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쌀 생산과잉 문제, 가루쌀로 풀 수 있다

2022. 10. 11.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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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판식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학 학장

풍년을 기뻐해야 할 농민들이 자식처럼 키운 벼를 갈아엎는 안타까운 장면이 언론에 보도됐다. 쌀 생산 과잉과 가격 안정에 대한 해법을 놓고 정치권에서도 공방이 계속되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예년보다 더 빨리, 더 많은 쌀을 공공 비축미와 시장격리 곡으로 매입한다며 대책을 최근 발표했다. 올가을 수확기를 맞아 정부의 파격적인 비상 대책에 대해 여야 모두 환영의 뜻을 밝히는 분위기다. 다만 올해 이후에도 매년 쌀이 수요보다 더 많이 생산될 때마다 정부가 의무적으로 쌀 생산 초과분을 매입하느냐에 대해서는 의견 차이가 상당해 보인다.

무엇보다 지금 상황을 냉정하게 객관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기본적으로 쌀 생산은 재배 시기의 기상 여건에 좌우되지만, 이를 평년 수준으로만 가정해도 매년 20만t 정도가 초과 생산되고 있다. 최근 농촌경제연구원 발표에 따르면 지금 논의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따라 벼 초과 생산량을 정부가 의무적으로 매입할 경우 거의 매년 시장격리를 해야 한다. 2030년에는 1조 4000억 원의 예산이 소요된다고 한다. 시장격리 예산이 농업의 미래 발전을 위한 투자를 억제하는 요인이 되지 않도록 시급히 대안 제시가 필요하다.

「 매년 쌀 20만t 초과 생산 반복돼
공급보다 수요 차원서 접근 필요
가루쌀 확대해 밀 수입 대체해야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쌀 수급 불균형 문제는 공급이 아니라 수요에서부터 풀어나가야 한다. 국민의 식습관 변화로 인해 쌀 소비는 줄곧 줄고, 대신 밀 소비가 계속해서 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기후 및 농업 기반 여건상 전체 밀 소비량 중 국내에서 생산되는 부분은 1% 미만이다. 초과 생산되는 쌀을 정부가 의무적으로 매입해야 하느냐를 놓고 벌이는 소모적인 논쟁 대신 식량안보의 기반인 농지를 지키면서 어떻게 식량자급률을 높일 수 있을지 건설적 고민이 절실한 시점이다.

이와 관련,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6월 밀을 대체할 수 있는 가루쌀(분질미) 생산 확대 정책을 발표했다. 가루쌀이 무엇인지 의아했지만, 자세히 살펴보니 재배 방식은 일반쌀과 비슷한데 밀처럼 활용이 가능하다. 쌀 수급 문제와 밀 자급률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핵심 수단으로 가루쌀이 떠오르고 있다.

우선 생산 측면에서 가루쌀은 6월 하순 이후에 늦은 모내기를 한다는 점을 제외하면 일반쌀과 재배 방식이 같다. 가루쌀은 늦게 모내기하기에 이런 측면에서는 일반쌀보다 밀과의 이모작에 유리하다. 밀은 주로 6월 중순 즈음에 수확하는데, 일반쌀은 주로 6월 초·중순에 모내기한다. 이 때문에 농업인은 밀과 쌀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

그런데 대부분 농업인은 쌀이 주된 작물이어서 밀이 충분히 익기도 전에 일반쌀을 심기 위해 밀을 수확한다. 이는 우리 밀의 품질이 저하되는 원인이기도 하다. 그러나 가루쌀과 밀을 이모작 하면 우리밀을 충분히 성숙시켜 품질을 높일 수 있을 뿐 아니라, 가루쌀도 안정적으로 재배가 가능하다.

가공 측면에서 가루쌀은 전분 구조가 성글게 배열되어 있어 일반쌀처럼 물에 불리지 않고 밀과 같이 건식으로 제분이 가능하다. 손상 전분이 많으면 가공적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일반쌀은 물에 불려서 제분한다. 그러나 가루쌀은 건식 제분하더라도 전분의 손상이 적기 때문에 가공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일본도 쌀가루 활용 방안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과정에서 습식 제분에 따른 가공 비용 절감이 주요 과제라고 하는 것을 보니 한국이 보유한 가루쌀이 매우 획기적임을 알 수 있다.

실제로 가루쌀을 통해 수입 밀 수요를 줄이고 가루쌀과 우리밀의 이모작을 통해 우리밀 공급을 확대한다면, 쌀 수급 불균형 문제는 물론 밀 등 식량 수입 의존도 낮출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정부는 내년부터 밀·콩 뿐 아니라 가루쌀을 대상으로 ‘전략 작물 직불제’를 실시한다. 밥쌀 대신 다른 작물을 재배하려는 농가에도 도움이 되길 간절히 바란다.

모든 생명체는 일련의 생체 반응을 촉진하는 효소라는 생체 촉매제를 갖고 있다. 이는 소화·면역·항암 등 인체 대사를 원활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정부도 마찬가지다. 가루쌀 활성화를 촉매해 우리 쌀과 밀 시장, 나아가 농식품업 전반이 원활하게 돌아가길 기대한다. 가루쌀이 어려운 3농(농업·농촌·농민) 현장에 변화를 이끄는 새로운 활력소가 되길 바란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장판식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학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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