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C 회장은 왜 유족에게 사과했을까
[전수경]
▲ 20일 오후 서울 강남구 SPC 본사 앞에서 '파리바게뜨 노동자 힘내라 공동행동'이 SPC그룹의 계열사인 SPL평택 공장에서 끼임사고로 사망한 노동자의 추모 행사를 하고 있다. |
ⓒ 이희훈 |
▲ 20일 오후 서울 강남구 SPC 본사 앞에서 '파리바게뜨 노동자 힘내라 공동행동'이 SPC그룹의 계열사인 SPL평택 공장에서 끼임사고로 사망한 노동자의 추모 행사를 하고 있다. |
ⓒ 이희훈 |
노동자가 죽었다. 노동자는 기계의 회전날개를 피할 수 없었다. 노동건강연대가 다달이 집계하는 '이달의 기업살인'을 열어보았다.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633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다. 대다수 노동자의 죽음이 '조용히' 지나갔다.
빵 공장에서 발생한 여성노동자의 죽음은 우리에게 말한다. 관심. 관심을 가질 때에만 노동자의 죽음을 멈출 수 있다. 대통령이 한 마디를 보태고, 고용노동부 장관이 조문을 하고, SPC그룹의 회장이 유족에게 사과했다. 노동자가 사망했을 때 유족에게 사과하지 않고 '대국민 사과'를 한 기업의 CEO들도 있었다. SPC는 왜 유족에게 사과했을까. 이유는 하나다. 여론이 들썩이니까. 국민들이 분노하고 있으니까.
지난 15일, SPC그룹 계열의 SPL 제빵공장에서 23세 여성노동자가 샌드위치를 소스를 배합하다 사망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소스를 배합하는 기계에는 자동 멈춤 장치도, 뚜껑도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주말이었고 조금은 긴장을 풀고 있던 시간이었다. 그래서 더 놀랐는지도 모른다. 노동자의 죽음에는 주말이 없다. 노동자의 사망 현장을 흰 천으로 덮은 공장에서 '죽지 않은' 노동자들은 빵을 계속 만들어야 했다. 식빵을 만들고, 케이크를 만들고,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노조 탄압으로 파리바게뜨 불매운동이 진행되고 있을 때도 일을 하다 말고 뛰어가서 샌드위치를 사 온 적이 있다. 지난 여름 먹었던 두 번의 샌드위치 점심 식사가 자꾸 떠오른다. 사무실 주변에 빵집이 파리바게뜨 뿐이라는 변명을 이제는 할 수 없다. 2022년 10월 15일 오전 6시 20분, 사고 이전의 시간으로 돌아가 파리바게뜨 파란색 간판을 볼 수는 없다.
몇 해 전에 만난 파리바게뜨의 20대 여성 제빵기사는 "육체노동이에요. 완전 육체노동이에요"를 반복해서 말했었다. 그가 '육체노동'이라고 한 것은 '정신노동'의 상대적 의미로서가 아니라 힘들어서, 몸이 너무 힘들어서 자신도 모르게 나온 말이었다. 대형 오븐, 철제 트레이, 냉동생지, 빵 모양 만들기, 오븐에 넣기, 오븐에서 꺼내기, 냉장고 청소 냉동고 청소. 손목과 어깨의 힘이 필요한 노동이 파리바게뜨 빵집의 일이었다.
파리바게뜨 빵 공장까지는 몰랐다.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아시아에서 제일 크다는 빵 공장에서 1500여 명의 노동자가 밤낮으로 열두 시간씩 빵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은 몰랐다. 9대의 소스반죽기가 24시간 돌아가고 있었고, 그것은 우리가 상상해 온 로봇팔 같은 자동기계가 아니라 사람의 손길이 집약되어 생산되는 것이라는 걸 몰랐다. 그러나 SPC가 노동자를 기계로 생각한 것은 맞는 것 같다. 동료가 사망한 그 자리에서 다시 밤새 샌드위치를 만들게 했으니 말이다.
▲ 평택 제빵공장 사망 관련 엄정수사 촉구 기자회견 17일 오후 경기도 평택시 SPC 계열 SPL 제빵공장에서 지난 15일 소스 교반기계에 끼여 숨진 20대 근로자 사망사고 관련 엄정수사 촉구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
ⓒ 연합뉴스 |
<매일노동뉴스> 19일 기사를 보니 제빵공장 사고와 관련해 고용노동부가 18명 규모의 전담팀을 구성해서 수사에 들어가고, SPC그룹의 다른 사업장에 대해서도 조사를 할 생각이라고 하는데, 노동자가 죽은 후에만 움직이는 정부의 습성에 대해서 스스로 부끄러워하면서 한 결정이길 바란다.
