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갸우뚱한 '테라·루나=증권'.."논문 수준 논거 있다"는 檢 입증할까
“루나 코인이 자본시장법상 투자계약증권인지 여부 등에 대해 법리상 다툼의 여지가 있어 보인다.” 홍진표 서울남부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지난 6일 검찰이 테라폼랩스 업무총괄팀장 유모씨에 대해 사기·배임, 자본시장법 위반 등의 혐의로 청구한 구속영장을 기각하며 이 같은 이유를 밝혔다. 앞서 서울남부지검 금융·증권범죄합수단(단장 단성한)은 테라·루나 폭락 사태와 관련해 루나를 자본시장법상 투자계약증권이라고 보고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 등 피의자들에게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를 적용했는데, 아직 영장 단계이지만 법원은 이를 수용하지 않은 것이다.
검찰, “향후 재판 과정에서 입증 가능”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려면 일단 루나라는 암호화폐가 증권이라는 점부터 입증해야 한다. 법조계에선 증권성 입증을 수사의 성패를 가를 핵심 쟁점으로 꼽는다. 형사사건에서 암호화폐에 대한 증권성을 인정하는 것은 전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검찰 관계자는 “논문 수준의 논거를 준비해 놓았고, 향후 재판 과정에서는 입증이 가능하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다만 영장실질심사 과정에서 유씨 측은 “루나 코인에 대해 증권성을 인정하는 건 부당하다”고 주장했고, 법원은 이를 일단 수용했다.
검찰이 ‘증권성’을 입증하려 하는 건 자본시장법 적용을 하기 위함이다. 부정한 수단을 쓰거나 중요사항에 대해 거짓 기재를 하는 등의 행위에 대해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이득액의 3~5배 벌금을 매기도록 하는 ‘부정거래행위 등의 금지’ 등이다.
다만 ‘증권’에도 여러 종류가 있어 규제 수준은 다르다. 자본시장법 상 증권은 투자계약증권을 비롯해 채무증권, 지분증권, 수익증권, 파생결합증권, 증권예탁증권으로 분류된다. 삼성전자 주식 등 일반인들이 주로 투자하는 주식은 지분증권에 해당한다. 지분증권은 회사 등의 순자산에 대한 소유지분을 나타내는 유가증권을 의미한다. 지분증권은 투자계약증권 대비 더 많은 규제를 받는다. 예컨대 시세조종 금지, 미공개이용정보 금지 등의 규정은 지분증권에 적용되지만, 투자계약증권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한국에선 암호화폐가 투자계약증권에 해당하는지에 대해 2020년 3월의 판례가 남아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7단독(당시 재판장 이영광)은 2019년 A사가 자체 발행한 토큰 B 다수를 이더리움을 통해 매입한 원고들이 ‘A사가 발행한 B는 투자계약증권에 해당하므로 자본시장법상 증권 발행 절차를 위반했다’며 A사에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B에 대한 수익 분배는 A사가 B의 거래를 활성화하기 위해 부수적으로 제공하는 이익일 뿐 B에 내재한 구체적인 계약상 권리라거나 본질적 기능이라고 볼 수 없고 ▶B 자체 거래로 발생하는 시세차익 취득이 매수의 가장 큰 동기인 한편, 이에 관해 투자자 사이에 이해관계가 상충한다는 이유로 “투자계약증권이라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투자계약증권의 요건인 ‘공동 사업에 손익을 귀속받는 계약상의 권리’라고 보기 어렵다는 얘기다. 루나 코인과 수익 구조 면에서 차이가 있지만, 암호화폐의 증권성 여부를 따진 거의 유일한 판례라는 점에서 시사점이 없지 않다.
미국에선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암호화폐의 증권성을 인정해 발행사(리플랩스 등)를 연방증권법 위반으로 기소하는 등 관련 사례가 한국보다 앞서 축적되고 있다.
미국에서 투자계약증권의 개념은 1946년 연방대법원의 ‘SEC 대 하위(Howey)’ 판결로 정립됐다. 부동산 개발회사 하위는 플로리다 감귤농장을 투자자들에 나눠서 매각하면서 위탁관리계약을 맺은 뒤 감귤 판매 수익을 배분했다. SEC는 이를 불법 증권거래 행위로 판단하고 법원에 금지명령을 청구해 최종 승소했다. 연방대법원은 이 판례를 통해 ▶금전의 투자 ▶공동사업 ▶투자이익의 기대 ▶오로지 타인의 노력에 의할 것 등 투자계약증권에 해당하는 기준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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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도형 수사 SEC도 테라·루나 증권성 여부 살펴
중앙일보가 11일 확인한 이 소장에 따르면, 투자자들은 자신들이 ▶금전을 투자해 테라·루나를 취득했고 ▶이는 ‘테라 생태계’라는 공동사업에 투입됐으며 ▶이를 통해 안정적인 이익을 기대한 한편 ▶그러한 이익이 권 대표가 주도하는 테라폼랩스란 제삼자의 노력에 의존한다고 주장했다.
테라폼랩스는 1달러 가치로 자동 유지된다는 알고리즘 스테이블 코인 테라를 개발하고, ‘1테라=1달러’ 가치 고정을 위한 자매 코인 루나도 함께 발행했다. 그러면서 1달러 상당의 루나를 1테라와 교환할 수 있게 설계했다. 이에 따라 루나 보유자는 테라 수요 증가로 그 가치가 1달러 이상으로 오르면 테라로 교환, 테라 보유자는 그 가치가 1달러 이하로 내리면 1달러 상당의 루나로 교환하는 방법으로 차익을 거둘 수 있었다. 이밖에 테라 보유자는 테라폼랩스가 개발한 앵커프로토콜에 테라를 예치하고 약 20%의 이자를 받을 수 있었고, 루나 보유자는 테라 결제 수수료를 배당받을 수 있다고 기대했다.
투자자들은 실제 권 대표가 트위터 등을 통해 투자자들의 상호 연결성을 자주 언급하고, 테라폼랩스가 사업 성공의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고 공언한 점에 주목했다. 특히 가치 하락에 따른 뱅크런 조짐이 보이자 순수 알고리즘이 아닌 ‘루나 파운데이션 가드’(LFG)를 만들어 비트코인을 투입하는 방식을 동원해 ‘1테라=1달러’ 가치를 유지하려 했고, 이후 테라·루나 가격은 이러한 테라폼랩스의 노력에 의존하게 됐다는 점도 함께 강조했다.
권 대표를 수사 선상에 올려놓은 SEC 역시 테라·루나의 증권성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지난 6월 10일 익명의 관계자를 인용해 “SEC 법률관들이 테라를 개발한 테라폼랩스가 증권과 투자상품에 대한 규제를 위반했는지 들여다보고 있다”고 보도했다. 개리 겐슬러 SEC 위원장도 최근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암호화폐에 대한 증권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투자자 보호를 위해 증권으로 등록, 규제를 받아야 한다는 주장을 이어가고 있다.
금융법 전문가인 김정수 금융전략연구소 대표는 “차익 거래를 하든, 약속된 이자를 받든 어떠한 이익을 기대했으면 투자계약증권에 해당할 수 있다”며 “테라·루나 모두 증권성이 있다고 봐야 하고, 이에 따라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행위 혐의 적용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김정철 변호사(법무법인 우리)는 “암호화폐 자체의 증권성은 논란의 여지가 많으니 테라폼랩스가 설계한 프로토콜 구조가 기본적으로 자본시장법이 금지하는 증권업에 해당하는지를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나운채 기자 na.unchae@joongang.co.kr, 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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