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권한 없이 장애인자동차 표지 놓고 일반구역 주차.. "공문서부정행사 아냐"
[아시아경제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사용 권한이 없는 사람이 장애인사용자동차 표지를 차량에 비치한 채 주차했더라도 장애인전용주차구역이 아닌 일반 주차구역에 주차했다면 공문서부정행사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공문서부정행사죄에서의 '부정행사' 개념을 사용 권한 없는 사람이 본래의 사용용도에 따라 사용한 경우로 축소해석하는 종래 대법원 판례에 따른 결론이다.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실효된 장애인자동차 표지를 자신의 승용차 전면에 놓은 채 일반 주차구역에 주차했다가 공문서부정행사죄로 기소된 김모씨(56)의 상고심에서 벌금 15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창원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5일 밝혔다.
재판부는 "이 사건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한 원심판결에는 공문서부정행사죄에서 '부정행사'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이유를 밝혔다.
김씨는 2020년 5월 20일 이미 실효된 부산광역시 동래구청장 명의의 장애인자동차 표지를 차량 전면에 비치한 채 아파트 지하주차장 일반 주차구역에 주차했다가 공문서부정행사죄로 재판에 넘겨졌다.
어머니가 장애인이었던 김씨는 2014년부터 보호자용 장애인자동차 표지를 적법하게 발급받아 사용해왔지만 2019년 11월 어머니와 주소지가 달라졌기 때문에 이후로는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는 상태였다.
재판에서 김씨는 ▲이미 효력이 없어진 장애인자동차 표지이기 때문에 공문서부정행사죄의 객체인 공문서로 볼 수 없고 ▲장애인전용주차구역이 아닌 일반 주차구역에 주차했기 때문에 본래의 용도에 따른 사용을 했다고 볼 수 없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하지만 1심과 2심 재판부는 이 같은 김씨의 주장을 모두 배척했다.
이들 재판부는 김씨의 첫 번째 주장에 대해서는 사용 권한자와 용도가 특정돼 진정하게 성립한 공문서의 경우 반드시 유효한 것 뿐만 아니라 실효된 공문서의 경우에도 공문서부정행사죄가 성립한다고 판단했다.
공문서부정행사죄는 '공문서의 사용에 대한 공공의 신용'을 보호법익으로 하는 추상적 위험범(법익 침해의 구체적·현실적인 위험이 없더라도 일반적인 법익 침해의 위험이 발생하면 성립하는 범죄)인데, 일단 유효하게 성립한 공문서의 경우 유효기간이 지나는 등 이유로 효력이 없어진 공문서라고 해도 부정사용했을 때 일반인에게 미치는 위험은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또 하급심 재판부는 김씨의 두 번째 주장은 장애인복지법이나 장애인복지법 시행규칙 등 관련 법령에 비춰볼 때 장애인자동차 표지는 장애인이 사용하는 자동차를 지원하는 데에 편리하도록 장애인이 사용하는 자동차임을 알아볼 수 있게 하는 표지이고, 장애인전용주차구역 주차는 장애인자동차 표지의 여러 용도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실제 장애인자동차 표지가 발급된 자동차에 대해서는 장애인전용주차구역 주차 외에도 세금감면, 주차요금 및 고속도로 통행료 감면, 주차위반에 대한 단속 과정에서의 배려(교통소통 및 안전에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에서 최대한 계도 위주의 단속) 등 혜택이 주어진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먼저 공문서부정행사죄를 엄격하게 축소해석해야 한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원용했다.
앞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01년 4월 "형법 제230조(공문서부정행사죄)는 구성요건으로 단지 '공무원 또는 공무소의 문서 또는 도화를 부정행사한 자'라고만 규정하고 있어, 자칫 처벌범위가 지나치게 확대될 염려가 있으므로 본죄에 관한 범행의 주체, 객체 및 태양을 되도록 엄격하게 해석해 처벌 범위를 합리적인 범위 내로 제한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또 재판부는 "사용 권한자와 용도가 특정돼 있는 공문서를 사용 권한 없는 자가 사용한 경우에도 그 공문서 본래의 용도에 따른 사용이 아닌 경우에는 공문서부정행사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2003년 대법원 판결도 인용했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피고인이 장애인자동차 표지를 승용차에 비치한 채 장애인전용주차구역이 아닌 장소에 승용차를 주차한 것은 장애인자동차에 대한 지원을 받을 것으로 합리적으로 기대되는 상황에서 장애인자동차표지를 승용차에 비치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며 "이러한 사실을 앞서 본 법리에 비춰 살펴보면, 피고인이 장애인자동차표지를 본래의 용도에 따라 사용한 것으로 볼 수 없으므로 공문서부정행사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결론 내렸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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