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총재 "통화스와프, 심리적 안정 주지만 만병통치약 아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15일(현지시간) "전 세계적으로 인플레이션이 높은 원인 중 하나는 에너지와 식료품 가격 때문이며,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야 실마리가 풀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국제통화기금(IMF)ㆍ세계은행 연차총회에 참석한 이 총재는 "인플레이션 등 세계적 문제 해결을 위해 우크라이나 전쟁 중단이 중요하다는 논의가 회의에서 있었다"면서 "당장 눈앞에 해법이 보이지 않기에 정책을 하는 입장에서는 전쟁이 상당 기간 갈 수도 있다고 전제해야 하지 않나 싶다"고 밝혔다.
이 총재는 이날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에서 열린 워싱턴특파원 간담회에서 "금리 인상에 따른 강(强)달러뿐 아니라 고유가 현상이 같이 나타나면서 다른 나라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스필오버'(spillover) 효과도 주요 논의 대상이었다"고 전했다.
달러로 빌린 외채가 많은 나라에 대한 채무 구조조정(debt restructuring) 문제도 논의됐다고 한다. 저소득국은 식량·에너지 가격 급등과 강달러로 이미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IMF 프로그램을 요청한 나라 숫자를 보면 당장 어려운 나라를 알 수 있는데, 많이 늘었다고 한다"고 전했다.
이 총재는 강달러가 다른 나라 경제에 부담을 주는 문제와 관련해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 의장은 미국의 인플레이션이 높기 때문에 당분간 물가 안정을 위해 계속 금리를 올리는 추세를 가져가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하면서도 동시에 그런 정책이 미치는 여러 스필오버도 유심히 보고 있다고 말했다"고 설명했다.
또 영국 연기금 사태에서 보듯이 스필오버가 달러 외채가 많은 국가나 저소득국뿐 아니라 영국 같은 순채권국 등 예상치 못한 곳에서도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면서 특히 비(非)은행 금융기관의 리스크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과 통화 스와프 추진에 대해서는 "스와프가 우리의 심리적 안정에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달러 강세가 지속할 때 환율 절하를 막을 수 있느냐를 생각하면 상시 스와프를 가진 다른 나라도 (통화가) 절하되는 걸 보면 스와프가 만병통치약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총재는 "예전과 달리 유동성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면서 "안심하라는 얘기는 아니지만, 2008년과 상황이 너무 다르다는 것을 객관적으로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미국 경기에 대해서는 "경착륙 가능성이 커졌다"고 전망했다.
중기적으로는 세계 경제의 분절화(fragmentation)에 대한 대응을 강조했다. 미국과 중국 간 지정학적 갈등으로 경제가 세계화에서 분절화로 가고 있는데, 냉전 시대처럼 되면 전 세계가 치를 비용이 너무 크기 때문에 IMF와 세계무역기구(WTO) 등 다자주의 체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이를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 경제는 지역적으로는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면서 다양화하고, 국내적으로는 반도체와 자동차에 너무 의존하고 있는 산업구조를 다각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3연임 후 중국에 새 경제팀이 꾸려지면 미국과 새로운 협상을 할지, 제로 코로나 정책에 변화가 있을지 등에 총회 참석국들의 관심이 쏠렸다고도 했다.
이 총재는 국내 기업과 개인의 해외투자에 대해서는 "환율이 1100원일 때와 1400원을 넘을 때의 투자 전략은 달라야 하지 않겠느냐"면서 "미국이 금리 인상 기조를 바꾸게 되면 (금리 인상 때 원화가 빠르게 절하된 것처럼) 빠르게 절상되는 것도 배제하지 말고 투자 전략을 짜는 게 좋겠다"고 조언했다.
워싱턴=박현영 특파원 park.hyu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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