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호정] 은퇴하는 정혁 "인천이 다시 비상하도록 돕고 떠나 행복하다"

[풋볼리스트] 서호정 기자 = 만능 미드필더 정혁이 선수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소속팀 인천유나이티드는 12일 보도자료를 통해 정혁의 은퇴를 발표하며, 오는 16일 포항과의 홈 경기에서 은퇴식을 연다고 발표했다. 2009년 프로에 데뷔, 13년 동안 리그 261경기를 소화한 상태다. 인천에서 99경기, 전북에서 103경기, 안산무궁화에서 42경기, 경남에서 17경기를 뛰었다.
프로 생활 동안 가장 아꼈던 등번호 8번에 어울리는 박스투박스형 미드필더였다. 대학생 시절 풋살 국가대표를 했을 정도로 좋은 기술, 통산 41개의 공격포인트(23골 18도움)를 올릴 정도의 공격력, 거기에 크지 않은 체구에도 적극적인 수비가담과 기동력을 보여준 육각형 선수였다. 전북의 황금기를 지탱한 멤버로, 중원에 문제가 생기면 어느 위치든 투입할 수 있는 믿을맨이었다. 지난해 여름에는 데뷔 후 4시즌을 보냈던 인천으로 돌아가 클래스를 증명하며 요즘 보기 드문 로맨스까지 챙겼다.
86년생으로 K리그 뿐만 아니라 당장 팀 내만 둘러봐도 자신보다 연배가 위인 동료들이 있지만 정혁은 조성환 감독의 제안을 받아들이며 현역 은퇴를 결정했다. 선수로 보내는 마지막 시즌이 열흘도 채 남지 않았지만 정혁은 아쉬움과 슬픔보다는 13년의 프로 선수 생활 동안 이룬 많은 추억과 기쁨을 말했다. 무엇보다 인천으로 돌아와서 팀이 자신이 떠나기 전처럼 다시 비상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는데 도움을 준 것에 행복하다는 소감을 밝혔다. 13일 저녁 정혁과 지난 선수 생활을 돌아봤다.
- 축구 인생의 1막을 내리기로 한 결정의 배경이 궁금합니다.
2009년 인천에서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는데 그때 팀이 5위를 했어요. 그 당시가 인천 팬들이 생각하는 팀의 두번째 전성기죠. 전북으로부터 좋은 제안을 받아서 인천을 떠났고, 전주에서 우승 메달을 받는 행복을 느꼈죠. 그렇지만 마음 한 켠에는 강등 싸움으로 힘들어 하는 인천을 보며 안타까움이 있었어요. 작년 여름 다시 인천으로 돌아올 기회가 열렸고, 돌아와서 제가 할 일은 떠나기 전처럼 인천이 저력 있는 팀으로 돌아오게 돕는 거였어요. 작년에 인천이 조기 잔류했고, 올해는 팀이 무섭게 성장하며 파이널A에 드는 걸 보면서 이제는 무거운 마음 없이 그라운드를 떠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파이널 라운드를 앞두고 조성환 감독님과 긴 대화를 나눴고, 감독님께서 은퇴와 다음 축구 인생에 대한 고민을 한번 해보는게 어떻겠냐고 얘기하셨습니다. 저도 아름답게 헤어질 수 있는 타이밍을 조금씩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죠. 선배들이 이끌고 후배들이 잘 따르고, 감독님과 코치님들이 팀을 잘 만들어 나가고 있습니다. 구단이 뒤에서 서포트를 잘 해주는 시스템이 됐어요. 인천이 다시 비상할 수 있는 위치까지 왔으니 이제는 웃으며 떠날 수 있겠다 싶어서 은퇴하겠다는 뜻을 감독님과 구단에 전했습니다.
- 김광석, 강민수, 김창수 같은 선배들도 아직 뛰고 있는데 은퇴를 하게 됐네요.
그 부분이 조금 마음에 걸리죠. 하지만 포지션의 상황이 달라요. 허리는 제가 떠나도 충분히 강하고, 그래서 기회가 적게 오는 현실을 인정했어요. 형들은 각자 포지션에서 충분히 역할을 해 주고 있으니 앞으로도 더 하실 수 있다고 봐요. 프로는 책임을 안고 가는 자리라고 생각해요. 제가 여기서 욕심 내기보다는 이렇게 팀이 잘 하고 있을 때 웃으면서 은퇴를 하는 것도 좋은 기회라 생각해요. 제가 멋지게 은퇴하는 선배님 네 분을 봤어요. 임중용 실장님, 김이섭 코치님, 김상식 감독님 그리고 (이)동국이 형. 그걸 보면서 제 선수 인생의 마지막 목표는 팬들의 박수를 받을 수 있는 은퇴식이라 생각했죠. 그 기회를 잡을 수 있는 것도 큰 혜택이라 봐요. 감사드리죠. 어제 임중용 실장님과도 미팅을 가졌고요. 평소에 구단 행사할 때 사진 잘 안 찍으시는데, 이번에는 특별히 저하고 같이 사진 찍고 싶다고 하시더라고요.
