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끊을 자신은 없지만 지구가 걱정된다면

이준수 2022. 10. 22.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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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농장이 늘어날수록 열대우림은 감소.. 기후위기를 막기 위한 작은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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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수 기자]

모르는 게 약이라고 하더니, 알게 되어 곤란한 일이 생겼다. 커피를 마시지 않는 교수의 일화를 듣게 되었다. 나는 내 일도 아니지만 매우 안타까워하며, '카페인이 잘 안 받는 사람도 있지'라며 속으로 위로를 건넸다. 내 주변에도 오전 커피 한 잔에 잠 못 드는 사람이 왕왕 있었으므로 아주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그 일을 깜빡 잊고 지냈다. 그러다 제로 웨이스트 관련 책이 재미있어 보여서 읽다가 첫 장에서 공우석 교수를 발견했다. 커피를 마시지 않는 지리학자, 예전에 들었던 안타까운 사연의 그 사람이 맞았다. 공우석 교수가 커피를 마시지 않는 까닭은 나의 섣부른 안타까움과는 거리가 멀었다. 

커피를 끊은 교수님
 
 나에게 커피는 단순한 기호 식품 이상의 의미가 있다.
ⓒ 최은경
 
커피의 쓴맛이 싫어서도, 카페인 각성 상태가 몸에 부담을 주어서도 아니었다. 기후변화와 생물 다양성을 지키기 위하여 원래 무척 즐겨 마셨던 커피를 끊었다고 했다. 믿기 힘든 말이었다. 커피를 마시지 않는 사람이 있기는 하지만, 기후변화와 생물 다양성을 염려하여 커피를 마시지 않는 사람이 몹시 드물다. 

설마 그렇다고 할지라도 속마음을 입 밖으로 꺼내면 상대가 당황할 수 있으니 갖은 오해를 피하기 위해 침묵을 지키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커피가 없으면 살 수 없는 나는 진심으로 궁금해졌다. 공우석 교수의 의견을 시간을 들여 천천히 읽었다.

공우석 교수는 커피가 자라는 적도 주변 열대 우림이 커피 농장으로 바뀌고 있다고 경고했다. 이미 세계 열대림의 절반 정도가 사라졌고, 현재도 매년 한반도 면적의 열대 우림이 지도에서 지워지고 있었다. 파괴적인 현상의 근본 원인은 커피였다. 너무나도 바쁘고 지쳐서 각성 효과 없이는 일상을 버티기 힘든 현대인의 애호품인 커피.

지구인은 하루에 30억 잔에 가까운 커피를 마신다. 수요는 넘치고 커피 공급은 제한적이다. 커피 열매는 연평균 섭씨 15-24도에 속한 지역에서 자란다. 아라비카와 같은 고품종 커피일수록 고도가 높고, 일교차가 큰 곳에서 재배된다. 

커피는 돈이 되는 작물이기에 커피 농사를 지으려는 사람이 많다. 그렇지만 지구 기온이 높아지면서 커피 재배가 가능한 지역이 줄어들고 있다. 그 결과 기존의 농장은 쓸모가 없어지고, 열대우림을 개간해 커피농장을 새로 차려야 하는 것이다. 공우석 교수는 커피 농사로 인해 생물의 종과 개체수가 급격히 감소하는 현실을 우려한다. 이것이 생태계 다양성을 지키고픈 지리학자가 커피를 마시지 않는 이유였다. 

나는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지구에 흔적을 덜 남기는 삶을 실천해보고 싶어 <줄이는 삶을 시작했습니다>라는 책을 구입했다. 그러나 큰 마음먹고 읽기 시작한 책의 첫머리에서 공우석 교수라는 '강적'을 만나버렸다. 여러 번 한숨이 나왔다. "커피가 뭐 어때서!" 자기 합리화를 하고 싶은 마음이 목젖까지 차올랐다. 나에게 커피는 단순한 기호 식품 이상의 의미가 있다. 

