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중앙] 오염된 물·땅 정화 돕는 정수식물 황조롱이·수달 찾는 생태계 이루죠
정수식물(挺水植物)이란 단어를 들어본 적 있나요. 얕은 물에서 자라며, 뿌리는 진흙 속에 있고 줄기·잎의 대부분은 물 위로 뻗어 있는 식물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에요. 갈대·부들·연꽃·줄 등이 해당하죠. 한 평 땅도 금싸라기의 가치가 있다는 서울에 정수식물들이 모여 사는 거대 습지가 있습니다. 바로 서울시 마포구 상암동 일대에 있는 난지한강공원 생태습지원이에요.
난지한강공원 생태습지원은 사람이 드나들 수 있는 개방형 습지, 생태계 보전을 위해 출입이 통제되는 폐쇄형 습지, 새들이 머무는 생태 섬으로 구성돼 있어요. 개방형 습지에는 여러 농작물을 재배하는 작물원, 양서류가 많이 서식하는 연못, 한강을 조망할 수 있는 데크 등이 있죠. 산책로를 따라 걸으면 무성하게 숲을 이룬 부들과 갈대도 볼 수 있고요.
서울에 이런 곳이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김하원·나예현 학생기자가 그 이유를 알아보기 위해 난지수변생태학습센터를 찾았어요. 시민들에게 한강에 서식하는 생물의 다양성과 자연의 소중함을 알리고, 생태 감수성을 키워주기 위해 설립된 곳이죠. 김영선 생태교육팀장이 부들과 갈대가 우거진 습지로 이들을 이끌었어요.
"난지한강공원 생태습지원은 원래 한강 하류에 있는 버려진 모래땅이었어요. 이곳 주변에는 엄청난 양의 쓰레기가 매립돼 있는데, 거기서 흘러나온 침전물이 한강으로 유입되는 걸 막기 위한 완충지대가 필요했죠. 그래서 2009년에 한강에서 물을 끌어다가 습지를 조성했어요."
김 팀장의 말처럼 한강변에 있던 난지도는 1978년 서울시 쓰레기 매립장으로 지정돼 15년(1978~1993) 동안 서울시에서 발생한 약 9200만㎥의 생활 쓰레기와 건설·산업폐기물이 묻힌 땅이 됐어요. 쓰레기가 썩으면서 생기는 물인 침출수 유입으로 주변 한강과 지하수 및 토양 오염이 극심했죠. 하지만 난지한강공원 생태습지원이 조성되면서 약 1000종의 동·식물이 서식하는 자생적인 생태계로 탈바꿈했어요.
습지(濕地)란 습기가 많은 축축한 땅을 의미해요. 물기를 머금고, 웅덩이나 연못도 많기 때문에 물에서 자라는 수생식물이 살아가기 적합한 환경이죠. 수생식물은 식물체가 물에 잠긴 정도에 따라 침수식물·정수식물·부엽식물·부유식물로 구분해요. 침수식물은 검정말·물수세미처럼 식물의 전체가 물에 잠겨 생활하는 식물군입니다. 정수식물은 갈대·부들처럼 수중 토양에 뿌리를 내리고, 잎과 줄기는 물 밖으로 자라는 식물군이죠. 부엽식물은 수련·마름처럼 수중 토양에 뿌리를 내리고 잎은 물 표면에 띄우고 있는 식물군이에요. 부유식물은 개구리밥·생이가래처럼 식물체 전체가 수중·수면에 떠다니며 생활하는 식물군을 말해요.
소중 학생기자단은 난지한강공원 생태습지원에 사는 여러 종류의 수생식물 중 정수식물을 중점적으로 살펴봤죠. 수생식물 중에서도 물가에 자라기 때문에 비교적 관찰이 용이합니다. 또한 여러 소동물의 보금자리이기도 해서, 평소 보기 힘든 천연기념물 동물들이 난지생태습지원을 찾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죠.
첫 번째 주인공은 연못가나 낮은 지대의 습지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인 부들입니다. 소시지를 닮은 모양의 7∼10cm 길이 열매 이삭이 특징인 식물이죠. 산책로 주변에 가득한 부들을 관찰하던 하원 학생기자가 "대부분의 식물은 뿌리가 물에 장기간 노출되면 썩는다고 들었어요. 그런데 정수식물을 포함한 수생식물은 어떻게 뿌리가 썩지 않나요?"라고 질문했어요. "그건 (수생식물의) 구조와 관련 있어요." 김 팀장이 옆에 있던 부들의 잎을 하나 잘랐어요.
