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 2∼3층에도 사람이 산다

2022. 10. 12.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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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달호(작가·편의점주)


소득을 기준으로 부유할수록 높은 층, 가난할수록 낮은 층에 사는 10층짜리 건물이 있다고 하자. 영화나 드라마가 보여주는 공간은 대개 4층에서 10층 사이 세상이다. 혹은 꼭대기보다 높은 곳에 있다는 펜트하우스, 1층보다 아래에 있는 지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소설 또한 그렇다. 이유는 여럿이다. 주 독자층이 4~10층 사람들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독자들이 소외된 곳을 보고 싶을 때는 처절하게 낮은 곳을 엿보고 싶어 하지 어정쩡(?) 낮은 곳은 연민을 끌어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사람의 사고는 참 묘하다. 땅 밑 사람들을 보면서는 “사회의 모순 때문에 탈락했다”고 쉬이 변호하는 반면, 2~3층 사람들을 향해서는 “노력을 하지 않아 거기 사는 것”이라고 훈계하는 마음을 갖는 사람이 적잖다. 창작자 입장에서 아주 낮거나 높은 곳은 드라마틱한 소재가 풍부하지만 2~3층 캐릭터는 공감 가도록 만들기 어렵고 더러 지리멸렬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2~3층을 묘사할 때는 유머로 퉁치거나, 스치며 보여주거나, 마냥 따뜻하게 끌어안는 경우가 흔하다.

이기호 작가의 소설집 ‘눈감지 마라’는 그런 점에서 놀랍고 반갑다. 소설의 주인공 정용과 진만은 지방사립대 출신 청년이다. 지방사립대도 광역시 정도에 있는 사립대가 아니라 흔히 ‘시골 대학’이라 말하는, 소설 속 에피소드를 빌려 소개하자면 ‘캠퍼스 안에 멧돼지 가족이 돌아다니는’ 대학이다. 그곳을 졸업해 주인공이 하는 일, 만나는 사람들은 다채롭다. 편의점 알바, 식당 홀서빙, 고깃집 설거지, 고속도로 휴게소 판매원, 우유 판촉 사원, 택배 상하차, 아파트 경비원, 길거리 붕어빵 장사…. 우리 주위에 흔하고 매일 만나지만 영화나 드라마, 소설의 주인공은 돼본 적 없는 2~3층 사람들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때로 웃기고 때로 슬픈, 요즘 말로 ‘웃픈’ 현실을 손바닥만 한 소설을 통해 시트콤처럼 보여준다.

우리 사회에 양극화 문제가 거론된 지는 꽤 오래됐다. 그런데 소득 양극화를 걱정하는 사람은 많지만 수도권과 비수도권 격차를 양극화 측면에서 바라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거칠게 표현하자면 대한민국이라는 빌딩에서 수도권이 4~10층이라면 지방 도시는 2~3층쯤 되지 않을까. 이기호의 소설은 그런 점에서도 고맙다. 관심에서 소외된 2~3층 소득 수준 사람들을 다루고, 관심에서 소외된 2~3층 지방을 무대로 하며, 게다가 세대의 2~3층이라 할 수 있는 20대 후반 청년이 주인공이다. 2~3층이 여러 번 중첩된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았다.

내친김에 지역 격차 문제를 보자. 흔히 아파트를 딱딱하고 획일적인 공간으로만 인식하지만 사실 아파트라는 주거 양식은 꽤 친환경적이다. 아파트에 거주하는 세대가 넓은 평야에 흩어져 산다면 각자 개설할 전기, 상하수도, 폐기물 처리 시설 등을 한 건물에 집중해 낭비와 파괴를 막고 효율성을 극대화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수도권 집중이 그리 나쁠 것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아파트와 국가가 어찌 같은가. 국토의 12.6%에 인구의 50.4%가 몰려 사는 현상이 과연 정상이라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게다가 수도권과 비수도권 격차가 그러잖아도 심각한 소득 양극화 문제를 심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면 더욱 치열한 개선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은 명확하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지도 벌써 반년쯤 지났는데 이런 부분에 노력의 흔적을 보여주지 않는 것도 참 한심한 대목이다. 소득 양극화, 수도권과 비수도권 격차, 청년 실업 문제 말이다. 문학의 역할 가운데 하나가 시대의 목소리를 환기하는 일이라면 이기호의 소설 제목 그대로 우리 사회가 이런 문제에 부디 ‘눈감지 말길’ 바랄 따름이다. 2~3층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

봉달호(작가·편의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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