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믿음의 이 책 어때] 한국에 온 프랑스 장관이 그때 하지 못했던 말

서믿음 2022. 10. 2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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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콘퍼런스 참석차 한국을 찾은 플뢰르 펠르랭 당시 프랑스 문화부 장관에게 쏟아진 한국 기자들의 질문이다.

어릴 적 프랑스로 입양돼 장관직에 오른 이에게서 '나는 한국인의 정서를 갖고 있습니다'란 대답이 듣고 싶었던 것이겠지만, 플뢰르에게 그런 물음은 몹시 당황스러웠다.

생물학적 부모를 찾아 환부 중심에 접근할 수도 있었지만, 플뢰르는 "부모가 누구인지 안다고 해서 더 완전한 사람이 되거나 마음이 더 평온해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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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프랑스 문화부 장관인 플뢰르 펠르랭 에세이
한국인이 궁금해 한 자신의 정체성 소개
보이지 않는 선으로 한국과 인연 만드는 중

[아시아경제 서믿음 기자] “당신은 한국인이라고 느낍니까. 프랑스인이라고 느낍니까?”

2013년 콘퍼런스 참석차 한국을 찾은 플뢰르 펠르랭 당시 프랑스 문화부 장관에게 쏟아진 한국 기자들의 질문이다. 어릴 적 프랑스로 입양돼 장관직에 오른 이에게서 ‘나는 한국인의 정서를 갖고 있습니다’란 대답이 듣고 싶었던 것이겠지만, 플뢰르에게 그런 물음은 몹시 당황스러웠다. 태어난 지 6개월 만에 해외로 입양돼 난생처음 방문한 나라에 특별한 감정이 있을 리 없었으니까.

‘이기거나 혹은 즐기거나’(김영사)는 당시 미처 전하지 못한 속내를 담고 있다. 프랑스에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 낯선 사회와 문화 속에서 어떻게 자랐고, 어떻게 장벽을 극복했는지에 관한 이야기를 전한다.

플뢰르는 1974년 3월1일 프랑스 르부르제공항 라운지에서 기다리던 부모에게 “도착했다.” 실제 생일은 1973년 8월29일 서울로 추정된다. 생모가 서울 어느 판자촌 거리에 버리기 며칠 전에 태어났을 것으로 여겨진다. 영양 부족과 수분 결핍으로 죽기 직전에 발견됐다.

부모는 평범한 ‘서민’이었다. 아이 교육에 열과 성을 다했고, 그 덕에 플뢰르는 명문 그랑제콜 에섹경영대학교, 파리정치대학, 국립행정학교를 졸업해 프랑스 감사원에 취직했다. 2002년 사회당 대선 후보의 연설문 작성을 담당하면서 정치에 발을 들였고, 2011년에는 올랑드 당시 사회당 후보의 대선 캠프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그런 이력이 기반이 돼 2014년 문화부 장관직에 올랐다.

역경도 있었다. 입각 전 점점 이름을 알릴 차에 남편과 이혼하면서 우울증을 앓았다. 딸에게서 아버지를 빼앗았다는 생각이 자신의 출생 상처를 건드리면서 “내가 하는 일, 나라는 사람, 내가 가진 모든 것이 쓸데없어 보였”다. “삶 전체가 무의미하고 허망”해 보이는 시간을 2년간 감내해야 했다. 생물학적 부모를 찾아 환부 중심에 접근할 수도 있었지만, 플뢰르는 “부모가 누구인지 안다고 해서 더 완전한 사람이 되거나 마음이 더 평온해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책에서 그는 “친부모에게 버림받는 아이는 아무리 친가족처럼 아껴주는 양부모 밑에서 커도 다른 성인들과 똑같이 자랄 수는 없다”고 설명한다.

플뢰르는 프랑스 문화에 완벽히 동화됐지만 프랑스인의 시선은 달랐다. 동양인이란 이유로 ‘가사도우미’, ‘게이샤’ 등의 모욕을 받았고, 여러 이유로 쉽게 구설에 올랐다. 결국 한 방송에서 노벨문학상을 받은 프랑스 작가의 작품을 읽어보지 못했다는 발언이 문제가 돼 결국 2016년 장관직에서 내려왔다. “나를 예전처럼 존중하지도 않고 아예 거리를 두는 주변 사람 등 모든 것이 견디기 쉽지 않”은 시간을 보냈다.

이후 그가 선택한 길은 한국 기업과의 협업이었다. 2016년 네이버와 협업해 벤처캐피탈을 설립하고 유럽 기술 스타트업에 2억 유로를 투자하는 임무를 맡았다. 그 과정에서 사업 전 체결한 ‘의향서’가 ‘계약서’로 오인되면서 공직자 윤리 위반했다는 이유로 무려 18개월 조사를 받는 어려움도 있었지만 이제는 한국과 깊은 인연을 만들어 가고 있다. 한국·유럽 스타트업의 글로벌 진출을 돕고 있는 그는 “보이지 않는 여러 개의 선이 만나 한국과 나 사이에 무언가 중요한 것을 만들어 가고 있다”며 “멀어짐과 망각, 관심의 시간이 지나고 우리는 다시 만나는 선택을 했다. 운명을 뿌리와 화해시키는 방법으로 이보다 더 아름답고 평화로운 것이 있을까”라고 반문한다.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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