아침에 일어나면 물 한 잔을 마시고 습관적으로 커피 원두를 드르륵 간다. 잠이 덜 깨 비틀거리면서도 수동 그라인더의 손잡이를 돌린다. 드리퍼와 서버, 드립포트까지 십 년 이상 사용한 나의 분신 같은 도구들은 눈을 감고도 조작이 가능하다. 아침에 한 잔 그리고 오후 네 시에 다시 한 잔. 이보다 빠르면 카페인이 과한 느낌이 들고, 늦으면 자는 시간을 맞추기 힘들다. 

고된 수험 생활의 빡빡한 사이클을 맞출 수 있었던 것도, 육아하며 애들에게 짜증 내지 않고 적당한 활력을 갖출 수 있었던 것도 커피의 덕이었다. 그다지 쓸모는 없었지만, 오십만 원이 넘는 돈을 주고 사설 학원에서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기도 했다. 나는 넉넉히 담은 커피 두 잔까지 속이 쓰리지 않았고, 잠도 쿨쿨 잘 수 있었다. 그야말로 커피와 궁합이 맞았던 것이다. 

커피 전문가는 못 되어도, 커피 애호가라고는 제법 씩씩하게 밝힐 수 있었는데 이젠 그러기가 힘들게 되었다. 내가 커피를 사랑하면 할수록, 자주 마시면 마실수록 열대우림이 줄어들게 된다는 현실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책을 안 읽은 것으로 치고 북북 찢어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나 나는 책을 끝까지 다 읽을 동안 커피를 계속 마셨다. 십 년 이상 지속해온 루틴을 단숨에 바꾸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러나 열흘이 지나도록 머릿속에서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감정적 대응을 자제하고, 이성적으로 접근해보기로 했다. 당연히 아라비카 스페셜티 커피를 매일 마시는 일상이 지구 관점에서 평범한 라이프 스타일은 아닐 것이다. 

커피 줄이기 한 달

나는 단 한 달만이라도 커피를 줄여보겠다고 결심했다. 고기를 적게 먹겠다고 다짐한 이후 과거에 비해 고기 섭취량이 절반 이상 감소한 좋은 전례가 있다. 커피도 마찬가지 아닐까. 두 잔에서 한 잔으로 줄이는 것은 해볼 만한 시도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커피 끊기는 험난하고도 고통스러웠다.

첫날에는 커피를 한 잔도 마시지 않았다. 안개가 낀 것처럼 머리가 뿌옇고 집중이 잘 되지 않았다. 빨래 널기와 청소기 돌리기와 같은 간단한 과업도 수첩에 적고 지워가며 해야 했다. 하루 종일 커피 생각이 났다. 저녁 무렵에는 머리가 아파왔다.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지만, 금연을 시도하는 사람의 마음이 이럴까 하고 추측해 보았다. 나는 카페인에 중독된 것이 분명했다. 

찬장에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던 루이보스 캐러멜 차를 마셔도 봤지만, 잠깐 진정될 뿐 몽롱하고 불쾌한 기분은 나아지지 않았다. 일주일을 불만 가득한 상태로 보냈다. 내가 이렇게 의존적이고 나약한 인간인가 싶어 자괴감이 들었다. 이 주 차에 접어들 무렵에는 꿈에서 커피를 마시고 바보처럼 실실 웃기도 했다.
 
 생태계 다양성 보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공우석 교수
ⓒ 한겨레 영상뉴스 유튜브 캡처
 
결국 나는 삼 주를 채우지 못하고 일어나자마자 게걸스럽게 원두를 갈았다. 누가 말릴 새도 없이 물을 끓여 커피를 내리고 향을 맡았다.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온 듯한 그리운 감정에 휩싸였다.

커피를 마시고 다시 말짱해져서 머리가 맑아졌다. 나는 더욱더 카페인 의존도를 낮춰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에 손품을 팔아보니 작두콩 차를 추천했다. 작두콩은 국내에서 재배 및 건조하므로 푸드 마일이 짧았다. 커피처럼 재배조건이 까다롭지도 않고 숲을 밀어 농장으로 개발할 정도로 수요가 넘치지도 않았다. 즉 환경적으로 안전한 음료였던 것이다. 

