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달러=150엔' 찍은 날 사상 최대 무역적자..日경제 경고등
외환 시장에서 달러 대비 엔화 가치가 브레이크 없이 추락하고 있다. 20일엔 다시 32년 만의 최저치를 경신하며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불리는 '1달러=150엔'을 돌파했다. 엔화 가치 하락(엔저)의 영향으로 일본의 올해 상반기 무역 적자는 반기 기준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교도통신 등에 따르면 20일 오후 4시 42분 도쿄 외환시장에서 엔화가 달러당 150엔을 넘어섰다. 엔·달러 환율이 달러 당 150엔을 넘어선 것은 '거품(버블) 경제' 후반기였던 1990년 8월 이후 32년 만에 처음이다.
올해 초만 해도 달러당 110엔 안팎이던 엔·달러 환율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급등했다. 고물가를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연이어 올린 미국과 달리 일본은 경제 침체를 우려해 초저금리와 대규모 금융완화 정책을 지속하면서 외환시장에서 엔화를 팔고 달러를 사는 움직임이 가속했다.
일본 당국은 지난달 22일 환율이 달러 당 145.90엔까지 올라가자 달러화를 팔고 엔화를 사들이는 시장 개입을 24년 만에 단행했다. 직후 140엔대 초반까지 떨어졌던 엔화는 한 달 만에 다시 10엔 가까이 상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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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수지 14개월 연속 적자
끝 모를 엔저로 일본 경제에는 경고등이 커졌다. 원유 가격 상승과 엔저의 영향으로 수입품 가격이 올라가면서 일본의 올해 상반기 무역 적자는 역대 최대 규모가 됐다.
일본 재무성이 20일 발표한 2022회계연도 상반기(올해 4∼9월) 무역수지는 11조75억엔(약 104조9000억원) 적자로 집계됐다. 이는 관련 통계가 존재하는 1979년 이후 반기 기준으로 가장 큰 규모다. 일본의 무역수지는 지난해 7월 적자를 기록한 후 14개월 연속 적자를 이어가고 있다.
엔저가 되면 일본 기업들의 수출 이익이 증가해 무역 수지 흑자로 이어진다는 공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상황이다. 2000년대 후반 세계 금융위기 후 많은 제조 기업들이 해외로 생산 거점을 옮겼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올해 상반기 일본의 총수출액은 49조 5762억엔으로 전년 동기보다 19.6% 증가한 데 비해 총 수입액은 60조 5837억엔으로 44.5% 늘었다. 무역 적자가 이어지면서 일본이 올해 연간 기준으로 42년 만에 처음으로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인플레 가을'이 왔다
물가도 오르고 있다. 일본은행은 이달 말 열리는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2022년도 소비자 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7월에 발표한 2.3%에서 2%대 후반으로 올릴 것으로 전망된다고 일본 언론들은 전했다. 일본에서 2%대 후반의 물가 상승은 소비세 증세 영향 등을 제외하면 1991년 2.6% 이후 31년 만이다.
특히 에너지 가격과 식품 가격 상승으로 소비자들이 느끼는 부담은 상당한 편이다. 올해 일본의 전기·가스 요금은 20~30% 상승했으며 내년에도 같은 규모의 인상이 예고돼 있다. 9월 이후 식품·외식 업체들이 잇따라 10~25%에 달하는 가격 인상을 발표하자 아사히신문은 '인플레 가을'이 도래했다고 전했다.
日 정부 다시 환율 시장 개입하나
그럼에도 일본 정부는 금리를 올리지 않고 대규모 금융 완화를 지속한다는 입장이다. 동시에 엔화 가치 급락을 그대로 방치할 수는 없기 때문에 조만간 다시 달러를 팔고 엔화를 사들이는 시장 개입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스즈키 슌이치(鈴木俊一) 일본 재무상은 20일 오전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32년만의 엔저에 대한 질문을 받고 "환율 시장의 과도한 변동에 대해 앞으로도 적절한 대응을 취하겠다"고 말했다. 구로다 하루히코(黑田東彦) 일본은행 총재도 전날 "최근의 엔저 진행은 급속하고 일방적이어서 경제에 마이너스이고 바람직하지 않다"며 경계감을 드러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시장에서는 엔·달러 환율이 150엔을 돌파하면 정부와 일본은행이 다시 대규모 개입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면서도 "달러 가치 상승이 기대되는 상황에서 달러가 싸지면 매입하는 움직임이 다시 발생하기 때문에 개입 효과는 제한적일 것"으로 전망했다.
도쿄=이영희 특파원 misqui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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