조치들이 공정거래법상 사업자단체에게 금지된 행위 중 하나인 제26조(사업자단체의 금지행위) 1항 1호 위반, 즉 사업자단체의 부당한 공동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 2019년 10월 28일 협회에 대한 시정명령, 통지명령, 공표명령 및 과징금납부명령을 내렸다.
공정위의 협회를 상대로 한 처분은 구체적으로 ▲협회가 문서탁상자문을 일방적으로 금지시키고 이를 준수하도록 강요하는 방법으로 구성사업자의 용역의 거래를 제한함으로써 탁상자문서비스 시장에서 부당하게 경쟁을 제한하는 행위를 즉시 중지하고 이와 동일하거나 유사한 행위를 다시 해서는 안 되며(시정명령) ▲시정명령을 받은 날로부터 30일 이내에 공정거래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시정명령을 받았다는 사실을 소속 회원들에게 공정위가 제시한 문안대로 이메일로 통지하고(통지명령) ▲시정명령을 받은 날로부터 30일 이내에 공정거래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시정명령을 받았다는 사실을 공정위가 제시한 문안대로 9일간 홈페이지에 게재해 공표해야 하고(공표명령) ▲60일 이내에 5억원의 과징금을 납부하라는 내용이었다.
그러자 협회는 이 같은 공정위의 여러 명령들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냈다.
공정위의 처분에 대한 불복소송은 다른 일반 사건들과 달리 2심제로 운영되며 서울고등법원이 전속관할 법원이다.
서울고법에서 진행된 원심 재판에서는 먼저 '관련 시장의 획정' 문제가 쟁점이 됐다.
공정위는 이 사건의 관련 시장은 '문서탁상자문 시장'으로 봐야 된다고 주장했다. 탁상자문과 정식 감정평가와는 구별되며, 문서탁상자문과 구두탁상자문도 보수체계나 결과의 신뢰성 등에서 뚜렷한 차이가 있기 때문에 서로 달리 봐야 한다는 이유였다.
그리고 협회의 조치는 문서탁상자문 시장에서 문서탁상자문 용역의 거래 자체를 원천 차단함으로써 수요자들의 선택가능성을 전면적으로 박탈한 동시에 구성사업자들의 경쟁을 제한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경쟁제한성'이 인정되는 만큼 공정위의 처분은 정당하다고 주장했다.
반면 협회 측은 탁상자문이 성질상 정식 감정평가와 독립해 거래되거나 별개의 효용을 가진다고 볼 수 없기 때문에 이 사건 행위의 관련 시장은 탁상자문과 정식 감정평가를 포함한 '감정평가업 시장'으로 획정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설사 전체 감정평가업 시장으로 보지 않더라도 문서탁상자문과 구두탁상자문은 기능과 효용이 동일하고 수요와 공급의 대체가능성도 높기 때문에 최소한 '탁상자문 시장' 전체를 관련 시장으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협회 측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탁상자문은 정식 감정평가와 구별되는 별개의 용역으로 양자가 하나의 관련 상품(용역) 시장에 속한다고 보기는 어렵다"면서도 "문서탁상자문과 구두탁상자문은 동일한 관련 상품(용역) 시장에 속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나아가 "공정거래법 제19조 1항 3호의 '용역의 거래를 제한하는 행위'는 공동행위자들이 정한 범위 내에서 관련 시장의 용역 거래 자체를 전면적으로 제한함으로써 용역의 공급량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의미한다고 봐야 하고, 특정한 거래의 방식이나 용역의 종류만을 제한하는 경우 등 공동행위자들이 정한 범위 내에서도 제한되는 용역과 대체가능한 용역의 공급이 가능한 경우는 제외된다"고 밝혔다.