김 팀장이 보여준 부들잎의 단면은 거미줄 같은 흰색 실들이 모기장처럼 복잡하게 얽혀있는 형태였어요. 육안으로도 구멍이 숭숭 나 있는 걸 확인할 수 있었죠. 이렇게 식물체 내의 세포 간극이 넓어서 그물 모양으로 보이는 형태를 통기조직(通氣組織)이라 해요. 수생식물들, 특히 정수식물은 공기를 뿌리까지 잘 전달하기 위해 줄기나 잎이 통기조직으로 구성된 경우가 많아요. 덕분에 뿌리가 물속에 완전히 잠긴 상태에서도 식물체가 썩지 않죠.
통기조직이 발달한 식물은 뿌리에서 흡수한 물을 수증기로 만들어서 잎까지 끌어올린 뒤, 다시 공기 중으로 배출해요. 수분이 식물에서 대기로 빠져나가는 현상을 증산(蒸散) 작용이라고 하죠. 이를 통해 식물은 체온과 체내 수분량을 조절하고, 주변의 온도까지 낮추는 역할도 해요.
수생식물은 증산 작용을 하면서 물을 정화해요. 그 대표적 예가 정수식물에 속하는 갈대예요. 부들과 마찬가지로 습지나 냇가에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이죠. 인·질소 등을 함유하는 더러운 물이 호수·강·연안에 흘러들면 플랑크톤이 이것을 양분 삼아 비정상적으로 번식하여 수질이 오염되는데, 이러한 현상을 부영양화(富營養化)라 해요.
갈대는 부영양화 현상을 완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잎과 줄기에 질소·인 등 오염물질을 저장하여 주변의 오염물질 농도를 감소시키고, 뿌리에는 구리·카드뮴·납 등의 중금속을 축적해 주변 토양을 중금속 오염으로부터 지키는 역할까지 해내죠. 하천이나 강 근처에서 흔히 보던 갈대가 이렇게 대단한 일을 하는 식물이었다니 놀랍지 않나요.
갈대·부들 외에도 한국인의 주식인 쌀을 열매로 맺는 볏과의 한해살이풀인 벼 역시 정수식물입니다. 김 팀장과 함께 걸었던 개방형 습지 산책로 한쪽에는 뿌리 부분이 물에 잠긴 벼들이 누렇게 익어가고 있었어요. "이곳에서 청개구리를 만나고 싶어서 6년째 벼농사를 짓고 있어요. 청개구리가 이런 환경을 좋아하거든요. 참고로 논 한 마지기에는 약 300종의 생물들이 서식할 수 있답니다."
이처럼 습지에 정수식물이 군락을 이루면 독자적 생태계가 형성돼요. 예를 들어 쥐과의 포유류인 멧밭쥐는 억새밭을 좋아하는데, 멧밭쥐가 서식하면 이를 먹이로 즐겨 먹는 천연기념물인 매과의 조류 황조롱이도 습지를 찾게 되죠. 또 물이 정화돼 생물이 살 수 있게 된 습지에는 참게·말똥게 등도 서식하는데, 이를 먹기 위해 민물 생태계 포식자이자 천연기념물인 수달도 출몰해요. 물이나 땅에서 모두 생활하기에 습지를 보금자리로 선호하는 양서류와 이들을 먹이로 삼는 뱀과 백로는 물론이고요. 실제로 소중 학생기자단은 산책로를 걷다가 덤불 위에 있는 뱀 허물을 발견했죠.
예현 학생기자가 "이렇게 조성된 습지 생태계는 도시에 어떤 긍정적 영향을 미치나요?"라고 질문했어요. "혹시 열섬 현상이라는 말을 들어봤나요. 서울 등 사람이 많은 도시는 주변의 시골보다 기온이 높아요. 도시에 사는 많은 인구를 위해 소비된 에너지에서 나온 열이 공기를 후덥지근하게 만드는 거죠. 도시 안에 이런 습지가 있으면 열섬 현상을 완화하는 역할을 해요. 또 습지가 미세먼지나 초미세먼지를 흡수하는 역할도 합니다."
