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복입은 외교관..시진핑 늑대전사들, 마오의 '부뚜막' 짓는다 [시진핑 시대 ⑥·끝]

신경진 2022. 10. 22.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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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개막한 중국공산당(중공) 제20차 전국대표대회를 맞아 베이징전람관에서 열리고 있는 ‘분투 전진의 신시대’ 전시회의 외교 업적 부분에 군복 입은 중국 외교관의 군사 훈련 사진이 걸려있다. 신경진 특파원

“젊은 외교 간부 대오의 이론 무장을 강화하고 ‘글로 무장한 해방군(文裝解放軍)’이란 좋은 전통을 널리 알려라.”

군복 입은 중국 외교관의 군사 훈련 사진 설명 문구다. 사진은 지난 16일 개막한 중국공산당 제20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를 맞아 베이징전람관에서 열리는 ‘분투 전진의 신시대’ 전시회 외교 업적 파트에 걸렸다. ‘문장해방군’은 신중국 초대 외교부장 저우언라이의 엄명이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집권 10년간 펼친 중국 외교는 마오쩌둥 외교에 대한 ‘오마주’가 가장 큰 특징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지난 1949년 12월 마오쩌둥은 구 소련을 처음 방문했다. 모스크바역에 내린 마오쩌둥을 니콜라이 불가닌(오른쪽 첫번째) 내각 부주석, 바체슬라프 몰로토프(오른쪽 두번째) 내각 부주석이 환영했다. 오른쪽 네번째는 초대 소련대사 왕자샹(王稼祥). 사진=신화사

마오쩌둥은 1949년 3대 외교 방침을 밝혔다. 첫째는 일변도(一邊倒) 외교였다. 사회주의 진영 외교를 뜻한다. 마오쩌둥의 해외 순방은 1949년 12월과 1957년 11월 러시아 모스크바 방문이 전부였다. 스탈린의 70세 생일과 10월 혁명 40주년을 기념하면서다. 이는 시 주석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중시 외교와도 오버랩된다.


‘도광양회’ 탈피 ‘중국 특색 대국 외교’ 천명


또한 마오쩌둥은 “깨끗하게 청소하고 손님을 맞으라”고 했다. 기존의 불평등 조약을 모두 폐기하라는 지시였다. 더 나아가 ‘부뚜막 새로 만들기(另起爐竈·영기노조)’를 지시했다. 옛것을 버리고 새로 가업을 일으킨다는 뜻으로 국민당 외교를 일소하라는 지침이었다.
지난 2015년 9월 미국을 국빈방문한 시진핑(왼쪽 세번째) 중국 국가주석이 버락 오바마(오른쪽 세번째)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당시 시 주석은 첫 기착지인 워싱턴주 시애틀에서 마오쩌둥이 국민당 외교를 폐기하며 남겼던 “‘부뚜막 새로 만들기’는 않겠다”는 발언을 남겼다. 신화=연합뉴스

시 주석도 과거 미국 순방 중 ‘부뚜막’을 언급했다. 2015년 9월 미국 국빈방문 첫 기착지인 시애틀에서 그는 “중국은 현 국제 시스템의 참여자ㆍ건설자ㆍ공헌자”라며 “많은 개발도상국은 더 공정하고 합리적 방향으로 발전을 희망한다. 하지만 이는 부뚜막을 새로 만들겠다는 것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질서에 중국이 참여ㆍ공헌하지만 새로운 질서를 추구하진 않겠다는 말이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하지만 이 같은 기조는 이번 20차 당대회 보고에서 돌변했다. “남을 해치면서 자기 이익을 도모하는, 피비린내 나는 죄악으로 가득 찬 옛길은 광범한 개발도상국 인민에게 극심한 고난을 가져다줬다. 우리는 역사의 올바른 편과 인류 문명 진보의 편에 확고히 서겠다”며 ‘중국식 현대화’를 제창하면서다. 서구와는 다른 ‘부뚜막 새로 만들기’를 공개적으로 천명한 셈이다.