이어 "그런데 이 사건 행위는 관련 상품(용역) 시장인 탁상자문 시장의 용역 중 문서탁상자문이라는 특정한 방식이나 종류의 용역 거래만을 제한하는 것이라고 볼 여지가 있을 뿐 탁상자문 시장의 용역 거래 자체를 전면적으로 제한하는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며 공정위의 시정명령, 통지명령, 공표명령, 과징금납부명령을 모두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관련 시장을 문서탁상자문 시장으로 좁게 보지 않고 전체 탁상자문 시장으로 볼 때, 문서탁상자문이 금지됐다고 해도 대체 가능한 구두탁상자문이 존재하는 만큼 부당하게 사업자의 용역 거래를 제한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결론이다.
한편 공정위는 재판에서 공정거래법상 사업자단체에게 금지된 부당공동행위 유형 중 애초 시정명령 등 처분의 사유였던 공정거래법 제26조 1항 1호 중 제19조 1항 3호 '용역의 거래를 제한하는 행위' 외에 예비적으로 공정거래법 제26조 1항 1호 중 제19조 1항 9호(다른 사업자의 사업활동 방해) 위반을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두 처분사유의 기본적 사실관계가 동일하지 않다는 이유로 애초 공정위의 처분사유가 아니었던 사유를 재판 과정에서 추가할 수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공정거래법 제19조 1항 3호에서 금지하는 '용역의 거래를 제한하는 행위'의 행위유형에 해당하려면 용역의 제공이나 구매 등 거래를 일부 또는 전부 제한하는 행위이면 족하고, 일정한 거래분야에서 제한의 대상이 되는 용역과 대체 가능한 용역이 존재하는지 등을 고려해 위 규정의 적용 여부를 가릴 것은 아니다"라고 전제했다.
이어 "원고의 이 사건 행위는 구성사업자들의 문서탁상자문 제공을 금지하는 행위로써 공정거래법 제26조 1항 1호, 제19조 1항 3호에서 정한 '용역의 거래를 제한하는 행위'의 행위유형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따라서 원심으로서는 이 사건 행위가 법 제26조 1항 1호, 제19조 1항 3호의 행위유형에 해당함을 전제로, 관련시장인 탁상자문 시장에서 부당하게 경쟁을 제한하는지 여부를 심사해 그 위법성을 판단했어야 한다"며 "그런데도 원심은 이 사건 행위가 법 제26조 1항 1호, 제19조 1항 3호의 행위유형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곧바로 이 사건 처분이 위법하다고 판단했다"고 지적했다.
즉 일단 사업자단체에 금지된 부당한 공동행위 유형 중 '용역의 거래 제한' 행위에 해당함을 전제로, 경쟁제한성이 있는지를 판단해 공정위의 조치가 적절했는지를 따져봤어야 하는데, 원심이 구두탁상자문이라는 대체 용역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아예 공정거래법 제19조 1항 3호의 '용역의 거래 제한' 행위 유형에 포함조차 되지 않는다고 본 것은 잘못이라는 취지다.
마지막으로 재판부는 "이러한 원심 판단에는 법 제19조 1항 3호의 적용범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며 "이를 지적하는 취지의 상고이유 주장은 이유 있다"고 파기환송의 이유를 밝혔다.
*참고 조문 (현행 공정거래법이 아닌 사건 발생 당시, 즉 이 사건 재판에 적용된 개정 전 공정거래법 조항임)
제26조(사업자단체의 금지행위) ①사업자단체는 다음 각호의 1에 해당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된다.
1. 제19조(부당한 공동행위의 금지)제1항 각호의 행위에 의하여 부당하게 경쟁을 제한하는 행위
제19조(부당한 공동행위의 금지) ①사업자는 계약·협정·결의 기타 어떠한 방법으로도 다른 사업자와 공동으로 부당하게 경쟁을 제한하는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할 것을 합의(이하 "부당한 공동행위"라 한다)하거나 다른 사업자로 하여금 이를 행하도록 하여서는 아니된다.
1. 가격을 결정·유지 또는 변경하는 행위
2. 상품 또는 용역의 거래조건이나, 그 대금 또는 대가의 지급조건을 정하는 행위
3. 상품의 생산·출고·수송 또는 거래의 제한이나 용역의 거래를 제한하는 행위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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