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욱의 미래를 묻다] 거실·주방 줄어들고, 방마다 화장실 생길 듯

2022. 10. 24.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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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빨라지는 ‘나 홀로 사회’


박상욱 서울대 과학학과 교수
기술은 사회를 얼마나 변화시키는가. 기술을 사회 변화의 결정적인 요인으로 보는 기술결정론의 매력은 단순한 논리에 있다. ‘세상을 바꾼 100대 기술’이나 ‘미래를 바꿀 10대 기술’ 같은 논의는 인기 있다. 기술결정론의 한계도 뚜렷하다. 기술을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처럼 외생적(外生的)으로 취급하고, 사용자와 사회를 피동적으로 본다. 기술의 사회적 구성(構成)론은 기술결정론과 대척점에 있다. 어떤 기술이 다른 기술보다 선호되는 데에는 가격 대비 성능 같은 시장 요인뿐 아니라 가치관·윤리·종교·관습·이념과 같은 요인이 작용하므로 기술은 사회적으로 선택된다는 것이다. 선택받지 못한 기술은 도태된다. 기술은 쓰기 위해 일부러 만드는 것이니 기술의 사회적 구성론은 당연하다.

선진국이 한국의 변화 따라올 듯

기술과 사회의 관계는 아마 이 두 이론 사이 어디쯤일 것이다. 기술 변화와 사회 변화는 동시에 일어나고 영향은 쌍방향적이다. 공동진화다. 나아가 기술과 사회를 한 통으로 생각하는 사회기술시스템(sociotechnical system) 관점도 있다. 전기·자동차·항공교통·인터넷·보건의료 등 수많은 기술시스템은 서로 연결되어 있을 뿐 아니라 사회와 융합되어 있다.

「 기술과 사회의 변화는 쌍방향적
IT발전에 개인·원자화 추세 가속

결혼은 손해? 합리적 선택일 수도
저출생 대책도 다각적 접근 필수

한국은 더는 ‘일본 추격자’ 아니야
가상인간에 대한 의존 더욱 커져

따라서 사회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기술의 차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해 기술적인 해법을 모색할 수도 있다. 고령 사회에 대응해 돌봄 기술이나 노인 친화적 생활환경을 만드는 것이 예다. ‘사회문제 해결형 R&D’가 정부 사업으로 진행되고 있다. 사회문제에 기술적 처방뿐 아니라 정책적 처방을 내어놓을 때에도 문제의 원인에 관련된 기술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

지난 9월 서울시청 앞 광장에 ‘2022 서울 건축문화제’ 야외 조형물 출품작들이 전시돼 있다. 올해 주제는 ‘라이프 스타일’로 스마트폰, 1인 가구 증가, 코로나19 대유행 등의 변화를 표현하는 출품작들이 소개 됐다. [연합뉴스]

흔히 한국의 사회 현상이 옆 나라 일본을 약간의 시차를 두고 따라간다고 한다. 학교나 직장에서의 왕따 문제, 묻지마 범죄, 고령화 사회, 지역 소멸 등 일본에서 먼저 등장한 사회적 문제가 한국에서 재현되는 경우가 잦으니 현상적으로 옳다. 왜 일본을 쫓나? 2000여년간 이웃이니 사회문화적 유사성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20세기 후반 양국에서 공유되는 현상은 현대 산업사회의 유사성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한국이 일본과 같은 기술들로 닮은 산업구조를 만들었기 때문에 비슷한 사회변화를 겪는다는 얘기다. 기술과 산업의 추격(catching-up)을 사회변화로 확장할 수 있다. 축적이 중요한 전통산업에서는 근로자의 역량을 회사 내에 두기 위해 평생직장 개념이 나왔다. 일본은 그런 면이 여전히 있는 것 같지만 한국은 아니다. 한국은 더 이상 일본의 추격자가 아니다. 한국은 사회변화에서도 첨단에 있다. 선진국들이 한국의 사회변화를 따라올 것이다.

