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은 도리어 기억함으로써 치유한다

2022. 10. 12.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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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훈의 세계건축기행] (1)
9·11 메모리얼 파크(The 9·11 Memorial)

2001년 9월 11일은 역사적 참사 9·11 테러가 발생한 날이다. 평범했던 가을날 아침, 전 세계 사람들이 뉴스 생중계를 통해 110층의 쌍둥이 빌딩이 비행기를 이용한 자살 테러로 무너지는 장면을 목격했다.

그날 2753명의 소중한 목숨이 세상을 떠났다. 미국 정부는 깊은 상처를 치유하고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기억’을 선택했다. 안타까운 희생을 영원히 기억하고 두 번 다시 똑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미국의 다짐은 세계에서 가장 비싼 땅 뉴욕 맨해튼의 3만2375㎡에 달하는 거대한 대지를 온전히 기억을 위한 공간으로 바꿔놨다. 바로 9·11 메모리얼 파크(The 9·11 Memorial)다.

9·11 테러가 발생하고 두 달이 지났을 무렵, 나는 바로 그 참혹한 현장에 서 있었다. 잿빛 폐허의 그곳은 고요한 슬픔과 무형의 고통으로 가득했다. 뉴욕은 그곳을 ‘그라운드제로(Ground Zero)’라고 명명하고, 꼬박 10년에 걸쳐 재건을 진행했다.

마이클 아라드(Michael Arad·이스라엘) & 피터 워커(Peter Walker·미국) 마이클 아라드 1969년생. 9·11 메모리얼 파크의 인공폭포 설계로 건축계 스타가 됐다. 2001년 9·11 테러 당시 실직 상태일 때 우연히 ‘부재의 반추’라는 아이디어가 떠올랐고, 잡화상에서 산 싸구려 분수로 만들어 본 모형을 토대로 설계를 완성해 이듬해 국제공모전에 당선됐다. 피터 워커 1932년생. ‘좋은 작품이란 특정 스타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좋아하고 많이 이용하는 공간’이라는 철학을 가진 미국의 조경 건축가다. 대표작은 가든스 바이 더 베이

▶쓰러진 쌍둥이 빌딩 자리를 꽉 채운 기억의 약속

그리고 마침내 9·11 메모리얼 파크가 완공됐다는 소식에 부지런히 여행 계획을 세웠다. 쌍둥이 빌딩이 건재했던 시절의 기억도, 무너져 내린 현장의 기억도 모두 생생했기에 거대 도시 한복판에 들어선 추모공원은 또 어떤 모습일지 기대감이 부풀었다. 특히 내 호기심을 자극한 건 인공폭포였다. 뉴욕에서도 복잡하기로 유명한 로어맨해튼에 초대형 폭포라니, 물소리와 대도시의 소음이 섞여 나오는 불협화음을 잘 해결했을지 몹시 궁금했다.

인공폭포는 완벽했다. 쉬지 않고 흐르는 물소리는 오히려 주변 소음을 낮췄고, 방울방울 떨어지는 물줄기는 마치 위로의 눈물인 듯 그날의 희생을 추모하고 있었다. 물은 생명과 정화, 부활을 상징한다.

폭포를 설계한 이는 신예 건축가인 마이클 아라드(Michael Arad)다. 2003년 추모공원 공모전에 출품된 물경 5201개의 작품 중 당당히 당선돼 일약 건축계의 신데렐라가 됐다. 그는 추모공원을 ‘부재의 반추(Reflecting Absence)’, 즉 채움이 아닌 비움의 철학으로 풀어냈다.

거대한 두 개의 사각형 인공폭포는 테러로 무너진 쌍둥이 빌딩이 있던 자리에 똑같은 사이즈로 건설됐다. 공중에서 보면 땅 깊숙하게 박혀 있던 두 개의 거대한 사각기둥을 무 뽑듯 쑥 뽑아낸 듯한 모양이다. 깊이 9.14m, 면적 4046㎡의 인공폭포는 북미 최대 규모다. 두 개 폭포에서 각각 분당 1만1400ℓ의 물이 쏟아져 풀 중심부의 빈 공간으로 깊숙이 빨려 들어간다.