덩샤오핑 외교는 달랐다. 1989년 천안문 사건이 발생하고 석 달 뒤 그는 수뇌부를 자택으로 불러 “첫째 냉정하게 관찰하시오(冷靜觀察). 둘째 사안에 따라 입장을 확고히 하시오(穩住陣脚). 셋째 침착하게 대처하시오(沈着應付)”라고 당부했다. 이후 이듬해 12월엔 “절대 선두에 서서 리더십을 주장하지 말라(絶不當頭)”, 1992년 4월엔 “칼집의 칼을 들어내지 말고 힘을 기르며(韜光養晦) 여러 해를 보내라”는 지시를 더했다. 첸치천 당시 외교부총리는 여기에 “자신의 뛰어남을 드러내지 않고 낮은 자세를 유지하며(善于守拙) 때가 되면 일부 공헌을 한다(有所作爲)”는 기조를 추가했다.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덩샤오핑 외교의 ‘철의 규율’이었다.

이와 달리 시진핑 외교는 한층 더 거칠어질 전망이다. 당장 20차 당대회 정치 보고의 외교 언어가 달라졌다. 국제 정세 판단 또한 180도 바뀌었다. 2002년 장쩌민이 후진타오에게 총서기직을 넘긴 16차 당대회에서 처음 등장했던 ‘전략적 기회 시기(戰略機遇期)’라는 용어도 자취를 감췄다. 대신 “평화ㆍ발전ㆍ안보ㆍ거버넌스 적자가 늘면서 인류 사회는 전례없는 도전에 직면했다”며 “세계가 또 한 번 역사의 갈림길에 섰으며 어느 길로 갈지는 각국 인민의 선택에 달렸다”고 강조했다. 미국과 서구가 주도하는 현대화가 아닌 ‘중국식 현대화’가 올바른 선택이란 주장이다. 그러면서 “중국은 시종 사실 자체의 시비곡직에 따라 입장과 정책을 결정하며 국제관계의 기본 준칙과 공평ㆍ정의를 수호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외교의 기본 원칙도 미세 조정했다. 시진핑 1ㆍ2기 때 “각국과 우호 협력을 ‘전면 발전’시킨다”는 원칙에서 ‘전면 발전’ 네 글자가 사라졌다. 대신 “신형 국제관계 구축을 추진하고 평등ㆍ개방ㆍ협력에 기초한 글로벌 동반자 관계를 넓고 깊게 발전시키겠다”고 했다. 시진핑 외교 사상의 골간인 ‘중국 특색 대국 외교’를 재확인한 것이다.

지난 2019년 4월 26일 베이징에서 열린 일대일로(21세기 육·해상 신 실크로드) 정상회담에 참석한 정상들이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미국과의 양자 관계를 주로 일컫는 대국 외교에서도 ‘협력’이 사라졌다. 5년 전 “대국 간의 조율과 협력을 추진해 총체적으로 안정되고 균형적으로 발전하는 대국 관계 구축”에서 “대국과의 조율과 긍정적인 상호작용을 촉진하고 평화적으로 공존하며 총체적으로 안정되고 균형적으로 발전하는 대국 관계 구도 형성”으로 바뀌었다. 조율은 남겼지만 협력을 빼고 ‘긍정적 상호작용’과 ‘평화적 공존’을 추가했다. 시진핑 3기 미ㆍ중 관계는 협력보다는 ‘평화적 공존’을 위한 위기관리 외교에 방점이 찍힐 것이란 메시지다.


주변국 외교 ‘이익 융합’ 통해 미국 견제


시 주석은 한국을 포함한 주변국 외교에서는 ‘이익’을 강조했다. “친밀ㆍ성실ㆍ호혜ㆍ포용의 이념과 인접국과 선린 관계 및 동반자 관계를 위주로 하는 주변국 외교 방침에 따라 관계를 심화하겠다”는 19차 보고에 “주변국 외교 방침을 견지하면서 주변국과의 친선과 상호 신뢰, 이익 융합을 심화할 것”을 덧붙였다. 한국과 일본ㆍ동남아ㆍ중앙아시아 국가의 경우 신뢰를 깨지 않는 인접국과는 철저히 이익을 추구하는 외교를 펼치겠다는 의미다. 더 나아가 미국이 중국 주변국과의 관계를 강화하는 걸 의식해 신뢰와 이익 융합을 강조하면서 미국 주도의 전략 구상에 공동 대응할 것을 주변국에 촉구하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지난 1958년 11월 22일자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1면. 김일성 당시 북한 수상이 군사대표단과 함께 단둥(당시 안둥), 선양을 거쳐 베이징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머리기사로 실었다. 인민일보DB

