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中 배터리 원료 의존 끊겠다..4조원 보조금 지원(종합)
[아시아경제 이지은 기자]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자국 내 전기차 배터리 원료 생산 촉진을 위해 28억달러 보조금을 지급하고 동맹국들과 배터리 공급망을 강화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중국과의 기술 패권 경쟁에 격화되자 배터리 원료의 중국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자국 중심의 생산 체계 개편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이 동맹국을 중심으로 핵심 광물 공급망 재편에 속도를 내면서 한국도 대응에 나서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전기차 200만대분 리튬 생산…20개 기업에 원료 생산 보조금 지급백악관은 19일(현지시간) "에너지부 인프라 법에 근거해 미국 내 12개 주 20개 제조업체에 28억달러(약 4조원)를 지급하겠다"며 "반도체 지원법과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초당적 인프라 법에 투입되는 예산을 모두 합치면 1350억 달러 이상이 미국의 전기자동차 산업에 투자된다"고 밝혔다.
에너지부가 지급하는 자금은 기업의 민간 자본과 매칭돼 총 90억 달러로 늘어나 흑연과 리튬 등 전기차 배터리 원료를 개발하고 생산하는 데 투입된다. 백악관에 따르면 보조금 수혜는 조지아, 앨라배마, 켄터키, 루이지애나, 네바다, 뉴욕, 노스캐롤라이나, 노스다코타, 오하이오, 테네시, 워싱턴, 미주리에 돌아간다.
백악관은 이번 투자로 전기차 연 200만대에 공급될 배터리용 리튬과 연 120만대분의 흑연, 연 40만대분의 니켈 등이 생산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이번 사업을 통해 대규모 상업용 리튬 전해질 소금 생산 시설을 미국에 설치하고 2030년까지 국내 전기차 배터리 바인더 수요의 45%를 충당할 수 있는 전극 바인더 시설도 개발할 방침이다. 연 60만개분의 전기차 배터리에 핵심 소재인 양극재가 공급될 수 있도록 미국 최초의 상업용 산화규소 생산 시설도 구축한다.
백악관은 바이든 대통령 취임 이후 미국의 전기차 판매량이 세 배가량 증가한 것을 근거로 들며 "앞으로 전기차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리튬과 흑연과 같은 주요 광물에 대한 수요가 증가할 것이며 프로젝트가 미국 산업 전체에 촉매제가 될 것"이라고 자평했다. 아울러 백악관은 2030년에 생산되는 전체 신차 가운데 전기차가 차지하는 비율을 절반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제니퍼 그랜홈 에너지부 장관은 성명을 통해 "고급 배터리와 부품을 자국 내에서 생산하게 되면 전기차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 화석연료로부터의 산업 전환도 가속화될 것"이라며 "이를 통해 미국 전역에 더 많은 보수를 받는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고 밝혔다. 백악관은 이번 투자를 통해 총 8000개의 일자리가 창출될 것으로 전망한다.
외신들은 중국의 시장 지배력 확대와 인플레이션 감축법으로 완성차와 배터리 업계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이같은 조치가 시장에 긍정적인 신호를 준다고 설명했다. 완성차 업계는 인플레이션감축법의 영향으로 내년부터 배터리에 들어가는 핵심 광물의 40% 이상을 북미 지역이나 미국과 FTA(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한 국가에서 채굴·가공해야 보조금을 지급받을 수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광물 생산을 위한 시설을 구축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리기에 완성차 업계는 그간 미국에서 나오는 자재를 사용해야 세액 공제 혜택을 주는 인플레이션 감축법안에 대해 불평을 표해왔다"며 "이에 광물 산업 활성화를 위한 보조금 지급하는 정책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동맹국과 협력, 에너지 안보 강화"…미국산 배터리 원료 구상 발표
이와 함께 바이든 대통령은 전기차용 핵심 광물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범정부 차원의 '미국산 배터리 원료 구상'도 발표했다.
백악관 조정위원회가 이끌고 에너지부와 내무부, 국무부 등이 참여하는 이 구상에는 글로벌 인프라·투자 파트너십(PGII)'을 통해 세계 파트너 및 동맹과 손잡고 핵심 광물 공급망과 에너지 안보를 강화한다는 계획이 담겼다.
PGII는 미국이 지난 6월 G7 정상회의에서 공개한 '더 나은 세계 재건(Build Back Better World·B3W)' 구상의 확장판으로, 2027년까지 개발도상국 인프라 사업에 6000억달러를 투자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를 겨냥하기 위한 정책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백악관은 파트너 동맹과 함께 배터리 자원 매장지를 찾고 글로벌 공급망을 다변화해 광물 채굴과 관련된 노동 기준을 높일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지속적인 광물 공급망 구축을 위해 외교적 노력을 기울일 방침이며 환경오염을 최소화한 상태에서 광물을 가공하기 위해 연구를 지원할 계획이다.
또한 백악관은 이번 구상을 통해 중국에 대한 자원 의존도를 줄이겠다는 뜻을 명확히 했다. 신뢰할 수 있는 우방국들과 공급망 결속력을 다지는 것만이 미국의 경제 안보를 강화하는 길이라는 것이다.
백악관은 "현재 중국이 핵심 광물 공급망의 상당 부분을 통제하고 있다"며 "미국이 광업과 가공, 재활용 분야에서 능력을 갖추지 못하면 전기차 개발에 차질이 생기게 되고 결국 신뢰할 수 없는 외국 공급망에 의존하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도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4월 필수 광물의 중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국방물자조달법(DPA)을 발동하고 리튬, 니켈 등을 생산하는 미국 기업에 자금을 지원하는 방안을 발표한 바 있다. 희토류 등 중국이 장악하고 있는 광물 공급망을 분산시키기 위해 지난 6월에는 한국과 일본 등 11개국이 참여하는 다자협력체인 '핵심 광물 안보 파트너십'을 출범시켰다.
미 정부 고위 관계자는 주요 외신에 "세계 경제가 화석연료에서 청정에너지로 움직이는 방향으로 전환되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독재자 블라디미르 푸틴의 석유에 의존했던 것처럼 중국에 주요광물 생산을 의존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이지은 기자 jelee042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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