얽히고설킨 200조..'시한폭탄' 부동산 PF

배준희 입력 2022. 10. 17. 15:45 수정 2022. 10. 17.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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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형 증권사 부동산금융본부 직원 A씨는 요즘 주말 출근이 일상이다. 그가 맡고 있는 업무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리스트 심사와 관리. 신규 취급은 이미 올스톱 됐고 만기가 속속 도래하는 PF 기반 유동화 자산이 적지 않지만 차환이 쉽지 않다. A씨는 “만기가 임박한 리스트 가운데 이를 제때 연장하지 못하면 회사 실적에 큰 부담을 주게 된다”며 “요즘 PF사업부에서 정시 퇴근은 꿈도 못 꿀 일”이라고 털어놨다.

대체투자업계에 이른 삭풍이 불고 있다. 대체투자업계에서는 최근 서울 여의도 국제금융센터(IFC) 인수 작업이 최종 무산된 것을 심상찮은 신호로 본다. 이 거래는 국내 상업용 오피스 거래 사상 최대 규모(4조1000억원)로 주목받았지만 무산됐다. 시장에서 인수 가격을 두고 갑론을박이 오갔지만 거래 자체가 무산될 것으로 본 경우는 거의 없었다. 글로벌 금리 인상과 경기 침체 여파로 부동산 투자·거래가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가 컸지만 서울 핵심부의 오피스 시장 공실률은 비교적 안정적인 흐름을 보였기 때문이다. 국내 1위 투자은행(IB) 그룹이 주도했던 간판 오피스 빌딩의 매각 무산은 앞으로 부동산 PF·대체투자업계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국내 1위 금융투자그룹인 미래에셋그룹이 추진했던 서울 여의도 국제금융센터(IFC) 인수 작업이 무산되자 대체투자업계에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매경DB)

▶부동산 PF, 다중 레버리지 총동원

▷쌓여가는 미분양…경고등 켜져

글로벌 중앙은행의 강력한 긴축으로 금리가 급등하면서 부동산 PF 위기론이 확산 중이다. 부동산 PF는 건설사가 사업을 시행할 때, 사업권을 담보로 금융사에서 돈을 빌리는 것. 과거에는 주로 은행이 대출을 담당하고 대형 시공사들이 신용 보강을 하는 구조로 PF 자금 조달이 이뤄졌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판도가 바뀌었다. 건설사 재무구조가 악화하고 은행권에 대한 건전성 규제가 대폭 강화되면서 고수익을 노린 증권사를 비롯 제2금융권에서도 앞다퉈 부동산 PF 시장을 파고들었다.

부동산 개발 사업에는 다중 레버리지가 동원되므로 금융이 필수적이다. 통상 개발 사업에 필요한 기본 자본금에도 타인 자본을 섞어 레버리지 효과를 높인다. SPC(Special Purpose Company)라는 특수목적회사를 낀 레버리지도 동원된다. SPC는 부동산 개발 사업 수익률을 따질 때 결정적인 레버리지 장치로 작용한다.

레버리지가 이중 삼중으로 투입되는 만큼 여러 금융기관이 부동산 PF 시장에 달려들었다. 부동산 PF 대출 과정에서 금융사는 크게 보면 채무 보증 또는 직접 대출을 제공하고 보증 수수료와 이자 등을 얻는 구조다. 특히 국내 증권사들은 대체 투자 등 포트폴리오 다각화 전략의 일환으로 부동산 금융 사업에 공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자본금이 넉넉한 초대형 IB를 중심으로 개발 사업의 토지 계약금 대출을 비롯해 프로젝트파이낸싱 후순위 투자, PFV 출자 대여, 후순위 담보 대출, 사업비 대출, 보통주 투자 등에 나선 것이 단적인 예다. 경기 침체 때는 그만큼 시스템 리스크 우려가 커질 수 있다.

경기 침체 영향을 가장 빠르게 반영하는 주택 시장에서는 이미 미분양 물량이 쏟아지는 중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8월 전국 미분양 주택 수는 총 3만2722채로, 7월보다 1438채(5%) 증가했다. 지난해 말(1만7710채)과 비교하면 1만5012채(86%) 증가한 수치다. 특히 수도권의 미분양 주택은 지난해 말 1509채에서 8월 5012채로 8개월 사이 3배 이상 급증했다. 지방은 같은 기간 1만6201채에서 2만7710채로 1만채 넘게 늘었다. 공사가 끝난 뒤에도 분양되지 못해 ‘악성 미분양’으로 불리는 ‘준공 후 미분양’은 서울이 188채로 7월보다 25% 증가했다. 수도권도 1042채로 2.5% 늘어났다.

미분양이 늘고 금리가 급등하자 부동산 PF 시장은 급속도로 얼어붙고 있다. 문제는 국내 금융사들이 부동산 금융 취급을 지속적으로 늘려왔다는 데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6월 기준 은행권과 제2금융권의 부동산 PF 대출 잔액은 112조2000억원에 달한다. 2014년 이후 연평균 증가율이 약 15%다. 은행권이 6조9000억원 증가한 반면, 제2금융권은 70조1000억원 급증했다. 이뿐 아니다. 개발 사업을 기초자산으로 증권사가 발행한 유동화증권까지 포함하면 그 규모가 152조원으로 늘어난다. 한은 통계에 잡히지 않은 농협·수협, 새마을금고 등을 포함하면 총 규모는 200조원을 웃돌 것이라는 분석이다.

