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용섭의 한반도평화워치] 지도층간 암묵적 합의 부재가 탈원전 허구 키웠다

2022. 10. 11.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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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정보 가득한 탈원전 논리


한용섭 경남대 초빙교수, 전 한국핵정책학회 회장
“진실이 외출을 준비하는 동안, 가짜 정보는 지구의 반 바퀴를 돌고 있다.”

인터넷과 SNS가 소통 수단의 대세인 지금, 가짜 정보·지식이 바른 정보·지식을 제치고 만연해 있는 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한 말이다. 그래서 지식인과 정보 생산자뿐만 아니라 정부의 정책 결정자들은 올바른 정보·지식이 국민과 독자층에 더 빨리 도달하도록 할 책임이 있다.

「 미국 지도층은 ‘미국이 세계 GDP의 25% 이상 차지’에 암묵적 합의
한국은 집권당 따라 국가 목표 다르고 때로는 목표 있는지도 불분명
원전 관련해 한·미 협정 개정해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기술 확보하고
올바른 원전 지식 확산 위해 관련 사회과학 연구단체의 지원 늘려야

지난 5년간 우리 사회는 원자력에 관한 가짜 정보·지식이 가득한 탈원전 운동의 논리에 시달려 왔다. 첫째, 원자력 발전 규모 세계 1위인 미국, 세계 2위인 옛 소련(러시아), 세계 4위인 일본에서 원전 사고가 발생했으므로 세계 5위인 한국에서 반드시 대형 사고가 날 수 있기 때문에 탈원전을 해야 한다는 게 탈핵 운동의 논리다. 이들은 세계 3위인 프랑스에는 왜 사고가 없고, 한국 원전은 러시아와 일본과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둘째, “본 영화는 사실과 다른 허구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자막에도 불구하고, 경주에서 일어난 지진으로 원자력발전소가 폭파된다는 내용의 영화 ‘판도라’가 1000만 관객을 돌파하면서 원전 폭발 사고가 마치 현실로 닥칠 것인양 생각하게 하였다.

셋째, 문재인 정부는 고리1호기 원전 영구 정지 기념식에서 “수명이 다한 원전을 연장하는 것은 선령을 연장한 세월호와 같다”고 연설했다. 선진 원자력 국가에서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으로 원전 수명 연장을 하고 있음에도 우리 원자력발전소를 비리와 불법으로 점철된 세월호와 동격으로 치부함으로써 탈원전을 부추겼다. 넷째, 원전은 모두 퇴진시키고 그 에너지의 공백은 태양광과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로 무조건 대체한다는 것이었다. 원전이 탄소중립 에너지라는 유럽연합(EU)의 발표에도 불구하고 이를 시정하지 않았다.

지도층 불신이 미래지향 국가 건설 어렵게해

한반도평화워치

이 네 가지 허위 정보가 복합적 상승 작용을 일으켜 탈원전 정책이 일사천리로 추진되었고, 한국을 세계 5위 원자력 강국에서 점차 퇴진시켜야 한다는 논리를 폈다. 비과학과 선동 논리가 합리적 과학기술의 진보에 기반을 둔 원자력 발전을 가로막았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난 것일까? 이런 현상의 원인을 찾아 치유하지 않고서는 탈원전을 친원전 정책으로 단순히 바꾼다고 해서 근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이런 현상의 원인은 3가지로 규정될 수 있다. 첫째, 우리나라는 정계·경제계·군부 지도자들 간에 국가를 어느 단계까지 발전시켜 갈 것인가에 대한 암묵적 합의(컨센서스)가 부재하다. 그룹별로 서로 불신하고 있기 때문에 활발한 소통을 통해 이런 합의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미래 지향적인 국가 건설이 불가능하다.

필자는 1990년 미국 싱크탱크 랜드연구소에서 진행한 ‘21세기 미국의 태평양 전략’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한 경험이 있다. 그때 미국 측으로부터 들은 말이 인상적이었다. 미국은 20~30년 후의 국가안보전략을 만들 때 정계·경제계·군부 지도자들 간에 “미국은 경제력에 있어서 세계 GDP의 25% 이상, 군사력은 세계 1위를 차지해야 한다”는 암묵적인 합의가 있다는 것이었다. 이 목표를 유지하고 달성하기 위해 정계·경제계·군부가 함께 노력한다고 한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경제력 세계 10위권 유지 외에 지도층 간에 어떤 합의가 있는가? 집권 정당에 따라 국가 목표가 다르고, 심지어 국가 목표가 있는지도 불분명하다. 사회 지도층 간에 국가 목표에 대한 합의를 끌어낼 수 있도록 서로 소통하고 노력하지 않으면 국가의 장래는 늘 불확실하고 위험하다.

경쟁력 있는 원전 폐기, 전략 부재의 증거

둘째, 국가 발전 전략 수립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잘하는 것을 더 잘하게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들의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국제사회에서 우리가 다른 국가보다 더 잘해 오던 것을 더 못하게 만드는 것은 전략 부재의 증거다. 우리가 한국형 차세대 원전 모델 APR1400을 자체적으로 개발해 수출까지 해 세계 5위의 원자력 대국이 되었으면, 이것은 정권을 초월하여 지속시켜 나가야 한다.

