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은 민폐'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면 [소셜 코리아]

김영미 2022. 10. 11.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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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 코리아] 출산·육아 걸림돌 기업문화 못 바꾸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한국의 공론장은 다이내믹합니다. 매체도 많고, 의제도 다양하며 논의가 이뤄지는 속도도 빠릅니다. 하지만 많은 논의가 대안 모색 없이 종결됩니다.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는 이런 상황을 바꿔 '대안 담론'을 주류화하고자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근거에 기반한 문제 지적과 분석 ▲문제를 다루는 현 정책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거쳐 ▲실현 가능한 정의로운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소셜 코리아는 재단법인 공공상생연대기금이 상생과 연대의 담론을 확산하고자 학계, 시민사회, 노동계를 비롯해 각계각층의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열린 플랫폼입니다. 기사에 대한 의견 또는 기고 제안은 social.corea@gmail.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기자말>

[김영미]

 우리나라는 3년째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산율을 기록하고 있다.
ⓒ 셔터스톡
국제연합(UN) 인구기금에서 발간한 '2022년 세계 인구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3년째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산율을 기록하고 있다. 2018년 합계출산율이 1.0을 밑돌더니 2021년에는 0.81까지 이르게 됐다.

저출산 예산을 수년간 천문학적으로 쏟아붓고도 왜 출산율 반등에 성공하지 못했는지 문책하는 언론의 헤드라인들을 자주 보게 된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표현도 자주 보인다. 그런데 정부의 저출산 대책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고 있는 상황이라면 그 독의 밑바닥은 누가 깼는지, 어쩌다 깨지게 됐는지부터 알아야 하지 않을까?

왜 우리 출산율이 이토록 낮은가에 대해 높은 집값, 수도권 인구집중, 교육비 부담, 일자리 경쟁, SNS 확산, MZ세대의 개인주의 성향, 소비주의, 가족 가치의 하락 같은 이유들이 꼽히고 있다. 하지만 이런 이유를 들을 때마다 박물관에 가서 모든 작고 섬세한 전시물들을 다 보고 나왔는데 한 가운데 있던 코끼리는 못 보고 돌아왔다는 얘기가 떠오른다. 저출산 대책을 세우면서 우리는 방 안에 있는 코끼리는 못 본 척 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 코끼리는 기업이다.
  
최근 일자리와 출산의 관계에 주목하는 연구들이 나오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김조은 교수는 청년들의 일자리를 노동시간을 기준으로 유형화해서 분석했다. 그 결과 정규노동시간 일자리에 있는 청년들에 비해 '과로유형' 일자리에 있는 청년들의 혼인 의사가 유의미하게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부정적 관계의 90%는 다른 무엇도 아닌 피로감, 수면부족 때문에 발생하고 있었다.

저소득층 출산율이 더 빠르게 감소

김조은 교수는 이 패턴에서 남녀 차이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남녀의 문제가 아니라 일자리의 문제라는 것이다. 의욕도 없는 과로유형 일자리의 청년들은 여성이든 남성이든 너무 피곤해서 친밀성의 관계를 만들 시간이 없고 결혼, 출산, 육아를 계획하기도 어렵다.

극단적 초과노동, 간헐적 노동시간을 요구하는 일자리들은 때로는 열정적인 스타트업 일자리의 모습으로, 미래의 커리어를 위해 시도해보는 인턴직의 모습으로, 프리랜서나 플랫폼 일자리의 모습으로 IT산업이나 문화예술산업, 사회서비스산업들의 저임금 일자리에 광범위하게 산재해 있다.

