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개혁' 윤 정부, 그래도 '마트의무휴업' 확대해야 할 이유
[최민]
▲ '윤석열정부 규탄 회견’이 지난 8월 4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앞에서 서비스연맹 유통분과 소속 마트노동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
ⓒ 권우성 |
이미 10여년 간 유지돼 온 '대형마트 영업시간 제한과 의무휴업일'이 윤석열 정부에서 뜨거운 주제가 되었다. 후보 때부터 복합쇼핑몰 건설, 오프라인 유통 기업 규제 완화 등 유통산업 규제완화를 암시하던 윤석열 정부의 정책 방향이 대형마트 영업시간 규제완화 시도로 명백하게 드러났다. 정권 초기인 7월부터 정부는 이 의제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자 했다. 대통령실 국민제안심사위원회 명의의 '국민제안 TOP 10 투표'라는 이벤트를 개최해 7월 21일부터 31일까지 온라인으로 투표를 받고, 이 중 1~3위 정책은 현실화시키겠다고 했는데, 여기서 대형마트 영업 규제 완화가 1위를 차지했다.
결국 이 투표는 중복 투표와 부실 관리 등의 이유로 정책에 직접 반영되지 않게 되었다. 한 편의 희극 같은 투표가 무산되자 이번에는 8월부터 시작된 국무총리 주재의 규제심판회의에서 이를 다루겠다고 했다. 마트산업노동조합 및 중소상인을 비롯한 시민사회에서 강력하게 항의하자, 8월 4일 열린 제1차 규제심판회의 이후 관련 논의는 중단된 상태다.
대형마트 영업시간 제한의 역사
대형마트 영업시간 제한은 2012년 본격화되었다. 국내 대형마트는 보통 1993년 이마트 창동점을 시발점으로 보는데, 2000년대를 지나면서 경쟁이 치열해졌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대형마트들은 연중무휴, 24시간 영업으로 공격적인 매출 증대에 나섰다. 이 때문에 중소유통업, 소상공인의 불만이 높아지고 재래시장 상권이 침해된다는 여론이 비등하자 일부 지방자치단체들이 대형 마트의 영업시간 제한 및 강제휴무를 조례로 만들게 되었다. 이에 대한 여론이 우호적이자 2012년 1월 유통산업발전법에 12조2 '대규모점포등에 대한 영업시간의 제한 등' 조항이 신설되었다.
당시 법 개정 이유로 '건전한 유통질서 확립, 근로자의 건강권 및 대규모점포 등과 중소유통업의 상생발전 등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대규모점포 중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것과 준대규모점포에 대하여 지방자치단체의 조례가 정하는 바에 따라 오전 0시부터 오전 8시까지의 범위에서 영업시간 제한을 명하거나 매월 1일 이상 2일 이내의 범위에서 의무휴업을 명할 수 있도록 하고, 이를 위반한 자에게는 3천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 하려는 것이라고 들고 있다. 개정 목적으로 중소유통업을 보호하는 것과 함께 노동자의 건강권이 명시된 것이다.
실제로 많은 마트 노동자들이 마트 전체가 쉬는 날인 의무휴업일을 온전한 휴일로 생각하고 있다. 1~2주마다 새로 고지되는 시간표와 별개로 고정적인 휴일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노동 이외의 생활 시간을 계획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날이다. 마트 전체가 쉬는 날이기 때문에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 모임이든 만남이든 생각할 수 있는 유일한 날이기도 하다.
이후 유통산업발전법 12조의2는, 영업시간 제한 가능 범위가 0시부터 10시까지로 확장되고 지자체장이 매월 이틀을 의무휴업일로 지정할 수 있도록 해 규제 범위가 확대되었으며, 대신 농수산물 매출액 비중이 55% 이상인 대규모점포 등은 제외할 수 있다는 조항이 추가되기도 하면서 지금까지 대형마트 영업 시간 규제의 뼈대를 유지해 왔다.
이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대형마트들이 지자체가 영업시간과 의무휴업일을 규제하는 것이 재량권 남용이 아니냐는 행정소송을 제기해 대법원까지 가서 재량권 남용이 아니라는 판결을 받기도 했다. 대형마트들이 함께 "대형마트 영업시간을 제한할 수 있도록 한 유통산업발전법 제12조의2 등은 직업수행의 자유를 침해해 위헌"이라며 낸 헌법소원(2016헌바77 등)에서 2018년 합헌 결정을 받기도 했다.
헌법재판소는 판결문에서 "영업시간 제한은 오전 0시부터 오전 10시까지 범위 내에서 영업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으로 심야시간에는 24시간 운영되는 편의점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다른 유통업체들도 영업을 하지 않으므로, 그로서 달성하려는 목적이 중소유통업과의 상생보다는 상대적으로 근로자의 건강권에 더 주안점"이 있고, "의무휴업일 지정은 (중략) 근로자의 건강권을 보장해 주는 목적 외에도 (중략) 중소유통업과의 상생을 도모"하는 것으로 보아 노동자의 건강권을 중요한 판단의 근거로 보았다.
결론적으로 헌법재판소는 "근로자의 건강권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의 기초가 되고 국가의 보호의무가 인정되는 기본권"이기 때문에, 이 조항이 "헌법에 규정된 경제영역에서의 국가목표 등을 구체화한 공익으로서 그 정당성이 인정된다"고 판단하였다1).