세대간 생각 차이는 불가피

한국은 1960년대 초까지 농경사회였다. 농경사회에서는 자식이 노동력이고 생산재, 즉 자본이었다. 많이 낳는 게 이득이었다. 큰 가족은 지역공동체 내에서 큰 세력을 가졌다. 자녀 1인당 양육 비용은 많지 않았고, 아이들도 노동을 분담했다. 이런 생산양식에서는 저출생 문제가 있을 수 없다. 이후 한국 사회는 40여년 만에 산업사회로, 지식정보사회로, 후기정보사회인 초연결사회로 급속히 변모하였다. 선진국들이 200여 년에 걸쳐 겪은 변화가 한 세대 남짓 동안에 일어났다. 오늘날 70대는 이 변화를 모두 체험했다. 50대는 개발도상국 산업사회에서 태어났다. 30대는 정보화사회에서 태어났다. 10대는 초연결사회, 부자 나라 태생이다. 세대 간에 생각이 아주 다를 수밖에 없다.

농경사회와 산업사회, 그리고 정보화사회는 노동자의 필요 직능뿐 아니라 조직화의 양상이 다르다. 농경사회는 농지에 노동자가 배치되므로 근로조직의 밀도가 낮았고 인구가 농촌에 퍼져 있었다. 산업혁명 이후 공장은 농장보다 작은 면적을 차지하지만 높은 밀도가 필요하다. 농사와 달리 공장은 24시간 돌아가고 교대 근무는 밀도를 더 높인다. 경영관리직과 서비스업도 고층 오피스빌딩에서 고밀도화되었다.

노동자가 고된 하루를 마치고 노동능력을 회복하려면 적절한 휴식이 필수다. 규격화된 대단지 공동주택이 등장할 수밖에 없다. 산업화와 함께 진행된 도시화의 양상이다. 생산성과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이 도시에 입지하고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니 사람들이 도시로 쏠리고, 사람이 모이니 이들을 필요로 하는, 그리고 이들이 필요로 하는 산업이 발달해 도시화가 가속된다.

요리는 호사, 밀키트로 대체

정보통신기술이 지리적 거리를 삭제해 한적한 교외에서의 재택근무가 일반화될 것이라 예상했던 이들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틀렸다. 만나서 같이 해야 하는 일이 여전히 많고, 모여 살아야 누릴 수 있는 장점이 많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여가가 그렇다. 퇴근 후 ‘놀아서’ 감정적·정서적·정신적 피로를 해소해 다시 일할 의욕을 충전해야 하는데, 맛있는 음식, 기분 좋은 공간, 볼만한 구경, 궁금한 사람 등 즐길 거리는 도시에 많다. 사람은 참으로 유희의 동물이다. 이 점을 간과하면 안 된다.

미국의 정치학자 로버트 퍼트넘은 2000년에 발표한 『나 홀로 볼링』에서 미국 사회의 공동체 붕괴를 진단하며 볼링 동호회는 쇠퇴하고 혼자 볼링 치는 사람이 늘어난 것을 지표로 삼았다. 볼링장은 미국 중소 도시 커뮤니티의 중핵이었다. 코엔 형제의 1998년 영화 ‘위대한 레보스키’에 그 향수가 담겨 있다.

퍼트넘은 공동체 와해의 원인으로 콘솔 게임기와 케이블 TV 같은 엔터테인먼트의 개인화를 들었다. 22년 전 얘기다. 혼자서라도 외출해 볼링을 즐기고, 거실에 모여앉아 TV를 시청하는 것도 지난 일이다. 이제 엔터테인먼트는 더욱 개인화되어 한 공간 안에서도 각자 스크린과 이어폰으로 분리된다. 앞으로 주택 평면은 공동 공간인 거실과 주방이 축소되고 방마다 화장실을 갖추는 쪽으로 변할 것이다. 요리는 호사가 되고, 주방은 밀키트를 데우거나 배달음식 포장을 뜯는 정도면 충분할 것이다.