공산당을 외교 일선으로 끌어올린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전에 없이 정당 외교를 언급하며 “중국공산당은 독립 자주, 완전 평등, 상호 존중, 상호 내정 불간섭 원칙을 토대로 각국 정당 및 정치 조직과의 교류 협력을 강화하겠다”고 명기하면서다. 이에 따라 북한 노동당과의 당 대 당 외교도 한층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 가운데 마자오쉬 중국 외교부 제1부부장은 지난 20일 기자회견에서 미래 외교 투쟁을 예고했다. 그는 "중국은 각종 일방 제재와 극한 압박에 반대하며 어떠한 제로섬 게임과 밀림의 법칙도 받아들이지 않겠다”며 “과감하게 투쟁하고(敢于鬪爭) 투쟁을 잘하는 것(善于鬪爭)은 중국 외교의 우수한 전통이자 선명한 특징”이라고 자부했다. 시진핑 3기엔 늑대 전사의 거친 전랑외교(戰狼外交)가 본격화할 것임을 공개적으로 밝힌 셈이다.

■ “정상 외교가 과거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 중국공산당 제20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 이후 한ㆍ중 관계와 관련해 양국의 전문가들 사이에서 ‘정상 외교’에 특히 주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ㆍ중 관계에 정통한 비잉다 산둥대 동북아학원 부원장은 “정상 외교는 전략적 상호 신뢰를 회복하고 격상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20차 당대회 이후엔 정상 외교를 중시하고 양국 정책 결정자들도 보다 활발히 상호 방문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실제로 20차 당대회 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권위가 한층 격상됨에 따라 정상 외교가 중국 외교의 결정적 요인이 될 전망이다.

이와 관련, 마자오쉬 중국 외교부 제1부부장은 지난 20일 기자회견에서 “시 주석은 영수의 카리스마와 인격으로 신시대 중국 특색 대국 외교를 최종적으로 정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할 것”이라며 “20차 당대회의 성공적 개막을 계기로 시 주석의 보폭에 맞춰 정상 외교의 물결을 끊임없이 일으키며 중국 외교의 새로운 장을 쓰겠다”고 밝혔다. 다음 달 인도네시아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시 주석의 참석도 예고했다. 시 주석의 외교적 발언과 동선이 곧 중국 외교라는 얘기다.

지난 8월 댜오위타이 국빈관에서 한ㆍ중 수교 30주년 기념식을 주최한 린쑹톈 중국인민대외우호협회장도 “양국 수도에서 동시에 기념 행사를 열고 양국 정상과 총리가 축전을 교환하며 세계와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수호하고 더욱 아름다운 미래를 함께 열어가자는 의지를 밝혔다”며 이를 계기로 양국 최고위급 소통이 한층 강화되길 기대했다.

걸림돌은 중국 정상의 ‘선답방’을 요구하는 한국의 여론과 아직 끝나지 않은 중국의 코로나19 방역 상황이다. 이에 대해 이동률 동덕여대 교수는 “정상 간 만남이 많을수록 좋다는 건 외교의 제1 철칙”이라며 “한ㆍ중 양국도 이젠 정상 셔틀 외교를 통해 전략적 소통을 강화한다는 목표를 세워야 할 때”라고 제안했다. 그는 “다만 국내 여론을 감안해 우선 해외 다자 정상회의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면서 시 주석이 먼저 방한하는 분위기와 여건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정상 외교의 돌파구 마련을 위해 특사 카드를 적극 검토할 만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라오펑유(老朋友ㆍ오랜 친구)’를 특히 중시하는 중국의 외교 전통을 감안해서다. ‘중국 인민의 라오펑유’라는 칭호는 이미 중국 외교의 공식 용어로 자리 잡았을 정도다. 중국 주간지 ‘남방주말’에 따르면 1949~2000년 중국 정부는 해외 정상급 요인 중 601명을 ‘라오펑유’로 호명했다. 일본이 111명으로 가장 많고 미국은 55명이었다. 한국의 라오펑유는 김대중ㆍ박근혜 전 대통령과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이만섭 전 국회의장 등 4명이었다.

베이징=신경진 특파원 shin.ky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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