- 여름에 경남으로의 이적 논의도 있었던 걸로 압니다. 그 얘기는 본인만 욕심을 낸다면 현역 생활 연장은 충분히 가능하다는 건데요.
선수 생활 지속과 은퇴 사이에서 제 욕심을 꺾는 데까지 고민이 길었죠. 몸 상태는 욕심 내면 1-2년을 더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여름만 해도 몸 상태는 좋았으니까 뛰고 싶은 마음이 있었죠. 마침 인천도 그때 여러 상황이 겹쳐서 경남과 트레이드 얘기가 있었는데, 어떤 사정으로 불발됐고 그 뒤엔 욕심을 내려놨어요. 인천이 아닌 다른 팀에서 더 뛰면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는 것과, 제가 프로 생활을 시작한 인천에서 마무리하는 것. 둘의 가치를 놓고 봤을 때 후자가 맞다고 받아들였어요.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 줄 타이밍이고, 새로운 도전을 위한 공부를 할 적기라 생각해요.
- 제2의 축구 인생은 어떤 방향을 생각하고 있나요? 지도자도 있고, 행정가도 있고 여러 선택지가 있습니다.
욕심 같아서는 다 경험하고 싶어요. 전북에 있을 당시만 해도 지도자에 대한 꿈은 크지 않았어요. 워낙 좋은 기량을 지닌, 이미 완성이 된 선수들이 많은 팀이잖아요. 지도자는 하기 쉽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경남에 가서 생각이 좀 바뀌었죠. (설)기현이 형과 감독-선수의 관계로 지내면서 부족한 점을 어떤 식으로 가르치고 훈련시켜 채우는가에 대한 걸 집중적으로 관찰했어요. 인천에 와서도 김이섭, 박용호, 김재성 선배님이 코치로서 선수들을 케어하고 성장시키는 걸 보면서 지도자에 대한 매력을 느꼈어요. 제가 선배님의 사랑과 가르침을 받으며 많은 걸 얻었기 때문에 그걸 후배들에게 돌려줄 수 있는 시간을 보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생겼어요. 제가 갖고 있는 경험 중 우승, 그리고 잔류라는 게 너무 극적이잖아요. 2부 리그에서 승격하기 위해서도 치열하게 싸워봤고. 누구도 갖기 어려운 그 경험이 지도자를 하는데 큰 자산이 될 수 있단 생각을 해요. 그래서 지난 3년 간은 선수지만 지도자의 마인드에 접근하며 공부를 했어요. 일단은 지도자가 되기 위한 공부를 하고 싶습니다.

- 2009년 전주대를 졸업하고 인천에 와서 프로 커리어를 시작했습니다. 데뷔 시즌부터 요즘 표현으로 하드캐리했죠?
지금은 고인이 되신 일리야 페트코비치 감독님이 좋게 봐주신 게 행운이었죠. 외국인 감독님이다 보니 신인인 저를 기존 선수들과 동일 선상에 두고 평가해주셨어요. 그러면서 그때의 인천이 신구 조화가 잘 됐어요. 중용이 형, (전)재호 형, (손)대호 형, 이섭이 형, (우)성용이 형이 잘 이끌어 주셨고 어린 선수들이 그 사이에서 역할을 했어요. 그 선배들이 받쳐주셨기에 제가 잘 출발할 수 있었죠. 중간에는 (김)남일이 형, 기현이 형이 합류하면서 인천이라는 팀이 더 큰 꿈을 갖게 됐고요. 지금의 인천과 비슷한 느낌이라 할 수 있네요. 현재도 광석이 형을 필두로 선배들이 큰 역할을 해주거든요.
- 데뷔하고 4년 동안 좋은 추억을 쌓아 뒀기 때문에 12년 뒤 연어처럼 돌아올 수 있었겠죠.
