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북한군 격퇴 언급 없이...美 "지상군, 北WMD 제거 투입"
미국이 유사시 주한미군 지상군의 주요 임무에서 유사시 북한 지역 안에서의 대량살상무기(WMD) 제거 등에 우선순위를 둘 것이라는 의사를 한국에 전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금까지 주한미군 지상군은 전시 북한군의 공격을 한국군과 함께 격퇴하는 게 임무라고 알려졌다.
25일 복수의 정부소식통에 따르면 지난 6월 30일(현지시간) 미 육군이 한국에 순환배치할 부대를 기존의 기갑여단전투단(ABCT)에서 스트라이커여단전투단(SBCT)로 대체한다고 발표하기 전 미국은 배경 설명을 한국에 전달했다. 익명의 정부 소식통은 “미국이 SBCT는 유사시 ①북한 지역으로 들어가 핵ㆍ화생방 등 WMD를 제거하는 작전 ②20만명이 넘는 미국 시민을 한반도 밖으로 내보내는 비전투원 철수 작전(NEO) ③미 본토와 해외기지에서 파병하는 미군 전력을 전개하는 전시증원(RSOI) 등에 투입될 것이라고 한국에 알렸다”고 말했다.
주한미군의 지상군은 9개월마다 미 본토에서 보내는 순환배치 부대가 주력이다. 직전 미 육군 제1기갑사단의 제1 ABCT가 한국에 배치됐고, 지난 7일부터 제2사단 제2 SBCT가 한국으로 이동하고 있다. 다음 달 9일엔 동두천시 캠프 호비에서 두 부대의 임무 교대식이 열린다.
ABCT는 M1 에이브럼스 전차와 M2 브래들리 보병전투차량으로 이뤄진 부대다. 기갑전력으로 꾸려졌기 때문에 화력이 세고 전면전에 특화했다. 반면 SBCT는 8개의 바퀴가 달린 M1126 스트라이커 장갑차 위주로 무장한 부대로 기동력이 뛰어나다
주한미군의 스트라이커 부대가 기동성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임무를 주로 맡는다는 게 미국의 설명이다.
이 소식통은 “SBCT의 순환배치가 역내 긴급사태가 발생할 경우 주한미군이 즉시 출동하는 전략적 유연성(Strategic Flexibility)과 별개라는 사실을 미국이 부각하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주한미군의 SBCT가 유사시 대만에 파병하는 것은 아니라는 취지라는 것이다.
SBCT엔 300대의 스트라이커 장갑차와 4500명의 병력이 있다. C-130 허큘리스 수송기로 세계 어느 곳이라도 96시간 만에 전개할 수 있다.
앞으로 SBCT가 한국에 부대를 바꿔가며 주둔하면서 ABCT보다 한ㆍ미 연합전력이 약해진다는 우려가 나온다. 또 다른 정부소식통은 “미국은 ‘경북 왜관에 1개 ABCT 분량의 무기와 장비를 사전물자(APS)로 보관하고 있고, 유사시 미 본토에서 병력만 공수하면 바로 전투에 투입할 수 있다’며 미국이 한반도 방위공약이 약해지는 건 아니라고 강조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 일각에선 미국의 SBCT로의 주한미군 지상군 재편 의도에 대해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전직 당국자는 “SBCT는 수송기로 신속하게 움직일 수 있는 기동부대”라면서 “SBCT 자체는 강력하진 않지만, 유사시 대만이나 남중국해에 긴급전개하는 선봉 역할을 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또 미국이 유사시 지상군은 한국에 기대고, 공중ㆍ해상 전력만 지원하는 방향으로 역할분담을 하려는 포석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미국은 전 세계적으로 군사력을 투사하기 때문에 한반도 상황만 고려하지는 않는다”며 “중국을 견제하는 데 집중하려고 한국의 기여를 더 요구하려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한ㆍ미는 지난해 12월 2일 서울 국방부에서 열린 제53차 한ㆍ미 안보협의회의(SCM)에서 고도화한 북한의 핵ㆍ미사일 능력에 대응하는 연합 작전계획(작계)을 새로 만들기로 합의했다. 양국이 공동으로 짜고 이르면 내년 초 승인을 받을 예정인 ‘작계 5022(가칭)’에서 개전 후 90일 안에 미국이 병력 60여만명, 항공모함 5척과 전투함 160여척, 군용기 2500여대를 한국에 보내기로 한 대규모 전시증원 전력이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그 경우 한국은 지상군을 중심으로 미국 전시증원 전력의 공백을 메워야할 상황이다. 박원곤 교수는 “정부가 국익을 생각해서 적극적으로 우려의 목소리를 미국에 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철재 기자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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