이은주 정의당 의원이 공개한 자료를 보면 노동부 산하 안전보건공단은 노동자를 사망하게 한 기계가 있는 SPL 공장에 수년간 '안전하다'고 인증을 해 주고, '안전경영사업장'이라는 간판도 계속 달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안전장치가 없어서 손이 끼이고 몸이 끼이는 사고가 이미 여러 차례 일어났던 기계들인데, 무엇을 확인하고 '안전하다'고 장담한 것일까.
신고된 산재 사고만 보더라도 2017년부터 지난 9월까지 노동자 37명이 SPL 공장에서 다쳤다고 한다. 37명 가운데 15명의 노동자가 '끼임'으로 다쳤다고 하는데, 이 숫자는 숨길 수 없는 일부 사고만 합한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많은 사고가 수면 아래 잠겨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통상 다친 노동자는 인사고과에서 낮은 점수를 받거나 재계약이 안 되거나 해고 대상자가 된다. 어느 노동자가 산재를 신고하자고 나서겠는가? SPL 공장은 2020년 '대한민국 일자리 으뜸기업'에 선정되어 3년간 정기 근로감독도 면제받아왔다고 하니 산재 사고가 감추어지기 더 좋은 조건이었다고 짐작할 수 있다. 근로감독이 계속 면제되려면 회사 안에서 일어난 문제가 밖으로 나가지 않게 해야 한다.
대다수 기업은 생산속도를 떨어뜨리는 일은 모두 퇴치 대상으로 본다.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지난 8월 17일 국내 30대 대기업 인사최고책임자들은 노동부 장관을 만난 자리에서 "노동부 작업중지로 영업손실이 크다"면서 작업중지 사유를 좁혀달라고 민원을 넣었다고 한다.
노동자가 사망하거나 말거나 털끝만큼의 손해도 입을 수 없다는 것이 기업의 본능이다. 기업의 본능을 거슬러 노동자의 생명을 보호하라고 국가가 있는 것 아닌가. 노동자가 사망해도 영업에는 조금의 손실도 없게 하겠다는 기업의 욕망은 이미 실현되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논란을 보라.
노동부는 '안전보건계획'이란 걸 세워서 회사 이사회에서 승인받으면 경영책임자의 의무를 다한 것으로 보겠다고 한다. 한 마디로 서류만 잘 만들면 된다는 것이다. 노동자와 국민은 기업이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길이 없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의미가 있는 이유는 노동자의 안전을 지키는 것이 경영책임자의 의무라고 명시했기 때문이다. 이 의무를 잘 꾸민 서류로 대체할 수 있을까?
▲ 청년하다, 평화나비네트워크, 진보대학생넷, 청년정의당, 청년진보당 등 33개 대학생, 청년단체 회원들이 17일 오후 서울 서초구 SPC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평택 SPL 제빵공장 청년노동자의 산재사고에 대해 책임자 처벌과 윤석열 대통령의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개정 시도를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
ⓒ 유성호 |
'SPC 70년 행복의 맛에서 행복한 마음으로 이어갑니다'.
몇 해 전 나온 SPC 광고다. 빵은 사람의 마음을 건드린다. 나처럼 빵이 주식인 사람이 아니어도 사람들은 좋은 일이 생기면 케이크를 산다. 슈크림 가득 들어간 빵이나 폭신한 카스텔라를 먹을 때 굳어있던 마음이 스스로 풀리는 기분, 누구라도 한번은 느껴본 적 있지 않나.
SPC는 그 마음을 이용해 빵을 팔았다. 기업을 확장해 왔다. 그 이면에서 SPC가 한 일들은 노동조건을 개선하라는 노동자의 입을 틀어막고, 기계의 안전장치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노동자의 생명을 앗아가고 그 자리에서 계속 빵을 생산하는 일이었다.
사고 3일째인 지난 18일, 고용노동부는 SPC그룹 회장이 중대재해처벌법의 처벌대상이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SPL은 대표가 따로 있는 독립된 기업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과에 진심이 담겨 있느냐와 별개로 SPC 회장이 유족에게 사과한 것은 소비자와 시민이 무서워서이지, 법이 무서워서는 아니었던 것이다.
국가보다, 법보다, 시민의 관심이 기업을 움직인다. 노동자의 죽음을 잊지 않아야 한다. 시민이 지켜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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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노동건강연대 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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