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단명' 트러스 사임 후 영국 총리 된 리시 수낵! 세계가 그의 혈통에 주목한 이유는?
보리스 존슨의 불명예 실각 이후 새 영국 총리가 된 건 리즈 트러스였습니다. 영국 역사상 3번째 여성 총리이자 엘리자베스 2세가 9월 서거하기 전 임명한 마지막 총리였고, 찰스 3세 즉위 후 첫 총리이기도 합니다. 영국 최초의 여성 총리이자 '철의 여인'으로 불렸던 마거릿 대처에 대한 존경을 공공연히 표현해 온 만큼, 트러스는 자유(시장경제)의 신봉자입니다. 거기에 전임자 보리스보다 과격한 행보로도 유명하죠.
30대 중반부터 내각의 주요 장차관직을 역임한 엘리트 관료 트러스가 영국 역사에 길이 남을 오명을 쓰고 말았습니다. 20일(현지시각), 총리를 맡은 지 고작 45일 만에 물러나겠다고 밝힌 건데요. 100일은 커녕 50일도 채우지 못한 재임 기간은 트러스에게 영국 최단기 내각, 최단명 총리라는 수식을 안겼습니다.
영국 내 트러스의 사퇴 여론을 강화한 가장 결정적 사건은 부자 감세 정책 강행이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전 세계가 경기 부양을 위해 돈을 마구 풀었던 결과가 스태그플레이션의 형태로 돌아오고 있는데요. 성장은 둔화하지만 물가는 오르는 거예요. 특히 유럽의 경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연료 공급을 제대로 받지 못하며 가스 및 전기 요금이 가파르게 치솟은 터라 민생은 더욱 팍팍해졌습니다.
그런데 트러스는 이 같은 에너지 요금 상승을 세금으로 보전하겠다고 하면서 부자들에게 세금을 깎아주겠다는 이상한 정책을 내놨습니다. 그런데 며칠 뒤 영국 중앙은행(BOE)이 장기 국채를 '필요한 만큼' 사들이겠다고 선언합니다. 쉽게 말하자면, 트러스는 시장에 돈을 풀겠다고 하는데 중앙은행은 돈을 거둬 들이겠다고 하고 있는 겁니다. 이 두 정책이 엇박자를 이루며 영국이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소리까지 나오고 있죠. 트러스의 지지율은 10%대까지 떨어졌습니다.
결국 트러스는 2주 만에 감세안을 백지화했지만, 이미 그를 향한 당 내외부 및 국민 감정은 최악으로 치달았습니다. 그로부터 3주가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트러스는 백기를 들었습니다. 보수당 대표직 사임 의사를 발표한 거죠.
생각보단 빨랐지만 이미 그의 사퇴가 예견된 상황이었기에, 차기 총리 후보들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는데요. 전 총리인 보리스는 휴가지에서 머물다가 트러스의 실각 소식을 듣고 부리나케 귀국했습니다. 총리직 탈환을 노린 모양새죠. 하지만 보리스의 생각과는 달리 보수당 내 그를 지지하는 세력이 그리 많지는 않았습니다. 곧바로 당수 선거에서 하차한 건 어차피 질 싸움이었기 때문입니다.
영국의 차기 총리는 인도계 이민자 2세인 리시 수낵 전 영국 재무장관입니다. 이미 보리스가 사임할 당시 당수 선거에서 트러스와 맞붙은 전력이 있죠. 영국 역사상 첫 유색인종 총리이며, 첫 1980년대생 총리입니다. 보리스가 등용해 키운 관료지만, 외려 보리스보다 인기가 많아진 인물이죠. 보리스가 사임하기 직전, 여론을 악화시킨 사건이 있었는데요. 성추행 혐의를 받는 크리스 핀처 의원을 원내부총무로 임명한 겁니다. 이에 수낵은 사지드 자비드 보건장관과 함께 사표를 냈습니다. 보리스에 대한 신뢰를 잃었다면서요. 이들의 사임 이후 내각 관료들이 같은 이유로 줄사임하며 결국 보리스가 물러나게 됐습니다.
수낵이 영국 보수당 대표가 된 것이 의미 있는 이유는 단순히 첫 유색인종 총리라서가 아닙니다. 수낵의 뿌리인 인도가 오랜 기간 영국의 식민지였기 때문이죠. 세계사 시간에 배웠던 '동인도회사'나 '세포이 항쟁' 등을 기억하시나요? 영국령 인도 제국이 설립된 후 1947년까지 인도는 영국의 식민지였습니다. 지금도 옛 영국 식민지였던 국가들이 소속된 국제기구 '영연방'의 회원국입니다. 한국과 완전히 같은 상황은 아니지만, 일본에서 재일교포가 자민당 당수가 된 것과 비슷한 느낌이죠.
수낵은 24일(현지시각) 중으로 찰스 3세 국왕을 알현하고 정식으로 영국의 총리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트러스가 한 달 반 동안 쑥대밭으로 만든 영국 경제를 수낵이 살릴 수 있을까요?
Copyright © 엘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