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문영 집행위원장 "젊은 부산영화제, 흐름과 변화 적극 수용해야죠"[2022 BIFF]

이이슬 2022. 10. 11.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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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 현장
부산에서 만난 허문영 집행위원장
팬데믹 이후 3년만 전면 정상화
양조위 스타마케팅 대흥행
부산스토리마켓 신설
허문영 집행위원장/사진=BIFF

[부산=아시아경제 이이슬 기자] 이만하면 성공적이다. 팬데믹 이후 3년 만에 완전 정상화를 선언한 올해 부산국제영화제(BIFF)는 이를 곳곳에서 증명하며 종반을 향해 달리고 있다. 스타 마케팅은 적중했다. 배우 양조위(량차오웨이·60)가 멱살을 잡았다. 굿즈 오픈런 열풍, 관객과의 대화(GV) 피케팅 등 높은 관심을 받으며 세대를 초월한 인기를 입증했다. 거리두기 없이 극장 좌석을 모두 활용하고, 아시아 영화 지원 프로그램과 포럼 비프 재개, 부산스토리마켓 확장 출범 등 전통적인 영화제로서 기능도 충실히 했다. 지난해 신설된 '동네방네 비프'는 부산 전역에서 지역 축제로 확대됐다.

변화에 발맞춘 시도는 올해 안착했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 콘텐츠를 상영하는 '온 스크린' 섹션을 본격적인 프로그램으로 선보였다. 각 OTT 사는 부산에서 앞다퉈 이벤트·파티를 열고 관심을 끌어올리기 바빴다. 필름 페스티벌과 OTT가 공존하는 이례적 풍경이었다. 아시아 최대 영화제로서 자부심을 회복한 27번째 BIFF는 이제 내년을 바라본다.

부산에서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허문영 부산국제영화제(이하 '부국제') 집행위원장은 최근 아시아경제와 인터뷰에서 "아시아 영화를 발굴하고 영화인과 연대하는 아시아 영화 중심의 전통적 가치를 지키면서 21세기 변화를 적극적인 방식으로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올해 필름 페스티벌로서 '부국제'가 지향하는 바가 읽힙니다. 온라인을 지우고 오프라인, 공간이 갖는 의미에 무게를 둔 반면, OTT를 적극적으로 품었습니다. 지난해 신설한 온 스크린 섹션의 작품편수를 늘렸죠. '시리즈를 영화로 볼 수 있을까' '영화란 무엇인가'는 3년 만에 재개되는 비프 포럼의 주제이기도 한데요.

선택은 둘 중 하나입니다. 칸 영화제처럼 영화의 전통적 가치와 범주를 고집하느냐, 논란과 분열증을 무릅쓰고 새로운 흐름, 변화, 경계의 교란을 적극적으로 수용할 것인가. 부국제처럼 비경쟁, 젊은 영화제의 경우 후자를 선택해야죠. 발생할 수 있는 논란에 적극적으로 가담하고 촉발제가 되는 것이 우리의 역할 아닐까요.

'온 스크린' 섹션에는 시리즈물을 영화의 한 분야로 간주할 수 있다는 선언이 담겨 있습니다. 과연 그 선언이 정당한가. 그걸 검증하는 작업을 포럼에서 하겠습니다. 물론 결론이 나지는 않을 겁니다. 여러 의견이 제출되겠지만, 결론이 나거나 동의가 되지 않을 거고요. 그렇지만 문제를 제기했다는 자체가 중요하고, 앞으로도 계속해 나갈 생각입니다.

=올해 부국제에서 티빙, 넷플릭스, 웨이브, 디즈니 등 OTT 사들이 적극적으로 비즈니스 행사를 개최했습니다. 처음 마주하는 풍경이었는데요, 이 역시 거스를 수 없는 변화의 흐름으로 보시는지요.

영화제마다 추구하는 가치나 역할이 조금씩 다를 겁니다. 부국제는 크게 보면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영화제 초창기부터 저희가 가장 중시해왔던 아시아 영화 중심이라는 가치에서 벗어나지 않는 거죠. 아시아 영화를 발굴하고 영화인들과 연대한다는 것. 그건 변화 속에서 변하지 않을 전통적 가치이고요. 그 외의 모든 것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개방적이지 않으면 21세기 변화에 적응하기 힘들지 않을까요. 자신만의 가치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영화제가 이 문제를 받아들이는 방식도 다를 수 있겠습니다.

=체험과 축제라는 키워드를 빼놓을 수 없겠습니다. 지역 축제로의 확장과 남포동에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는 점도 눈에 띄는데, 지향하는 바가 있으신지요.