▲ 9월 23일, 유통업 의무휴업 폐지가 아닌 확대 필요성을 이야기하는 토론회가 열렸다. |
ⓒ 서비스연맹 |
올해 윤석열 정부가 대형마트 영업시간 규제 완화를 들고 나왔을 때 논의가 주로 '소상공인 보호에 효과가 있느냐'를 놓고 벌어졌지만, 대형마트 영업시간 규제가 확실한 효과를 내는 영역은 노동자 건강이다.
2022년 9월 23일 열린 '윤석열 정부의 마트 의무휴업 폐지 시도 문제점 및 대안 토론회'에서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이혜은 회원은 휴일 근무와 관련된 다양한 노동자 건강 연구를 소개했다. 유럽 31개국 노동자 2만 3천여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 따르면, 월 1회 이상 일요일 근무를 할 경우 일요일 근무를 하지 않는 경우에 비해 1개 이상 건강문제가 있을 위험이 17% 증가했고, 일-생활 균형이 저하될 위험 역시 15% 증가했다. 작업 관련 사고 경험 위험은 34%나 증가했다.
일본 11개 도시 4천여명의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휴일 근무가 월 5일 이상인 여성에서 휴일근무를 하지 않는 여성에 비해 우울증상이 33.3배나 높았다. 국내에서도 취업자 근로환경조사 자료를 이용한 연구에서, 주말 노동을 하는 경우는 주말 노동을 하지 않는 노동자에 비해 우울증상 위험이 높아지며 주말노동 일수가 늘어날수록 위험이 더 높아지는 것이 확인되기도 했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가 올해 마트산업노조와 함께 실시하고 있는 설문조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이 조사는 서울과 경기 지역 마트 노동자 300여명을 대상으로 진행되었다. 이 연구에서 지자체에 따라 의무휴업일이 일요일인 지역이 있고, 평일인 곳이 있고, 이에 따라 일요일 근무 횟수에 차이가 생긴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일요일 근무가 월 2회 초과한다고 응답한 경우 우울증상이 의심되는 경우가 34.8%나 됐다. 이는 일요일 근무가 월 2회 이하인 조합원에서 우울증상 의심자가 24.0%였던 것에 비해 훨씬 높은 비율이다.
주말 노동이 이렇게 노동자 건강, 특히 정신건강에 나쁜 영향을 미치는 이유로 우선 높은 노동강도를 들 수 있다. 대형마트의 경우 주말 노동은 평일보다 노동강도가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높은 노동강도는 피로와 수면 문제, 근골격계 증상 등 다양한 건강 문제와 관련된다.
주말 노동은 일-삶 균형에도 부정적인 효과를 지닌다. 사회 전반은 토요일과 일요일에 휴식과 재충전, 여가의 시간을 갖는데 주말 노동을 하는 경우 가족과 친구 등 관계형성에 중요한 사람들과 이런 시간을 갖기 어렵게 한다2). 이런 부담은 특히 가족관계나 사회관계에서 유대감과 친밀함을 관리할 것으로 기대되는 여성에서 더 높을 수 있다. 마트산업 노동자들이 이번 의무휴업 폐지 시도에 맞서 '가족과 함께 하는 일요일'을 주요 구호로 내건 것도 이런 사정을 반영하는 것이다.
윤 정부가 좋아하는 '글로벌 스탠다드'에도... 일요일 휴무가 '대세'
정부가 노동시간 관련 규제를 '개혁'하겠다며 '글로벌 스탠다드'를 얘기했지만, 휴일근무와 관련한 '글로벌 스탠다드'는 일요일 휴무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지난 20년 사이 영업시간 제한을 규제한 법률을 완화하려는 경향에도 불구하고, 유럽연합 주요 국가들은 소매 상점 개점 시간을 법률로 규제하고 있으며, 대부분 일요일과 공휴일 휴점을 전제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독일은 연방의 영업시간제한법과 각 주의 영업시간에 관한 법률에 따라 상점들의 영업시간을 규제하고 있는데,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6시에서 20시까지 영업가능하고, 일요일과 공휴일에 휴점해야 한다. 프랑스에서는 주중에는 영업 시간 제한이 없지만 모든 소매점의 일요일 영업은 '노동자의 휴식권 보장'을 이유로 규제되고 있다3). 현재 대형마트로만 제한되고 있는 의무휴업제도를 오히려 서비스산업 전반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과도 일맥상통한다.
마트 뿐 아니라, 서비스업 특히 대기업의 유통판매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 누구나 주말 근무의 부정적 영향을 줄이고 일-삶 균형을 찾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마트 의무휴업 폐지 시도가 시민의 여론으로 잦아든 지금 오히려 의무휴업제도를 온라인을 포함한 유통산업 전반으로 확대하기 위한 다양한 고민과 시도가 필요하다. 필수적이지 않은 노동시간을 줄이고 돌봄과 여가에 더 많은 시간을 쓰는 새로운 시간표를 그려나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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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최민 님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입니다. 이 글은 한노보연 월간지 '일터' 10월호에도 실립니다. *참고자료 및 행사 1) 유통산업발전법 제12조의 2 위헌소원 판결문, 2018. 6. 28. 2016헌바77·78·79(병합) 2) 이혜은, 대형마트 일요일 의무휴업과 노동자 건강, 윤석열 정부의 마트 의무휴업 폐지 시도 문제점 및 대안 토론회, 2022.9.23 3) 김종진, 대형마트 정기의무휴업제도 한계와 과제 검토, 윤석열 정부의 마트 의무휴업 폐지 시도 문제점 및 대안 토론회, 2022.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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