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정자증 기적? 아내 외도였다..法은 "남편 자식" 못박은 이유 [가족의자격⑨]
■ 가족의 자격
「 가족의 자격을 새로이 법원에 물어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가족연(緣)을 끊으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법원은 어떤 해답을 줄까요. 또 법의 공백은 어떻게 채워야 할까요. 중앙일보가 새로운 가족의 자격을 묻습니다.
」
#사례 1
아내가 남편과의 결혼 생활 도중에 다른 남자의 아이를 가졌다. 남편은 과거 무정자증 진단을 받은 적이 있었지만, 극적으로 임신이 된 것으로 생각했을 뿐 아내를 의심하지 않았다. 부부 사이가 나빠져 협의이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아이의 친부를 추궁했고, 그제야 자신의 아이가 혼외자임을 알게 됐다. 아이는 부부가 다투는 소리를 듣고 자신을 둘러싼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됐다. 남편은 아이와 자신 사이 '친생자 관계'가 존재하지 않는 것을 확인해달라며 법원에 소송을 냈다.
#사례 2
아내는 자신의 진짜 연인을 숨기고 남편과 결혼했다. 남편과 이혼한 뒤 내연남과 관계를 이어가 아이까지 출산했다. 이후 아내는 남편과 재결합을 결정했는데, 이때 이 아이가 남편의 아이인 것처럼 출생신고를 마쳤다. 내연남과의 관계도 끊지 않아 아이는 한 명 더 태어났다. 역시 남편의 친생자로 신고했다. 남편이 세상을 먼저 떠나자, 아이들은 자신의 진짜 아버지의 자녀가 되겠다며 '친생자 관계 부존재확인' 소송을 냈다.
임신과 출산에 따라 모자 관계는 확인이 비교적 쉽지만, 부자 관계는 드러난 사실만으로는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우리 민법은 아내가 결혼 생활 중에 임신한 자녀는 원칙적으로 남편의 아이로 추정합니다. 이 사례의 남편처럼 자녀와 혈연관계가 없는 것이 과학적으로 증명된다고 하더라도, 법률상 친생자로 추정하는 것은 변함이 없습니다.
사례 1 사건을 심리한 대법원 전원합의체도 지난 2019년 10월 남편과 자녀 사이 혈연관계가 없다는 점이 밝혀졌더라도 '친생추정'의 효력이 미친다고 판단했습니다. 법원이 '친생추정' 규정을 이처럼 강력하게 적용하는 목적은 '자녀의 행복'을 우선하기 때문입니다. 결혼생활 중 생긴 아이에 대해 일일이 부자 관계를 확인하려 든다면, 양육을 받아야할 미성년 자녀의 법적 신분이 위태로워질 수 있어서죠.
당시 대법관들은 다수 의견에서 ① 혈연관계의 유무를 기준으로 친생추정의 범위를 정하는 것은 친생추정 규정을 친자관계의 설정의 기본 규정으로 삼는 민법 취지와 체계에 반하며 ② 이 경우 필연적으로 가족관계의 당사자가 아닌 제3자가 부부·가족관계 등 가정 내부의 내밀한 영역에 깊숙이 관여하게 되는 결과를 피할 수 없고 ③ 법리적으로 보아도 혈연관계의 유무는 친생추정을 번복할 수 있는 사유에는 해당할 수 있지만 친생추정이 미치지 않는 범위를 정하는 사유가 될 수 없다. 라고 봤습니다.
이 때도 권순일·노정희·김상환 대법관은 “남편과 자녀가 혈연관계가 없음이 과학적으로 증명되고 그들 사이에 사회적 친자관계가 형성되지 않았거나 파탄된 경우에는 친생추정의 예외로서 친자관계를 부정할 수 있다고 할 것이나, 혈연관계가 없음이 과학적으로 증명됐더라도 사회적 친자관계가 형성되어 있는 경우에는 함부로 친생추정 예외의 법리로 친자관계를 부정할 수 없다고 봄이 타당하다”란 별개 의견을 냈습니다. 혼인관계가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파탄된 경우 예외적 이혼을 허용하는 것 같이 혈연관계는 물론 ‘기른 정’조차 없는 경우 친자관계를 부인할 수 있다라고 입장이지만 소수의견이어서 채택되진 못했습니다.
다만 대법원도 부부간 동거를 하지 않았던 사실이 외관상 명백한 경우, 즉 별거하고 있었거나 한 사람이 해외에 거주하는 등의 상황이 있었을 때는 예외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럴 때는 부부 중 일방이 자신의 아이가 아닌 것을 안 날부터 2년 안에 '친생부인의 소'를 제기할 수 있고, 만약 이 기간이 지난 경우 '친생자관계 존부확인의 소'를 제기해 늦게라도 서류를 바로잡을 수 있습니다.
법원의 예외 인정은 혈연 중심의 농경사회 문화에서부터 비롯됐습니다. 마을 주민들이 서로 도와 농사를 짓고 이웃과 일거수일투족을 공유하던 사회에서, 남편이 멀리 떠났을 때 아내가 임신하면 남편의 아이가 아니라는 걸 누구나 알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을 모두가 남편 아이가 아니라는 걸 아는데, 법원만 '친생추정' 규정을 고집해 남편과 아이를 법적으로 묶어놓는다고 해서 가정의 평화가 유지되는 건 아니라는 것입니다.
지난해 9월 사례 2 사건을 심리한 대법원은 이 같은 예외를 재확인했습니다. 첫째 자녀의 경우 부부가 이혼한 기간에 태어났고, 둘째 자녀 역시 아내가 임신했을 때는 부부가 사실상의 이혼 상태로 별거하고 있었다는 사정을 고려한 겁니다.
도시 생활을 중심으로 한 개인주의가 발달하고, 익명성이 높아진 현대 사회에서는 이 같은 사법부 판단에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요. 재혼이나 입양, 제3자 정자 제공 등 혈연의 의미가 옅어진 상황에서, 학계에서는 아내가 혼인 기간에 출산한 자녀에 대해서는 제한 없이 '친생추정'의 규정을 적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남편과 동거를 했든 안 했든, 오래 해외에 있었든 없었든 사정을 따지지 말고 우선은 친생으로 추정하자는 것입니다. 일단은 미성년 자녀의 행복을 우선시한 '친생추정' 규정의 입법 취지대로 하자는 거죠.
대신 이들은 민법을 고쳐 당사자가 혈연관계에 맞춰 보다 쉽게 친생관계를 번복할 수 있는 방안을 더 넓게 열어두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일단 친생자로 추정하되, 스스로 행복을 찾아 진짜 혈연관계를 찾아 떠나는 가족들에게는 길을 열어주자는 것입니다. 현재는 자녀나 자녀의 생부(미혼부)가 직접 친생부인 소송을 내는 것이 불가능한데, 이를 허용하는 것도 대안으로 꼽힙니다.
오효정 기자 oh.hyo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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