최고의 영화들과 영화인들을 만나는 장으로서의 영화제 개념을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한편으로 창작자와 감상자, 생산자와 수용자의 경계를 끊임없이 교란하고 허물고 뒤섞는 새로운 개념의 영화 축제를 향해 나아갈 겁니다. 분열적인 두 요소를 함께 추구하는 거죠. 고도의 예술성을 지닌 소수의 영화를 경배하는 장이 펼쳐지고 또 다른 한편에서는 모든 사람이 영화를 만들고 떠들고 또 감상하는 '난장'이 펼쳐지죠. 이 엄숙한 경배와 왁자지껄한 난장이 부국제에서 동시에 일어나길 소망합니다. 걸맞은 프로그램이 지난해부터 시범사업으로 시행됐고, '동네방네 비프' '커뮤니티 비프' 프로그램이 포함됐습니다. 지역민 누구나 영화를 만들고 마지막 날에 그 영화를 함께 보면서 왁자지껄하고 소란스러운 대화를 주고받게 됩니다. 이 또한 21세기 영화의 풍경이자, 말씀드린 난장의 한 부분이 될 것입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위원장께서 양조위와 함께 무대에서 핸드프린팅을 하시는 장면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칸에 톰 크루즈가 있다면, 부국제에는 양조위가 있네요. 한정판 '양조위 굿즈 세트'를 구하지 못한 관객들의 원성도 자자한데요. 관심을 예상하셨습니까.

10대 관객의 호응이 어마어마합니다. 예상치 못한 일방적인 관심에 저희도 놀라고 있습니다. 오픈토크 현장에 5천여명이 모인 것도 그렇지만, 양조위 굿즈 세트는 700세트를 준비하면 충분할 거라고 봤는데, 어림없었습니다. 오전 10시에 굿즈샵이 문을 여는데 8시부터 줄을 서서 40~50미터 늘어설 정도로 관심을 보여주셔서 당황스럽기도 하고, 놀랍고 고맙습니다.

=양조위를 향한 젊은 10~20대 관객들의 엄청난 호응을 취재진도 현장에서 체감했습니다. 예상을 뛰어넘는 인기인데요. 양조위가 왜 1020 세대에 이토록 인기를 얻는다고 보시는지요.

영화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2021)에서 주인공보다 악역으로 나온 양조위의 캐릭터가 돋보였던 건 사실이죠. 1020 세대가 좋아하는 수퍼히어로 영화에서 매력적인 캐릭터로 등장했다는 점이 영향을 준 거 같고요. 20대 씨네필 관객은 최근 재개봉한 리마스터링 버전 '2046'(2004)·'중경삼림'(1995) 등을 보고 스며들지 않았나. 20대가 보여준 열광은 할리우드 어떤 배우 못지않을 정도였습니다. 널리 알려진 순애보도 양조위에 대한 뜨거운 애호의 또 다른 요인이 아니었을까 짐작해봅니다. 이 정도로 모든 걸 다 갖추고 이룬 배우가 있을까요.

=양조위가 참여한 관객과의 대화(GV) 암표가 50만원을 웃돌았는데, 예상하셨나요. 그를 아시아영화인상 수상자로 선정한 이유도 궁금합니다.

아이돌도 아니고 암표까지 등장하리라고는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양조위에게 아시아영화인상을 수여할 이유는 차고 넘치죠. 연기의 폭과 깊이가 일정 수준 도달한 동시대 배우는 아시아뿐 아니라 전 세계를 통틀어서 희귀하지 않을까요. 영화사에 길이 남을 걸작부터 마블 영화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장르·분야 영화에 등장했고 거의 모든 영화마다 최상급의 연기력과 캐릭터 소화력을 보여줬죠. 그런 배우한테 상을 안 준다는 게 오히려 이상하죠. 선정 이유는 너무나 극명하고 이견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 열광적인 인기는 뜻밖입니다.

=지난 7일 영화의전당 야외무대에서 양조위와 핸드프린팅을 함께 하셨는데요, 다정하게 눈빛을 나누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곁에서 지켜보신 양조위는 어땠나요.

프로그래머를 하던 2004년에 양조위를 처음 만났고 18년 만에 다시 봤죠. 그 사이 환갑이 됐는데, 사람이 하나도 안 변했더라고요. 수줍어하고 겸손한 태도, 추상적이지만 사람한테 풍기는 맑은 기운이 그대로라서 놀랍고 반가웠습니다. 그분의 맑은 기운과 온화함이 영화를 보는 관객에게도 전해지지 않았을까요. 그것이 배우에게 그토록 뜨거운 호응을 보낸 또 다른 이유가 아닐까요.

=지난 5월 보수적인 칸 영화제도 그랬고요. 스타 마케팅은 오래전부터 영화제에서 중요한 시대가 됐습니다. 올해 부국제에서는 양조위를 비롯해 한지민·강동원·이영애·하정우 등 많은 스타가 관객들과 만납니다. 고민을 하셨을 텐데, 선정 기준이 궁금합니다.