저는 문학운동장 시절 인천에서 데뷔를 했거든요. 그때는 신인이라 수입이 적으니까 쉴 때 동기들과 돈까스 먹으러 자주 갔어요. 배고픈 시간이지만 그래서 추억이 많이 쌓였고요. 작은 것에 늘 큰 감사를 가졌죠. 그러면서 꿈을 꿨어요. 언젠가는 형들처럼 좋은 평가를 받고, 멋진 삶을 살고 싶다. 2009년에 재호 형 결혼식에 갔는데, 누군가의 결혼식에 처음 간 거였어요. 서울에 있는 멋진 호텔에서 형이 결혼식을 올렸는데, 저도 성공해서 꼭 이렇게 결혼하고 싶다는 동기부여가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나중에 그런 위치에 가도 인천을 잊지 못하고 그리워했죠. 작년에 인천으로 돌아가겠다는 결심을 했을 때 아내한테도, 지금은 현실이 됐지만 이 모든 게 인천에서는 이루고 싶은 꿈이었다는 얘기를 하니까 저를 이해해주더라고요.
- 인천 소속으로 리그 99경기에 나섰더라고요. 100경기 출전까지 1경기만 남은 상태인데 그 마침표에 대한 욕심은 없습니까?
인천 소속으로 100경기 채우는 것 또한 큰 영광이죠. 제 몸 상태를 보고 감독님이 판단해주실 거 같습니다. 감독님께서 실력과 컨디션은 의심하지 않고 있으니까 부담을 갖지 말고 준비는 하라는 얘길 해주셨어요. 경기를 뛰고 은퇴하는 게 좋다고 하셨고요. 그래도 경기 흐름을 따라갈 수 있는 몸 상태긴 하니까 팀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조금이라도 뛰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1군 경기를 많이 소화하진 못했지만 놀고 있진 않았어요. 2군에서 계속 경기를 뛰고 있었고 열심히 운동을 했습니다. 그래서 감독님도 이 시점에 기회를 주셨다고 봐요. 조성환 감독님 스타일상 헛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선수에겐 이런 기회도 주지 않으세요. 사실 지금 인천이 AFC 챔피언스리그 출전권을 딸 수 있는 중요한 시점이잖아요. 그래서 감독님께서 어떤 말씀도 드리지 않았어요. 부담드리고 싶지 않아요. 정말 몸 상태만 보고, 팀 상황만 보고 결정하시리라 믿어요. 그리고 결정을 내려주시면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싶습니다.
- 전북의 경우 경쟁하며 뒤에서 기다리는 게 먼저였던 팀입니다. 그런데도 8시즌을 버티며 100경기 이상을 뛴 비결은 뭔가요?
전북에 입단하고 군대 가기 전인 2013년과 2014년에 예상보다 많은 기회를 받았어요. 우승이라는 달콤하고 멋진 경험을 하니까 동기부여가 되더라고요. 전북이라는 팀의 매력을 알게 됐고, 스타플레이어 틈 사이에서 역할을 하는 제가 뿌듯했어요. 어떤 날은 스타팅 멤버 중 국가대표 경험이 없는 선수가 저뿐이었죠. 중요한 건 믿음이었어요. 최강희 감독님이 말씀은 많이 안하시지만 뒤에서 기다려주는 선수들을 믿고 계셨어요. 저는 거기에 보답하려는 성향의 선수였고요. 그리고 어느 순간 제 옆에 있던 상식이 형이 감독님이 되니까, 또 거기에 뭔가 도움을 드리고 믿어주시는 만큼 보답하고 싶더라고요. 그래서인지 전북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에도 김상식 감독님이 제가 원하는 선택을 할 수 있게 도와주셨어요. 전북에서도 제가 짐이 되지 않는 시점에 마무리를 하고 싶었어요. 그게 작년 여름이었고요. 저는 운 좋은 선수죠. 항상 잘 준비하고 있었고, 전북이라는 팀이 그걸 좋게 봐 주고 기회를 줬으니까요. 그럴 때 정말 최선을 다 해서 기회를 잡는 게 전북에서 생존한 비결이었습니다. 왕관을 쓰려면 견뎌야 한다는 무게, 그걸 버티는 팀의 문화를 경험해서 좋았어요. 6개나 되는 우승 메달을 들고 나올 수 있었고요. 월드컵은 가지 못했지만 대신 클럽월드컵이라는 대단한 무대에서 뛰었잖아요. 그리고 지금 대표팀의 중추인 이재성, 김민재 같은 대단한 선수들이 그 팀에서 어떻게 출발하는지도 봤다는 것도 좋은 기억입니다.
-전북의 올 시즌 리그 마지막 경기가 공교롭게 인천입니다. 그 경기에서 정혁 선수 은퇴식을 한번 더 해 달라는 전북 팬들의 목소리가 큽니다.
