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은 안사도 여긴 돈 쏟는다, 내 집 아닌 내가 '사는' 집
금리 인상 등으로 부동산 거래절벽이 장기화하면서 내집 마련의 꿈을 미루는 사람이 많아졌다. 수천만원을 들여 집을 수리하는 개념의 인테리어 시장이 고전하고 있지만, 대신 임대 주택에 살며 다양한 인테리어 소품을 활용해 개성을 표현하는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반 출생)가 늘고 있다.
12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박상혁 국회의원이 2021년 6월부터 2022 8월까지 신고된 서울 전·월세 계약(72만 4161건) 자료를 제출 받아 분석한 결과 전체 전·월세 계약 건수 중 신규계약은 75%, 갱신계약은 25%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갱신계약(재계약) 18만1134건 중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한 거래는 10만269건으로 전체의 절반이 넘는 55% 수준으로 나타났다. 이는 최소 4년 이상 한 집에서 거주하는 세입자가 늘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실제로 국토교통부의 지난해 7월 조사에 따르면 전·월세 평균 거주기간은 3.5년에서 5년으로 증가했다. 전·월세로 한집에 오래 살게 되면서 임대 주택에 대한 인식도 바뀌고 있다. 내가 ‘산’ 집이 아니더라도, 내가 ‘사는’ 집에 더 애정을 쏟게 된 것이다.
이런 흐름에 집이 주거라는 기본역할을 넘어 다양한 취미와 취향이 묻어나는 공간이 되고 있다. 집이라는 공간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임대' '자가’ 등 집의 소유형태와 무관하게 자신만의 라이프스타일을 보여주는 일도 자연스러워졌다.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면서 '레이어드 집'이라는 개념도 생겨났는데, 집이 단순 주거라는 기본 역할에 일과 여가 등 새로운 기능들이 더한 공간으로의 진화하고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실제 집과 관련된 라이프스타일을 공유하는 앱 '오늘의집'의 경우 다양한 인테리어 사례나 홈캠핑, 홈가드닝, 홈카페 등 콘텐트를 선보이며 최근 3년 사이 사용자(앱다운로드수 기준)가 500만명에서 2500만명 이상으로 증가했다.
특히 커튼, 러그, 조명 같은 소품이나 가구 배치 등을 바꾸는 것만으로 집의 극적인 변화를 보여줬던 것이 MZ세대의 마음을 샀다. 실제로 '오늘의집'에 따르면 셀프인테리어 아이템으로 인기가 높은 '사이잘룩 러그'와 셀프 시공에 편리한 '타일 카페트'의 판매량이 전년대비 약 89%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채광량 조절이 쉽도록 불투명 소재와 투명 소재가 교차되는 '콤비 블라인드'의 판매량도 약 42% 늘어났다. 유튜브에서도 임대주택에서의 자취 스토리를 전하는 ‘자취남' 같은 콘텐츠가 인기를 끌고 있다.
국회입법조사처의 '청년 주거정책의 현황과 개선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청년가구의 자가 점유율은 2020년 기준 16.2%에 그치고 있다. 10명 중 8명이 주택을 임대해 거주하는 상황이다. 30대 직장인 A씨는 "예전엔 내집을 갖고 아파트 분양을 받으면 멋지게 살겠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굳이 미래를 위해 지금의 행복을 미룰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며 "외제차를 사거나 명품을 구매하지는 않더라도 거주 공간에 대한 투자는 아끼지 않는 편"이라고 말했다.
최근 반지하 월세집에 셀프인테리어를 한 대학생 B씨도 "내가 사는 공간은 나의 취향과 감성, 스타일을 보여주는 곳"이라며 "집을 구할때 부터 자유롭게 인테리어를 할 수 있는 공간을 원했고 돈과 시간 노력을 들인만큼 더 만족도가 높다"고 설명했다.
'오늘의집'에 사용자들이 공유한 스토리를 보면 군인 가족이 1년만 생활할 군관사를 다양한 소품을 사용해 스타일링 한 경우도 있고, 행복주택에 가벽을 설치하고 공간을 분리해 다양한 취향을 담아낸 이들도 있다.
LH(한국토지주택공사)에서도 ‘행복주택 집꾸미기' 영상 콘텐트를 선보이기도 했다. '오늘의집' 관계자는 "집을 ‘사는’ 것 보다 집에서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대한 관심이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흐름에 맞춰 정부에서도 '주거의 질적 향상'에 관심을 쏟고 있다. 특히 국정과제를 통해 “매년 평균 10만가구씩 공급하고, 품질 향상 및 생활SOC 결합 등을 통해 공공임대 질적 혁신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원 기자 kim.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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