▶대출 채권 유동화, 위기 진원지

▷공공기관 개발 사업도 좌초

부동산 PF의 부실이 위험한 이유를 들여다보면 이렇다.

부동산 PF는 개발 사업의 미래 가치를 평가해 돈이 오간다. 앞으로 개발 사업에서 예상되는 현금흐름을 예측해서 이를 담보로 돈을 빌려주는 것이므로 지금처럼 단기 금리가 급등하고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는 리스크가 커질 수밖에 없다. PF가 투입될 사업장에서 기대할 수 있는 현금흐름의 예측 가능성이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금융사들이 앞다퉈 대출 연장을 거부하거나 원리금 일부 회수에 속도를 내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부동산 PF는 고도의 유동화 기법이 적용돼 ‘ABS(Asset Backed Securities)’로 금융 시스템 곳곳에 퍼져 있다. 부동산 PF 대출에서 파생된 유동화증권 규모만 2014년 20조9000억원에서 올해 6월 39조8000억원으로 18조9000억원(90%) 증가했다. ABS는 우리말로는 ‘자산유동화증권’으로 풀이된다. 유동화는 곧 증권화를 뜻하며 ABS는 넓게 보면 채권의 ‘사촌’쯤 된다. 쉽게 말해, 개발 사업장의 현금흐름을 기반으로 대출 채권의 권리 관계를 구분해 여러 이해관계자들이 투자하기 쉽게 증권화했다는 의미다. 위험에 가장 취약한 곳부터 무너지기 시작하면 도미노처럼 부실이 확산할 수 있다는 뜻도 된다.

부동산 PF가 여러 금융 시스템에 확산하는 과정을 풀면 이렇다.

먼저, 부동산 개발 사업은 여러 관계 기업이 소규모 자금을 출자해 SPC를 만들고 여기에 부동산 자산을 넘긴다. 그런 다음, 이 SPC가 보유한 개발 프로젝트의 현금흐름을 기반으로 대출을 일으켜 개발 단계에 따라 순차적으로 원리금을 회수한다. 이런 식으로 최초 대출기관인 금융사의 원리금 회수 리스크를 제거하는 작업을 ‘구조화 금융’이라 부른다. 대부분 부동산 개발 사업은 이 같은 SPC를 매개로 자금 조달이 이뤄진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금융권에서는 이 SPC를 끼고 얽히고설킨 대출 채권을 긁어모은다. 이를 ‘풀링(pooling)’이라 부른다. 이렇게 긁어모은 대출 채권은 신용등급별로 구분한 뒤 또 다른 SPC에 넘겨 유동화한다. 이런 대출 채권 묶음에는 등급이 우량한 A급도 있고 신용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BBB급도 섞여 있다. 대출 채권 묶음을 유동화하는 역할은 증권사 IB부서가 주로 맡는다. 증권사는 신용등급별로 구분된 채권 꾸러미를 여러 투자자에게 쪼개 판다. 이 과정에서 담보 비율을 올리거나 신용등급별로 트렌치를 구분하는 신용 보강 작업이 병행된다. 등급이 가장 좋은 선순위는 상위 금융사 몫이다. 신용도가 낮은 중·후순위는 중소형 금융사가 가져간다. 기초자산이 부실화했을 경우 선순위 권리를 확보한 금융사부터 원금을 가져간다. 개발 사업이 디폴트가 났다면 선순위 금융사도 원금을 100% 회수하는 것은 매우 힘들다. 유사한 자산이 시장에 매물로 쏟아져 나올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후순위 권리를 가진 금융사는 원금 회수가 사실상 불가능한 구조다.

이런 이유로, 개발 사업에 문제가 생기면 여러 금융사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위험에 빠질 수 있다. 지난 9월 말 발생한 레고랜드 사태가 대표적이다. 지방 공기업인 강원중도개발공사가 레고랜드 건설 자금을 빌리려고 부동산 PF 대출을 기반으로 약 2000억원 규모 유동화증권을 발행했는데, 정작 시행사인 강원중도개발공사가 채무 불이행에 빠졌다. 그러자 유동화증권에 손을 댄 증권사는 물론 개인 투자자까지 피해가 확산 중이다.

특히 주요국 중앙은행의 강력한 긴축에 따른 실질적인 영향력은 내년부터 본격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기준금리가 인상되더라도 시차(lagging)가 존재하므로 실물 시장에 반영되기까지는 시일이 소요된다. 만기가 돌아오는 부실 사업장의 PF부터 하나둘 위험에 노출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진다.