인기를 우선적인 기준으로 삼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좋은 영화에 출연해서 뛰어난 연기를 보여준 연기자를 모시려고 우선 노력을 하는 편이다. 관객 동원으로 보면 훨씬 뛰어난 배우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 분들도 당연히 존중하지만, 훌륭한 연기로 관객과 만나는 게 연기자인지가 가장 중요하죠. 일정 수준 이상의 성취를 보여준 분을 우선 모시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아시아콘텐츠&필름마켓(ACFM)에서 부산스토리마켓이 신설돼 열리고 있습니다. IP(지식재산권)가 아닌 '스토리'로 이름을 붙인 이유가 있을까요. 어떤 기능을 해주길 바라시는지요.

부산스토리마켓은 이전까지 마켓에서 진행되던 E-IP 마켓을 확대한 마켓입니다. E-IP라는 전문적 용어를 스토리라는 보편적 용어로 전환하고, 범위도 확대할 필요가 있겠다고 판단했습니다. E-IP 마켓에서 확대 전환한 이유는 스토리라는 개념이 주는 직관적인 호소력에 첫 번째 이유가 있고. 두 번째는 이제 모든 사람이 스토리를 만드는 시대라는 점이죠. 하다못해 브이로그를 찍는 사람들도 스토리를 만들어냅니다. 스토리는 도처에 널려있죠. 영화는 더는 소수의 예술적 재능과 장비를 갖춘 엘리트의 전유물이 아니죠. 도처에 널려있는 이야기가 산재한 장비들에 의해 태어나고 있습니다. 올해 서울국제도서전과 함께 개최하고 있습니다. 특히 부산 지역의 스토리텔러들의 대대적인 참여를 독려하는 장으로 마련했습니다.

=폐막까지 집행위원장으로서 목표가 있다면요.

영화제가 시작되면 '무사고 운전'이 가장 큰 목표죠. 동시다발적으로 많은 사람이 참여하는 이벤트이기에 크고 작은 사고는 일어납니다. 최소화되길 바라는 마음이죠. 만일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빨리 수습해야죠. 뻔한 이야기 같지만 그것 말고는 아무 생각이 안 날 정도로 긴장 상태로 보내고 있습니다.

=개막을 앞두고 발생한 예매 오류 관련해서는 아쉽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티켓 시스템 운영사의 설정 오류로 예매권 사용이 안 됐는데요, 아쉽지는 않으셨나요.

아쉬운 정도가 아니라 무너져내리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게 과연 수습될까. 대행사의 잘못이지만 관리해서 끌어나가는 책임자로서 통감하고, 사고 수습이 가능할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예매권을 소지한 5000~6000여명의 관객은 그냥 관객이 아니라 부국제를 가장 지지하고 열렬히 사랑하는 분들인데, 38분 동안 시스템 오류가 꼼짝 못 하게 된 거죠. 3분 안에 승부를 보는 분들의 손발을 묶어둔 것이기에 보완이 가능할까 싶을 만큼 충격이었습니다. 할 수 있는 건 다 해야 한다는 생각이었고, 모든 직원이 이틀 밤을 새우면서 보완하기 위한 기술적인 조정 작업을 해나갔습니다. 보완책을 만들었지만 100% 해소되지 않은 분노가 있을 것이라고 보고, 두고두고 갚아 나갈 부채라고 생각합니다.

=전면 정상화 개최에는 성공했다, 이렇게 볼 수 있는데요. 올해 많은 생각을 하셨겠습니다. 내년 영화제에서는 보완점 또는 아이디어가 있을까요.

장기적인 발전계획을 가지고는 있는데 크게 혁신하는 방식으로 가지는 않겠죠. 어느 정도 틀을 바꾸고 나면 2~3년 정도 안정화 단계로 이끄는 기간이 있고, 큰 변화를 만들어서 안정화하는 계단식으로 가지 않을까요. 지난해 '동네방네 비프'나 '온 스크린' 섹션에서 모험적인 시도를 했고, 올해와 이듬해는 안정화 단계라고 생각합니다. 내후년에는 또 한 번 다른 카드를 준비하는 해가 되지 않을까요.

올해 많은 관객이 오실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로 열렬한 호응이 이어질 거라고 짐작 못 했습니다.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해외 게스트분을 더 많이 모셔서 관객과 만나고 이야기를 듣는 자리를 마련해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올해 몇 년간 사용하지 않았던 해운대 바닷가에 야외스크린을 세워서 영화 상영과 각종 이벤트를 진행했습니다. 내년에 부산에 오신 분들이 '해운대 바닷가에서도 부국제가 크게 펼쳐지고 있구나' 라고 느끼도록 한다면 부산시에도 좋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내년 비전에 대해서는 폐막 후 차차 고민하겠습니다.

부산=이이슬 기자

이이슬 기자 ssmoly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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