갈대·부들·벼가 모여 사는 습지가 이런 역할을 한다니. 알고 보니 습지는 정말 보물 같은 곳이었네요. 소중 독자 여러분도 앞으로 주변의 하천이나 호숫가 공원을 산책할 때 어떤 식물들이 있는지 주의 깊게 관찰해 보세요. 알고 보면 기후 조절, 수질정화, 생물종 다양성 유지 등에 기여하는 고마운 존재니까요.
■ 학생기자단 취재 후기
「 저는 수생식물이 물에 사는 식물이라는 사실밖에 몰랐어요. 하지만 이번 취재를 통해 수생식물은 줄기와 잎이 물 위로 솟아오른 정수식물, 잎만 수면에 뜬 부엽식물, 잎과 뿌리가 수면에 있어 떠다니는 부유식물, 물속에 잠겨 사는 침수식물로 구분한다는 걸 알게 됐어요. 김영선 팀장님의 설명 덕분에 수생식물을 보면 배운 내용이 기억나고, "아, 이 식물은 정수식물이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돼요. 저의 관심사가 이번 취재 덕분에 넓어진 것 같아요. 이런 기회를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김하원(경기도 하스토리홈스쿨 6) 학생기자
처음 정수식물 취재를 간다고 들었을 땐 정수식물이 무엇인지 잘 몰랐고, 습지도 생소했어요. 그런데 난지한강공원 생태습지원에 들어가자마자 제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광경이 펼쳐졌죠. 바닥에는 물이 촉촉하게 있었지만 푹푹 빠지지는 않았고, 수풀이 우거지고 여러 동물이 있었어요. 특히 평소에 자주 보지 못한 사마귀와 거미, 백로 그리고 나무 위에 있는 뱀 허물까지 봤죠. 동물뿐 아니라 부들·갈대 등 다양한 정수식물을 만날 수 있어 좋았어요. 평소에는 다 비슷해 보였는데, 자세히 관찰해보니 크기와 모양이 다 제각각이어서 신기했죠. 무엇보다 취재 전에는 정수식물이 물을 깨끗하게 하는 식물이라고만 여겼는데, 물 바깥으로 줄기와 잎이 뻗어 나온 식물을 정수식물이라고 분류한다는 사실도 새롭게 배웠어요. 또 취재하는 동안 난지한강공원 생태습지원의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수 있어서 정말 좋았어요. 갈대와 억새숲 위로 조성된 데크를 따라 걸으면 태양이 이글거리는 하늘과 바로 앞까지 흘러드는 한강물을 볼 수 있어요. 습지는 우리가 사는 도시에 꼭 필요한 것 같아요. 환경오염도 줄여주고 다양한 정수식물과 동물들의 서식지이며 사람들에게도 힐링의 시간을 갖게 해주잖아요. 이런 습지를 잘 보존해서 환경오염도 줄이고 멸종 위기 동식물도 많이 살면 좋겠어요.
나예현(서울 행현초 5) 학생기자
」
글=성선해 기자 sung.sunhae@joongang.co.kr, 사진=임익순(오픈스튜디오), 동행취재=김하원(경기도 하스토리홈스쿨 6)·나예현(서울 행현초 5) 학생기자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오랜만이라 몰라보나"…'전국노래자랑' 출연자에 김신영 깜짝 | 중앙일보
- 결혼 하자마자 '피겨 여왕' 움직인다…김연아 첫 활동은 | 중앙일보
- The JoongAng Plus 런칭기념 무료 체험 이벤트
- 거길 때렸더니 몸 털며 도망쳤다...흑곰 물리친 美여성 비결 | 중앙일보
- 유동규 "이재명, 김문기를 몰라? 10년 쌓였다, 천천히 말려 죽일 것" | 중앙일보
- "김진태 큰 사고쳤다"…여당 지도부도 꾸짖은 '레고랜드 사태' | 중앙일보
- “500만 달러 송금지시서 입수…노무현 수사 뭉갤 수 없었다” | 중앙일보
- [단독] 윤 관저 첫 손님, 야당 대표 이재명 아니다...5부 요인 초대 | 중앙일보
- '비 청와대 공연 논란'에 하태경이 날린 일침 "꼰대질 그만" | 중앙일보
- "BTS 정국이 쓴 모자, 천만원에 판다"…그 번개장터 글 반전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