작두콩 차는 구수하고 부드러웠다. 작두콩의 효능을 전혀 알지 못한 채 마셨지만, 알레르기성 비염에도 효과가 있었다. 환절기마다 반복되는 재채기 횟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 그러나 나는 눈에 띄게 의기소침해졌다. 내가 원한 것은 생기를 부여하는 커피지, 의약품이 아니었다. 카페인을 섭취하지 못하자 나는 자주 졸렸고, 무력감을 느꼈다. 

머릿속에서 온갖 상념이 떠돌아다녔다. 생면부지인 공우석 교수에게 변명 같은 말을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꾸준히 플로깅 다니며 쓰레기를 줍는다, 차 한 대로 지방에 살면서 4인 가족이 가급적 걸어 다니며 산다, 파타고니아나 팀버랜드 같은 친환경 정책을 가진 기업 제품을 적극 이용한다, 그린피스와 서울 환경연합에 기부도 정기적으로 하고 있다, 고기를 덜 먹고 텃밭에서 채소도 키운다. 그러니까 살면서 커피 정도는 편하게 즐겨도 되지 않을까? 같은 자기 합리화를 계속했다. 

그래도 결심한 바가 있으니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보기로 했다. 집에 보관 중이던 홍차 3종과 케모마일, 로즈마리를 비롯한 모든 허브티를 돌려가며 마셨다. 덕분에 선물 받은 이후 한 번도 내려마신 적 없던 각종 차를 섭렵할 수 있었다. 기분 탓이겠지만 몸도 어딘가 개운해진 듯했다. 

이 좋은 커피 함께 오래 마시고 싶다
 
 구수하고 부드러웠지만, 내게는 2% 아쉬웠던 작두콩차
ⓒ 이준수
 
그러나 나는 작두콩 차 한 팩을 다 비우지 못하고 커피로 돌아왔다. 커피 없이는 예전의 컨디션으로 하루를 충만하게 보내기가 힘들었다. 세상에는 개인의 사정에 따라 대체가 거의 불가능한 기호품도 있었다.

대신 예전과 똑같지는 않다. 하루에 두 잔 마시던 버릇은 한 잔으로 줄었다. 나는 한 잔의 커피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찾아보았다. 공우석 교수는 커피 끊을 자신은 없지만 지구가 걱정되는 사람을 위해 4가지 커피를 제안했다. 바로 유기농 커피, 친조류 커피, 열대 우림 연합 인증 커피, 공정 무역 커피다. 

물론 시중의 다른 커피보다는 가격이 조금 나간다. 그러나 지속 가능한 개발과 환경에 관심이 많은 소비자가 늘어나는 추세라 다양한 커피 제품을 취급하는 상점과 카페가 늘어나고 있다. 나 또한 커피 원산지의 발전을 돕거나 커피 산지와 직거래 형식으로 커피를 원재료를 들여오는 카페의 제품을 이용하는 편이다. 하루에 섭취하는 커피 양이 줄었기에 예전에 비해 커피에 들어가는 돈이 적어졌다.

요즘은 머그컵 한 잔 부피의 커피를 반으로 나눠 오전과 오후에 마시고 있다. 감질나기는 하지만, 조금씩 홀짝이며 향을 소중하게 음미한다. 작은 맛의 변화도 놓치지 않으려 눈을 감기도 한다. 내게는 정말로 귀중한 한 모금이다. 어떤 제약이 걸려있어야 기쁨이 크게 다가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온실이 아닌 자연환경에서 커피를 재배할 수 있는 지역은 현재도 계속 줄어들고 있다. 어쩌면 삼십 년 뒤에는 천연 커피가 귀한 사치품으로 분류되어 대중이 즐기지 못할 수도 있다. 나는 다만 이렇게 좋은 커피를 다른 평범한 사람들과 함께 오래도록 즐기고 싶은 마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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