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범근의 더 큰 꿈 "한일전 패배 보고 유소년 육성 사명감 다시 느꼈다"

허인회 기자 2022. 10. 12.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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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볼리스트] 허인회 기자= "어렸을 때 아디다스 축구화 신고 베켄바워가 몸담고 있는 독일에서 뛰고 싶다는 꿈을 꿨다. 그리고 이뤘다. 우리 아이들에게도 꿈을 주고 싶다. 꿈은 꿔야 이룰 수도 있다. 꾸지 않는 꿈은 이뤄지지도 않는다."


차범근 축구교실은 1990년 처음으로 문을 열어 32년간 운영되며 한국 축구 육성 시스템의 초석을 다진 곳이다. 차범근 이사장이 독일 생활을 마친 뒤 축구교실을 차리면서 품었던 사명이 있었다. 한국 축구 교육의 체질을 개선하는 것이었다. 차 이사장은 '풋볼리스트'와 만나 32년간의 노력 끝에 실현한 사명, 그리고 향후 계획에 대해 이야기했다.


"유럽에는 10년이나 있었으니 시스템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브라질 선수들의 기술과 감각은 궁금했다. 축구교실을 열려면 남미에 대해서도 잘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아이들을 데리고 브라질로 간 적이 있다. 그리고 무릎을 쳤다. 브라질 아이들은 조그마한 운동장에서, 굳이 운동장이 크지 않고 실내여도 맨발로 공을 차고 뛰어다니더라. 좁은 곳에서 일대일, 이대이, 삼대삼 축구를 하니 감각이 좋았다. 깜짝 놀랐다. 1997년 이촌 한강공원에 축구교실을 만들어 유럽의 시스템에 브라질 방식까지 접목시켜 선수들을 육성하기 시작했다."


이제 각종 축구교실은 전국적으로 유행하고 있으며 차 감독의 처음 바람대로 축구 교육의 체질 개선도 이뤄지고 있다. 차 이사장은 축구교실을 그만 손에서 놓으려고도 했다.


"한 5개월 전 우리 축구교실 아이들이 경기 뛰는 것을 보고 사실 내 사명은 끝났다고 생각했다. 내가 처음 기대했던 모습을 아이들이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학교 축구부 대신 축구교실 방식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늘어났다. 한국 축구 교육의 체질 개선도 시작됐기 때문에 다 이뤘다고 생각했다. 거기에다 운동장 입찰까지 실패했다. 할 수 있는 건 다했다는 생각과 오히려 홀가분한 기분까지 들었다."


차두리 FC서울 유스 강화실장(왼쪽). 차범근. 허인회 기자

차범근 축구교실은 지난 9일 서울 용산구 이촌 한강공원에서 '차범근 축구교실 굿바이 페스티벌'을 개최한 바 있다. 서울시 한강사업본부의 축구장 사용 허가 기간을 연장하지 못하면서 1997년부터 25년간 사용해 온 이촌 한강공원을 떠나게 됐기 때문이다. 차 이사장은 이를 계기로 축구 교육에서 손을 떼려고 했지만 혼자 결단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증설 계획을 생각하게 됐다.


"우리 회원들과 팬들의 반응을 보니 차범근 축구교실은 이제 내가 없애려고 해도 그럴 수 없는, 공공의 축구교실로 바뀌었더라고. 한국의 축구 문화가 이제 (학교 축구부보다) 축구교실쪽으로 많이 넘어갔다. 지방 학교의 경우에는 축구부 숫자가 매우 부족하다. 최근 일본과의 대결에서 여러 번 지는 것을 보고 내 사명이 끝난 것이 아니라 우리 축구교실을 더 광범위하게 넓혀 더 많은 아이들에게 혜택을 줘야 한다는 생각을 다시 했다."


"우리 축구교실은 등록 대기 걸어두면 6개월에서 1년이나 기다려야 한다. 운동장 부족하다는 핑계로 축구교실을 확장해야 한다는 생각을 안 했던 것이었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오히려 더 넓혀가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10년 전 축구교실 부지로 연천에 땅 5만 6천 평도 사놨다. 그 동안 이 핑계, 저 핑계로 안 하다가 여기까지 왔다."


차 이사장은 최대한 많은 아이들에게 축구를 매개체로, 꼭 축구가 아니더라도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고 싶다는 생각을 전했다. 그게 차 이사장의 축구교실 사명이다.