부실을 선제적으로 반영하기 시작하면서 이미 금융사 실적에 실질적인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부동산 PF 위기론이 확산하자 금융 당국에도 비상이 걸렸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지난 10월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의 금융감독원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초대형 IB도 충당금 우려 커

▷중소 증권사 리스크 관리 비상

가장 위험한 곳은 중소형 증권사다. 평판이 낮은 중소 증권사는 부동산 PF 시장에서 대부분 중·후순위 채권이나 보통주 등에 투자했다. 개발 사업장이 멀쩡하게 돌아갈 때는 고수익을 낳는 투자처였지만 작금의 상황에서는 위기를 낳는 부메랑으로 돌변한다. 나이스신용평가에 따르면 자기자본 1조원 미만 증권사의 중·후순위 위험 노출 비중은 70%로 1조~4조원 규모의 증권사(57%), 4조원 이상인 초대형 증권사(30%)를 크게 웃돌았다.

대형 증권사라고 마냥 안심할 상황은 못 된다. 벌써 시장에서는 한국투자증권을 비롯 대형 증권사를 두고 수군대는 분위기가 읽힌다.

이들 증권사를 두고는 ‘브리지론’ 부실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브리지론은 말 그대로 부동산 개발 사업에 필요한 본 PF 대출을 일으키기 전 징검다리가 돼주는 대출을 뜻한다. 시공 이전 필요한 토지 매입, 인허가, 시공사 보증에 필요한 자금 대출로 보면 된다. 가령, 부지 매입에 1000억원이 필요하다면 해당 부지를 담보로 매입 계약금(통상 10%)에 필요한 100억원 등을 대출해준다. 이후 시공이 결정되면 현금흐름을 기반으로 PF 대출을 일으키고 브리지론을 상환하는 구조다. 경기가 멀쩡하게 돌아갈 때는 별문제 없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경기 침체로 시공이 차일피일 미뤄지거나 아예 개발 계획 자체가 없던 일이 되면 본 PF로 넘어가지 못한다. 이렇게 되면 브리지론을 대준 금융사는 대손충당금을 쌓아야 하고 최악의 경우 원금 회수에 실패할 수 있다.

한국기업평가에 따르면 주요 대형 증권사 가운데 한국투자증권 등 일부 대형 증권사의 브리지론 투자 비중이 높은 것으로 알려진다. 특히 브리지론은 대부분 후순위로 들어갈 때가 많아 대출보다는 지분 투자 성격이 강하다. 부실이 현실화할 경우 아예 원금을 잃을 수 있다는 의미다. 중소형 증권사 중에서는 하이투자증권, BNK투자증권, 현대차증권, 다올투자증권 등의 브리지론 투자 비중이 높은 편이다. 김영훈 한국신용평가 수석연구원은 “브리지론 이후 본 PF로의 전환 여부가 건전성 지표에 미칠 영향이 클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브리지론은 소위 계약금 대출로도 불리는데 부동산 PF에서 협상력을 높이는 수단으로도 활용됐다”며 “건당 대출 규모가 수십억원대로 크지는 않지만 대형 증권사는 자기자본이익률을 높이려 여러 사업장 대출에 손을 댔는데 시장이 급속도로 얼어붙으면서 충당금 우려가 커진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부동산 PF를 선제적으로 다뤘던 메리츠증권도 리스크 관리에 주력하고 있다. 메리츠증권은 현재 부동산 PF 대출의 대부분이 선순위로 구성된 것으로 알려진다. 메리츠증권이 보유한 부동산 PF 평균 주택담보비율(LTV)은 50%다. 부동산 가격이 50% 이상 떨어지지만 않으면 원금을 회수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시장 상황이 악화돼 악성 매물이 쌓일 경우 공정 가치로 제대로 된 평가를 받기 힘들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시장 일각에서는 리테일에 풀린 PF 관련 유동화 금융 상품을 우려하는 시선도 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대형 IB들이 PF 취급을 크게 늘리면서 자산가를 중심으로 리테일 시장으로도 유동화 상품을 많이 팔았다”며 “PF에서 디폴트 등 악성 이벤트가 줄줄이 터진다면 사모펀드처럼 불완전판매 우려가 재확산할까 우려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최근 몇 년간 부동산 PF 대출을 크게 늘린 캐피털사도 위험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금융당국과 한국은행 등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기준 여전사의 부동산 PF 대출 잔액은 26조7000억원으로 3년 전과 비교해 3배가량 증가했다. 전체 금융업권 중 가장 빠른 속도다. 캐피털사는 은행이나 저축은행과 달리 대부분의 자금을 자본 시장에서 여전채 등으로 조달하는데, 금리 급등으로 자금줄도 얼어붙은 상황이다.

사정이 이렇자 금융당국은 부동산 PF 위기관리에 비상이 걸렸다. 당장 금융감독원은 상황을 예의 주시하면서 비은행권에 부동산 PF 대출 관련 손실 흡수 능력을 강화하라고 지침을 내렸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최근 국정감사에 출석해 “특히 부동산 금융, 해외 대체 투자 등 경기 민감 익스포저 관련 리스크 요인 등이 시스템에 전이되지 않도록 집중 밀착해 상시 감시할 것”이라며 “금융 회사 손실 흡수 능력을 제고해 대내외 충격에도 건전성을 유지하며 본연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감독을 강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배준희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80호 (2022.10.19~2022.10.2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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