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 이대호와 낭만야구

정승훈 2022. 10. 11. 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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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호의 은퇴경기가 있었던 지난 8일 저녁부터 야구팬들 사이에선 '낭만야구'란 단어가 회자됐다.

정규리그 경기에서 한국 프로야구 사상 최고 타자 중 한 명인 이대호가 마운드에 서고, 현시점 리그 최고 마무리 투수인 고우석이 타석에서 배트를 휘두르는 장면.

야구팬에겐 더할 나위 없이 낭만적인 순간이었다.

낭만야구로 마지막을 장식했으나 이대호가 맞닥뜨렸던 야구는 낭만적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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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훈 디지털뉴스센터장


이대호의 은퇴경기가 있었던 지난 8일 저녁부터 야구팬들 사이에선 ‘낭만야구’란 단어가 회자됐다. 그럴 만도 했다. 정규리그 경기에서 한국 프로야구 사상 최고 타자 중 한 명인 이대호가 마운드에 서고, 현시점 리그 최고 마무리 투수인 고우석이 타석에서 배트를 휘두르는 장면. 야구팬에겐 더할 나위 없이 낭만적인 순간이었다.

낭만이라는 어휘의 다소 비현실적이고 가식적인 느낌을 지우게 해준 것은 두 선수가 승부에 몰입했기 때문이다. 상황은 낭만적이었지만, 둘은 진심이었다. 1구 스트라이크를 흘려보낸 고우석은 2구에 배트를 휘둘러 파울을 만들었다. 삼진을 잡고 싶었던 투수는 3구를 바깥쪽 유인구로 던졌지만 타자는 속지 않았다. 감독이 그냥 서 있다 들어오라고 했음에도 고우석은 네 번째 공에도 배트를 휘둘렀다. 타구는 빠르게 투수 쪽으로 날아갔고 이대호는 날렵하게 몸을 빙글 돌리며 공을 잡아냈다. 중전안타가 될 수 있었던 강한 타구였다.

둘의 낭만야구 시작은 지난 7월 16일 올스타전이었다. 드림팀 4번타자로 나선 이대호는 팀이 3대 6으로 뒤지고 있던 연장 10회말 1사 1, 2루에서 타석에 들어섰다. 나눔팀 마운드에는 마무리투수 고우석이 있었다. 드림팀 팬들은 동점 홈런을 기대했으나 현실은 달랐다. 1구 155㎞ 속구에 헛스윙. 2구 154㎞ 속구에 파울. 3구 156㎞ 속구에 헛스윙 삼진 아웃. 이대호의 고별 올스타전 마지막 타석은 3구 삼진이었다. 진짜 낭만야구는 그때 시작됐다. 이대호는 타석에서 더그아웃으로 들어가며 고우석에게 왼손 엄지를 들어 보였다. 그 타석을 이벤트 경기라고 생각했다면 웃음을 지었을지도 모르지만 이대호가 엄지를 들어 보일 때 웃음기는 없었다. 팀이 찬스를 맞은 상황에서 타석에서 최선을 다했으나 지고 말았다는, 분함과 아쉬움이 섞인 얼굴이었다. 후배 고우석은 자신에게 엄지를 들어 보인 이대호에게 모자를 벗어 예의를 표했다. 떠나가는 ‘조선의 4번 타자’에 대한 환송으로 이보다 더 멋진 모습은 만들기 어려웠을 것이다.

은퇴경기에 투수로 나선 이대호와 맞선 타자 고우석의 모습은 짜여진 각본이었다. 하지만 이들의 진심 어린 승부는 야구가 프로그래밍된 컴퓨터 게임이 아니라 사람이 하는 스포츠임을 보여준 장면이기도 했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한 후 승부가 가려진 뒤엔 축하와 배려로 서로를 토닥이는 모습, 진정한 스포츠의 낭만이었다.

낭만야구로 마지막을 장식했으나 이대호가 맞닥뜨렸던 야구는 낭만적이지 않았다. 그의 어린 시절은 불우했고, 주변의 도움이 없었다면 야구를 계속할 수 없었을 것이다. 굴곡진 그의 성공 스토리에는 그저 낭만이라고 포장할 수 없는 아픔이 배어 있었다. 국내 리그를 평정한 뒤 일본과 미국을 거쳐 다시 돌아와 최고의 타자로 은퇴했지만 손가락에 KBO 리그 우승 반지 하나 없다는 것도 낭만과는 거리가 멀다. 미디어 환경도 마찬가지였다. 과거의 야구 스타들은 잘했을 때 멋진 모습으로만 TV 스포츠뉴스에 등장했지만 전 경기 생중계가 보편화될 때 스타가 된 그는 칭찬보다 욕을 더 많이 들었다. 팬들은 그가 결정적일 때 홈런과 적시타를 친 순간만큼이나 병살타를 치거나 삼진을 먹는 순간도 많았음을 지켜봤다. 그는 엄청난 숫자로 기억되는 스타가 아닌, 팬들에게 실패가 잦은 동네 형이나 아우 같은 느낌을 주는 스타였다.

한국 야구의 히어로였던 롯데 11번이 말년에 트레이드된 후 쓸쓸히 경기장 밖으로 사라졌던 모습을 기억하는 원년 팬에게 롯데 10번의 마지막 경기는 퍽 든든한 위안이 됐다. 낭만적이지 못한 너 덕분에 많이 울고 웃을 수 있어 고마웠다. 굿바이, 빅보이.

정승훈 디지털뉴스센터장 shj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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