연예인의 사생활을 왜 엿볼까

예능프로에 혼자 사는 연예인의 생활을 엿보는 ‘핍쇼’(peep show)가 넘쳐난다. ‘혼자서 잘 사네’라는 생각이 든다. 가전제품이 상대적으로 저렴해지고 가사노동을 아웃소싱하기 쉬워지니 가족이랑 부대낄 필요가 없다. 나가서 일하는 사람과 내조하는 사람의 구분도 사라졌다. 가족과 공동체가 담당했던 도움은 시장화되고, 정서적 지원과 위로도 SNS 속 아이돌과 인플루언서에게 구한다.

창의적 작업이나 감성적 교감이 인간의 고유 영역이라는 것도 편견이다. 가까운 미래엔 인공지능 가상인간이 대인 감정노동을 담당할 것이다. 인간은 가상인간을 인간보다 더 매력적이게, 더 착하게, 더 관용적이게, 그리고 나에게만 더 집중하게 진화시킬 것이다. 여러모로, 타인이 필요 없는 세상이 온다.

사회과학이 자연과학의 용어를 빌려 쓰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원자화(atomization)’라는 말이 있다. 사회 구성원 각자가 개체 단위로 따로 놀고 구성원 사이의 관계가 단절되는 현상이다. 기술변화 때문에 사회적 원자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원자화론은 개인이 공동체적 가치에서 벗어나 충실한 합리적 경제인이 된다고 지적한다. 쉽게 말해 자기중심적 이기주의자가 된다는 것이다.

프랑스 철학자 피에르 부르디외가 말한, 사회적 권력관계와 계층을 결정짓는 세 가지 자본, 즉 경제자본, 사회자본, 문화자본 중 사회자본은 인간 사이의 관계로 형성하는 것이다.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관계자본 형성에 드는 한계비용이 제로(0)로 수렴한다. 사람을 만나 시간과 돈을 투자하는 대신 ‘페친’ ‘팔로우’ ‘구독’으로 사람들로 관계자본을 늘린다. 자본이 자본을 낳는 눈덩이 효과가 극대화한다. 전통적인 관계자본은 잠재적인 효용 중심이지만 초연결사회의 관계자본은 바로 금전적 가치로 환산되고 이전도 쉽다.

프랑스와 한국이 다른 이유

결혼은 두 개인 간에 가장 강력한 구속력을 갖는 전통적인 관습이자 제도로, 커플의 사랑뿐 아니라 그 둘이 가진 전통적 관계자본의 합병이라는 의의가 있다. 그런데 전통적 관계자본의 가치가 떨어지고 있다. 오늘날 개인에게 결혼은 손해고, 출산은 더 손해다. 저출생은 합리적 선택의 결과인 것이다.

높은 자살률도 원자화와 관련 있다. 결합이 없으니 독단적인 오판을 범하기 쉽다. ‘이번 생’에서 이미 잃은 것을 만회하기 불가능하다거나, 만회하느라 겪을 고생을 회피하는 게 낫다는 계산을 할지 모른다. 컴퓨터 게임을 하다 ‘망하면’ 플레이어를 리셋하는 것처럼.

저출생 대책을 만들 때 1970년대 급격한 출산율 저하를 겪고 적극적인 이민 정책과 육아 지원으로 극복한 프랑스를 자주 참고한다. 프랑스는 북·서아프리카와 중동의 과거 식민지 국가들과 관계를 유지해 친숙하면서도 사회 변화 단계가 다른 나라들로부터 이민을 받았다.

한국은 다르다. 물론 보육 지원, 주택 보급, 출산 및 육아 수당은 분명히 도움이 된다. 다만 이것들은 대증 요법이다. 1970년대 프랑스와 2022년 한국 사회는 사회변화를 초래한 기술의 차원이 크게 다르다. 사회정책에서 사회과학뿐 아니라 과학기술적, 인문학적 고려를 포함한 다학제적 접근이 필수다.

박상욱 서울대 과학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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