폭포를 한참 응시하고 나면 자연스럽게 주변 난간에 빼곡하게 새겨진 이름들에 시선이 옮아간다. 북측, 남측 두 개의 인공폭포 가장자리를 둘러싸고 있는 76개의 동판에는 2001년 9·11 테러와 펜타곤 테러 등의 희생자 2983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그중에는 한국계 희생자 21명의 이름도 있다.

아라드는 폭포를 설계하는 과정에서 유족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한 것으로 유명하다. 난간에 새긴 희생자의 이름도 원래는 폭포 아래 지하에 넣을 계획이었지만 마치 무덤에 묻는 것 같다는 유족 의견에 따라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 동판에 새길 희생자들의 이름도 무작위로 배치하지 않았다. 유족 요청에 따라 ‘의미 있는 이웃들’이라는 개념으로 평소에 가깝게 지내던 사람끼리 배치하기로 했다. 이 작업에만 1년이 소요됐다.

▶일상의 공간에서 추모하며 공동체와 역사를 생각한다

9·11 메모리얼 파크는 400그루의 참나무가 숲을 이룬 공원이다. 초봄에는 화사한 연둣빛으로, 여름에는 짙은 녹음으로, 가을에는 붉은빛으로 물드는 참나무는 공원의 표정을 사시사철 바꾼다. 조경은 현대 조경의 선구자로 불리는 피터 워커(Peter Walker)가 맡았다.

이곳의 참나무는 뉴욕 주변 5개 주에서 가져왔다. 희생자들이 대부분 사고 지역 500마일 이내인 5개 주에 거주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고려한 것이다. 그런데 참나무 숲에서 유독 사람들이 찾는 나무가 있다. 9·11 테러 현장에서 살아남은 배나무다. 이 나무는 2010년 심한 폭풍우에 뿌리째 뽑히는 수난을 겪었지만 역시 살아남았다. 사람들은 이 나무를 ‘생존의 나무’로 부르며 아낀다. 공원에 건립한 9·11 메모리얼 박물관에도 ‘생존의 상징’이 전시돼 있다. 테러 당시 완전히 파괴된 쌍둥이 빌딩에서 유일하게 깨지지 않은 유리창과 마지막까지 꼿꼿하게 서 있던 철기둥이다. ‘마지막 기둥’으로 이름 지어진 이 구조물은 실제로 복구 현장에서 사람들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며 사랑받았다. 그래서일까. 희생자의 사진과 사고 당시 소방관들의 음성 기록, 심지어 테러리스트들이 공항에 들어가는 장면이 담긴 영상 기록물 등 눈을 뗄 수 없는 전시물 중에서도 ‘다시 일어남’을 상징하는 유리창과 철기둥이 가장 오랫동안 마음에 남았다.

우리는 왜 지난 아픔을 기억해야 할까? 그건 상처를 헤집고 누군가를 탓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오늘을 돌아보기 위함이다. 9·11 메모리얼 파크는 시민 누구나 아무 때고 꽃 한 송이를 들고 찾을 수 있는 곳이다. 이곳은 기억을 가둬두지 않고 이야기하는 공간이다. 사람들은 참사를 기억하고 고통을 소리 내어 이야기함으로써 아픔을 치유해나간다. 도시의 추모 건축은 역사의 사건과 공동체의 상처를 기억함으로써 시민을 위로하고 공동체를 결속시킨다. 9·11 메모리얼 파크에서 시간을 보내며 우리가 겪었던 공동체의 아픔들이 떠올랐다. 오래전 모두를 충격에 빠뜨렸던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의 자리에 서둘러 고가의 아파트를 지어버린 우리는 참사를 통해 과연 무엇을 배웠을까.

‘NO DAY SHALL ERASE YOU FROM THE MEMORY OF TIME.’

9·11 메모리얼 박물관 벽면에 있는 로마 시인 ‘베르길리우스(Virgil)’의 시 구절이다. 이 글은 지우고 싶은 과거일지라도 절대로 회피할 수는 없다는 진리를 말하고 있다. 잘못을 반복하지 않고 끊기 위한 노력은 아픔의 현장, 바로 그 자리에 버티고 서서 잘못을 기억하고 이야기하는 것으로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김종훈 한미글로벌 회장]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79호 (2022.10.12~2022.10.18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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