오늘(10월 13일) 오전에 인천 구단과 미팅하는데, 전북 구단에서 인천이 양해를 해 준다면 저를 위한 행사를 준비해 보고 싶다는 연락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인천에서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낸 거 같아요. 사실 은퇴를 결심하고 가장 먼저 생각난 사람이 동국이 형과 상식이 형이었어요. 그래서 최근 김상식 감독님에게 은퇴하기로 했다고 전화를 드렸지만, 은퇴 행사 관련해서는 얘기하지 않았습니다. 전북이 최근 분위기가 좋지 않은 건 아닐까 싶어서 제 바람을 얘기도 못 드렸는데 아마 감독님이 구단에 챙겨주자고 얘기를 하신 거 같아요. 동국이 형도 같은 송도 주민으로 평소 많은 도움 주시는데, 이번에도 은퇴를 결정하는 것과 그 뒤에 해야 할 것들에 대한 조언도 해주셨어요. 그리고 어제 (최)보경이가 저에 대한 마음을 SNS에 표현하는 과정에서 인천 팬들한테 많이 혼났다고 하더라고요.(웃음) 보경이가 저를 좋아해서 그걸 표현하려다 보니 선을 좀 넘었더라고요. 나중에 연락 와서 인천 팬들한테 혼나서 무서웠는데 그만큼 인천이 형을 아끼는 거 같아서 기분은 좋았다 하더라고요. 인천 팬들도 최보경 선수의 실수를 너그럽게 용서하셨으면 좋겠습니다.
-2020시즌 후반기에는 경남에 임대를 가서 '아직 정혁 안 죽었구나'라는 걸 제대로 보여줬습니다.
창원은 제 고향이고, 어머니가 아직도 그 곳에서 혼자 지내세요. 한번은 고향팀인 경남에서 뛰어 보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어요. 기현이 형이 저를 원해서 경남으로부터 제의가 왔을 때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죠. 당시엔 정말 몸 상태가 좋다 보니 설기현 감독님이 제가 할 수 있는 여러 역할을 맡겨 주셨어요. 그 기대에 부응할 수 있어서 좋았죠. 짧은 시간이었지만 잊지 못할 거 같습니다. 거기서 얻은 자신감으로 전북으로 돌아갈 수 있었고요. 가장 아쉬웠던 건 수원FC와의 플레이오프 최종전에 뛰지 못한 거예요. 그 전에 치른 대전과의 준플레이오프에서 경고를 받아서 누적 경고로 결장했거든요. 그게 너무 슬프죠. 그때 승격하는데 마지막 힘을 보태지 못한 게 미안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정에 기현이 형이 동행하자고 할 정도로 믿음을 보여주셨고, 마지막에 목표를 달성하진 못했지만 정말 좋은 추억으로 마무리 할 수 있었습니다.

- 축구선수 커리어 전체에서 가장 잊을 수 없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인천축구전용구장 개장 경기가 일단 제일 먼저 기억나요. 비록 개장을 알리는 경기에선 졌지만, 우리 모두 노력해서 이런 멋진 홈을 얻었다는 성취감이 있었죠. 전북에서 AFC 챔피언스리그 첫 경기를 했을 때도 아직 생생해요. 아내가 첫째를 임신한 타이밍에 골을 넣을 수 있어서 많은 분들 앞에서 축하의 세리머니를 할 수 있어 좋았고요. 최근에 가장 좋은 기억은 인천으로 돌아와서 서울을 상대로 복귀전을 했을 때죠. 그때 승리를 시작으로 3연승을 했을 때, 인천 팬들이 정혁이 돌아와서 기쁘다는 얘기를 해주셔서 너무 감사했어요. 딱 하나를 꼽을 수 없을 정도로 좋은 추억이 많다는 게 선수로서는 너무 큰 복이죠. 저는 행운이 너무 많은 선수였던 것 같아요.
- 은퇴식 때 마지막 인터뷰는 아내인 이유경 아나운서가 해야 하는 거 아닐까요?
아내가 저 몰래 준비하고 있을 수도 있어요. (웃음) 어제 가보니까 팬들에게 드릴 선물을 준비하고 있더라고요. 딸 이현이랑 경기장에서 간식을 직접 나눠드릴 거 같아요. 아내에겐 늘 미안해요. 저 때문에 희생을 많이 해서… 이현이가 아빠가 축구 선수였다는 걸 알고 나서 은퇴하는 것도 고마운 일이죠. 요즘은 딸이랑 같이 있는 시간이 데이트하는 시간 같아요. 소통이 되거든요. 그리고 아내가 둘째도 임신했어요. 1월에 태어나요. 딸입니다. 전주에서 첫째가, 인천에서 둘째가 태어나는 건데 두 딸이 각각 전북과 인천을 응원하는 축구팬으로 자랐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선수로서 은퇴하는 날이 저희 가족에겐 큰 축복의 날이 될 거 같습니다. 그렇게 떠나도록 도와주신 모든 분에게 감사드립니다.
사진=인천유나이티드, 한국프로축구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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