"차범근 축구교실의 본래 취지가 우리 축구 문화부터 개선하자는데 목적이 있다. 아이들은 학과 공부가 끝난 다음에 축구를 해야 한다는 것이 축구교실의 취지다. 인격적인 모독이나 욕설, 폭력은 절대 안 된다. 돈을 너무 많이 거둬 아이들이 축구를 못하게 해서도 안 된다. 수강생을 너무 늘리거나 훈련을 너무 많이 시켜서도 안 된다. 학교 생활과 축구를 병행시키고 축구를 통해 페어플레이 정신을 심어줘야 한다. 그 아이들을 꼭 축구선수로 키우는 것이 아니라 더 건강한 사회 집단을 만든다는 개념이 깔려 있다. 유럽 사회가 맑은 이유도 어릴 때부터 단체 운동을 많이 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기본적인 원칙 안에서 공동체를 배운다."


차범근 축구교실은 아이들이 사회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주고, 길라잡이 역할을 해주는 것에 최우선 목적을 둔다. 축구선수로 육성하는 것은 두 번째다. 최근에는 한 가정에서 자녀를 여러 명 두지 않고 있기 때문에 공동체를 경험하는 해주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집에서 혼자 생활하던 아이들이 이곳에서 다른 친구들과 섞여 뭔가를 하게 되니 재미있을 수밖에 없다.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아이들은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축구장 위에서 자기가 설 자리를 안다. 무슨 얘기냐면 내가 공 좀 찬다 하면 맨 앞에서 공격 하고, 조금 부족하면 밑으로 내려온다. 조금 더 안 된다고 생각하면 스스로 수비 쪽으로 가고, 골키퍼를 본다. 교육상 골키퍼는 번갈아가며 봐야 하지만 코치가 억지로 너는 골키퍼만 보라고 강요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아이들도 알아서 자기 자리를 딱 찾아간다는 것이다. 얼마나 좋은 교육인가. 사회에 나가서도 마찬가지로 자기들의 자리를 알아야 한다. 내 분수를 알고 상대를 알아야 뭔가 이룰 수 있다. 축구라는 스포츠가 공동체의 기본을 가르쳐주기 때문에 매력이 있다."


"우리 사회는 조금 더 투명하고 맑아져야 한다. 학교 수업만 가지고는 어렵다. 하지만 이렇게  운동장에 풀어놓으면 스스로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게 된다. 골을 넣기 위해, 골을 안 먹기 위해 자기들끼리 상황을 맞춰 공격도 하고, 수비도 한다. 가장 중요한 페어플레이라는 룰 안에서 말이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주지 않는 선에서 최선의 방법을 만들어내기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건강한 사회가 된다. 나는 거기에 매력을 느끼고 있다."


차범근 축구교실은 무려 32년간 수많은 수강생들이 거쳐갔다. 정조국처럼 대표급 축구선수로 성장한 인물이 있고 이외에도 연예계나 각종 분야에 종사하고 있다. 차범근 축구교실 출신이라는 것을 큰 자부심으로 여기는 이들도 많다. 


"아이들이 커서 꼭 축구선수가 되라는 것이 아니다. 나는 큰 선수 육성에 포커스를 두고 있지 않다. 내가 축구교실을 32년 운영했는데 사회 곳곳에 우리 출신들이 꼭 있다. 세차장을 가도, 은행을 가도, 박사 중에서도 있다. 차범근 축구교실 출신 사람들이 나를 보면 반갑다고 인사를 한다. 다양한 분야에서 차범근 축구교실 출신이라는 긍지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너무 감사하다. 그런 사람들이 많아지면 사회가 더 건강하고 투명해질 수 있다."


차 이사장은 축구선수로서 꿈을 이룬 대표적 성공 사례다. 1978년 당시 세계 최고의 리그였던 독일 분데스리가로 건너가 다 나열하기 어려울 만큼 위대한 업적을 쌓았다. 프랑크푸르트 지하철 역에는 여전히 차 이사장의 선수 시절 사진이 붙어있다. 아이들 역시 본인처럼 꿈을 향해 내달리길 바란다.


"나는 축구교실에 대한 사명이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이다. 아이들 보면 전부 다 내 아이들 같고 사랑스럽다. 나는 고등학생 때까지 아디다스 축구화 한 번 못 신었다. 청소년 시절 TV에서 베켄바워가 아디다스 삼선 운동복에 멋진 축구화 신고 나와서 뛰는데 그게 그렇게 멋있었다. 나도 독일 한 번 가서 베켄바워 만나 아디다스 축구화 신고 뛰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결국에는 진짜 베켄바워와 친해졌다. 내가 어렸을 때 가진 꿈을 이룬 것처럼 우리 아이들에게도 꿈을 주고 싶다. 꿈은 꿔야 이룰 수도 있다. 꾸지 않는 꿈은 이뤄지지 않는다."


사진= 풋웍크리에이션 제공, 풋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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