1997년 김영삼 정부가 수립한 원자력 진흥 종합계획에서 2010년까지 200억 달러 원전 수출을 목표로 세웠다. 2009년 이명박 정부에서 당초 목표보다 1년 앞서 아랍에미리트(UAE)에 200억 달러 원전 수출을 달성한 것은 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 정부로 이어지는 지속적인 원전 육성 정책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지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특수로 K방산이 폴란드에 대규모 수출을 하고 있다. 만약 문재인 정부에서 탈원전을 하지 않고, 원전 건설과 수출 노력을 계속 지원했었다면 대러시아 경제 제재 상황 속에서 러시아와의 원전 수주 계약을 취소하고 있는 체코·헝가리 등에 보다 신속하게 원전을 수출할 수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잘하고 있는 것을 더 잘하게 하는 것이 국가 발전 전략의 가장 기본사항임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한·미 원자력 협상, 장관급으로 격상해야

셋째, 정부의 역할이다. 공무원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고, 산업통상자원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비과학적 운동 논리와 허위 정보로부터 과학적 진실을 보호하고, 법치주의와 공정한 게임 규칙을 확립함으로써 국가의 과학기술 발전을 도모해야 할 책임이 있다. 그런데 정치권의 논리를 무차별하게 추종하여, 경제성 평가를 무시하고 원전을 조기에 폐쇄한다면 국민과 과학계로부터 어떻게 지속적인 신뢰를 받을 수가 있겠는가?

탈원전 운동가들은 주로 대학에서 문과 공부를 한 사람들이고, 핵공학기술자들은 이과 공부를 한 사람들이다. 원래부터 문과와 이과 간에 ‘두 개의 문화’가 있기는 하지만, 선진국일수록 문·이과 간에 소통하고 협업하며, 정부는 두 문화 간 협업을 촉진하는 역할을 한다. 나아가 정부는 분야별 균형자와 조정자 역할을 해야 하는데, 한국에서는 정부가 5년 단임 정권의 정치 목적 달성에 앞장서는 것이 다반사였다. 따라서 지금이라도 과학기술 분야 정책 담당자들은 공정한 입장에서 문·이과 간 학문적 융합 노력을 촉진하며, 과학기술 분야에서 정치 논리를 능가할 수 있는 전문성과 배짱을 가져야 한다.

이 세 가지를 염두에 두고 우리의 지속적인 원자력 발전을 위해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갈지 생각해보자.

첫째, 한국의 평화적 원자력 이용에 주어진 제약 요소를 한·미 장관급 협의체 운영을 통해 제거해 나갈 필요가 있다. 한·미 원자력 협력은 국가 전략적 차원에서 미국과의 원자력 협상을 장관급으로 격상시켜야 한다. 국방 분야에서는 한·미 양국이 1968년부터 장관급 연례안보협의회를 매년 개최해 왔다. 원자력 분야에서는 1977년부터 2015년까지 국장급 레벨, 2015년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이후에는 차관급 레벨로 격상되기는 했다. 그러나 국가 전체적으로 보면 국방 분야와 원자력 분야는 한·미 협력에서 불균형 현상을 보여 왔다. 이제 한·미 원자력 장관급 회의를 설치하고, 한국이 핵확산금지조약(NPT) 모범 회원국으로서 누려야 할 평화적 목적의 우라늄 저농축과 사용후핵연료 재활용·저감을 위해 상용 재처리 기술을 가질 수 있도록 한·미 원자력 협력을 고도화해야 한다.

사회과학-자연과학 간 핵정책 공동체 필요

둘째, 원자력 연구 생태계 복원을 하되, 사회과학·자연과학 간 융합학문적 핵정책 공동체를 만들고 지원해야 한다. 정부는 원자력기술의 연구개발에 매년 7000억원을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원자력정책을 연구하는 사회과학 관련 단체들에는 그 연구 자금의 0.1%도 쓰지 않는다. 원자력정책에 대한 올바른 지식과 정보를 생산하고, 국민의 원자력 수용성을 높이며, 과학기술정책의 효과적 추진을 위해서는 원자력정책 관련 사회과학 연구단체에도 지원을 대폭 늘려야 한다. 탈핵 시민단체의 숫자가 많고, 이들의 자금 동원 능력도 상당한데, 친 원자력 사회과학 공동체는 극소수이고, 특히 핵정책을 하는 사회과학과 원자핵공학 간 융합학문적 네트워크는 한국핵정책학회가 유일하다. 이런 네트워크를 많이 만들고 활동을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셋째, 정부는 SMR 등 차세대 소형 원자로 연구에 있어 연구기관끼리 공정 경쟁을 조장하고, 국내 원전 산업체는 외국 업체와의 협력을 시작하기 전에 우리의 우수한 국내 연구 기술진과 협업 체계를 발전시킴으로써 우리가 세계 4위의 원전 수출국이 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연구개발 실적이 없는 프로젝트는 과감하게 정리하고, 연구개발 가능성이 있는 몇 가지 품목에 대해 균형적 지원정책을 펴나감으로써 연구 역량을 지속해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한용섭 경남대 초빙교수, 전 한국핵정책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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