저임금 일자리에서 일하는 청년들은 혼인 의사도 낮지만 혼인해서 아이를 낳은 경우에 남녀 모두 경제적인 불이익을 경험하고 있다는 연구도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함선유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는 저임금 계층에서 출산이 남녀 공히 임금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흐름에서 최근 저학력, 저소득층의 출산율이 더 빠르게 감소하고 있는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국회입법조사처의 '저출산 관련 지표의 현황과 시사점'이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2007~2018년 저소득층의 분만건수 비중이 뚜렷하게 감소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사회계층별 합계출산율 격차에 관한 보고서'도 최근 코호트(특정한 기간에 태어나거나 결혼을 한 사람들의 집단과 같이 통계상의 인자를 공유하는 집단)에서 저학력 혹은 비전문직 여성들의 출산율이 상대적으로 더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출산율 0.81의 충격에 가려져 있었지만 더 면밀하게 주목해야 할 트렌드는 바로 저소득층 출산율이 급감하고 있는 경향성이다. 왜 이런 경향이 나타나고 있을까? 방 안에 있는 코끼리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임신은 민폐'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면 그 사람은 남성이거나 대기업, 공기업에 다니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둘째까지 낳는 건 회사를 생각하지 않는 이기적인 행동, 대체인력이 없는 상황에서 동료에게 부담 주는 육아휴직은 짧게, 남성 육아휴직은 전례가 없어서 불가, 육아휴직 다녀오면 인사고과 바닥은 감수해야, 이런 얘기들은 중소기업에 만연하다.

가족형성기에 있는 대부분의 청년들, 그 중에서도 청년여성들이 더 많이 다니고 있는 중소기업에서 일과 출산, 육아를 병행하기는 훨씬 어렵다. 특히 4년제 대학을 졸업하지 않은 청년들이 일하는 일자리의 일생활균형은 고학력 청년들의 일자리와 비교할 때 근로시간이 길거나 불규칙한 경우가 많고 교대제 근무를 감수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밑 빠진 독부터 막고 물 붓자
 
 가족형성기에 있는 대부분의 청년들, 그 중에서도 청년여성들이 더 많이 다니고 있는 중소기업에서 일과 출산, 육아를 병행하기는 훨씬 어렵다.
ⓒ 셔터스톡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 2021년 자료를 보면 초과근로시간은 저학력 여성들이 대졸 이상 여성들에 비해 1.7배 많고 저학력 남성들은 대졸 이상 남성들에 비해 2.3배 많다. 휴일에 나와서 일하는 경우도 저학력 여성과 남성들이 대졸 이상 집단에 비해 2배 이상 더 많다. 과로유형의 일자리가 많은 것이다.

이 일자리들은 정부의 일생활균형 정책들의 사각지대와 겹친다. 정부의 정책이 대부분 정규노동시간이 분명한 일자리들을 표준으로 삼고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는 매번 노동개혁의 핵심 과제로 꼽히나 대부분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경제적 격차 문제에 집중하고 있을 뿐 일생활균형 환경의 격차 문제는 의제화하지 못하고 있다.

방 안의 코끼리를 직면하자. 변화한 사회 속에서 변하지 않고 있는 우리 기업들의 일하는 방식의 문제, 장시간근로 문화, 가족돌봄의 시간을 존중하지 않는 문화, 돌봄제공자 차별을 당연시하는 문화가 출산과 육아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해법을 모색할 때가 되었다. 밑 빠진 독의 깨진 부분부터 막고 물을 부어야 되지 않겠는가.
 
 김영미 / 연세대학교 사회학과 부교수
ⓒ 김영미
 
필자 소개: 이 글을 쓴 김영미 연세대학교 사회학과 부교수는 연세대 젠더연구소장, 고등교육혁신원 혁신교육센터장을 맡고 있으며, <소셜 코리아>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관심 있는 연구 분야는 노동시장과 기업조직 내 젠더불평등, 불평등과 인구변동입니다. 그밖에 젠더관점의 사회혁신 교육에 관심이 있으며 다양성과 포용성 전문가네트워크 구성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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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에도 게재됐습니다. <소셜 코리아> 연재글과 다양한 소식을 매주 받아보시려면 뉴스레터를 신청해주세요. 구독신청 : https://socialkorea.stibee.com/subscri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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