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거·건강기능식품의 배신.. "치료·예방 효과 입증 안돼"

민태원 2022. 10. 10.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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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학회 '현명한 선택' 캠페인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임상적 근거가 확실하지 않은 건강기능식품을 권하지 않는다.’ ‘적응증이 안되는 경우 포도당, 생리식염수, 아미노산, 비타민 등 수액제제를 주사하지 않는다.’

대한가정의학회(이사장 선우성 서울아산병원 교수)가 최근 열린 추계학술대회에서 이런 내용이 포함된 ‘현명한 선택(Choosing wisely) 캠페인’ 권고안 7가지를 내놨다.

현명한 선택은 환자에게 이득이 되지 않으면서 높은 비용을 지불하는 흔한 진단 검사나 치료법 5~10가지를 정해 해당 행위를 하지 말자는 일종의 의료계 자정 운동이다. 불필요한 검사나 치료를 줄이고 환자에게 적정 진료를 제공하자는 취지다.

2012년 미국에서 본격화돼 현재 70여개 의학 분야 전문학회에서 권고안을 개발해 캠페인을 진행 중이며 환자 등 소비자단체도 참여하고 있다. 캐나다 일본 호주 영국 등으로 확산됐다.

국내에서도 2016년부터 대한민국의학한림원 등 주도로 시작돼 여러 전문학회가 동참을 선언했다. 가정의학회는 지난해 5월부터 학회 근거중심의학위원회를 중심으로 권고안 제정에 착수해 최종 7가지를 확정했다.

이 중에서 눈길을 끄는 것이 개원가에서 많이 이뤄지는 영양수액 주사와 흔히 소비되는 건강기능식품 관련이다.


영양수액 주사 실태조사 필요

‘비타민 주사’ ‘포도당 주사’ ‘아미노산 주사’ 등으로 불리는 각종 영양 수액제제 투여가 개원가를 중심으로 널리 성행하고 있다. 하지만 학회는 “경구(먹는) 섭취 어려움으로 탈수나 영양부족 상태가 아닌 경우, 만성 피로나 기타 질병 치료 목적으로 임상 근거가 확립되지 않은 수액제제를 주사하지 않는다”고 권고했다.

다수의 국내외 연구논문이 근거로 제시됐다. 2008년 국내 기업 2군데에서 모집한 사무직 직장인 147명을 대상으로 비타민C 주사 이중맹검 무작위 임상시험 진행결과 피로도에 있어 통계적 차이가 없었다. 브라질에서는 건강한 18~26세 남성 대상으로 생리식염수 2ℓ를 1시간에 걸쳐 정맥주사한 경우를 경구 섭취한 경우와 비교했다. 정맥주사 대상군에서는 투약 1시간 후 혈장 알부민, 헤모글로빈 수치 등이 현저히 줄었지만 경구 섭취군에선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학회는 “정상인에서 생리식염수를 주사한 경우 경구 섭취에 비해 혈장 구성과 수분 분포를 더 많이 변화시키므로 영양결핍, 감염, 수술 전후 등 상황에서 염증 반응을 일으켜 부종, 혈관누출에 더 취약하게 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수분의 경구 섭취가 가능한 상황에선 가급적 정맥주사를 해선 안된다는 얘기다.

이어 “1960년대 이후 시대적 상황과 맞물려 기운이 없을 때 이른바 ‘링거’를 맞으면 좋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일상적인 보조식품처럼 수액 치료를 받으러 다니는 관행이 생겼다. 반면 1990년대 초반부터 이런 링거 관행이 의학적으로 타당하지 않다는 의견이 지속적으로 나왔다”면서 “최근의 실제 포도당, 생리식염수, 아미노산 수액제제 투여 현황에 대해선 알려진 자료가 없는 만큼 정확한 실태조사가 이뤄져야 하며, 의학적 근거가 부족한 수액영양 주사에 대한 교육과 홍보가 필요하다”고 짚었다.

주요 건기식품, 효능 근거 불충분

학회는 또 “홍삼과 비타민, 유산균(프로바이오틱스), 오메가3지방산, 칼슘보충제, 글루코사민 등 건강기능식품은 질병 예방이나 치료 측면에서 효능과 안전성에 대한 임상적 근거가 불충분하기 때문에 권장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홍삼·인삼에 대해서는 8개 국내 의학데이터베이스를 검색해 30편의 무작위 임상시험 논문을 체계적으로 고찰한 결과 체력 향상, 인지기능, 수면, 발기부전, 위암, 대장암, 만성위염, 당뇨, 탈모, 비만, 대사증후군 등 다양한 질병과 증상에 대한 인삼의 효능과 안전성이 보고됐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연구 방법론 측면에서 질적 수준이 낮았고 연구 대상자 수가 적어 향후 높은 질적 수준과 많은 피험자 대상 무작위 비교 임상시험이 필요하다고 결론지었다.

국내외 의학데이터베이스 ‘PubMed’에서 검색된 50여편 논문에서는 대부분 유의한 결과를 보이지 않았고 일부 효능이 있다고 보고한 논문은 질적 수준이 낮아 효능을 입증하는 데 제한적이었다. 학회는 “실험실 및 동물 연구에서 홍삼(인삼)이 여러 기전을 통해 건강에 도움될 수 있다는 가능성은 제시되고 있지만 사람 대상으로 한 임상적 근거는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베타카로틴(비타민A 전단계 물질)이나 비타민E, 미네랄 및 종합비타민 보충제를 심혈관질환 혹은 암 예방 목적으로 복용하는 것도 효과 근거가 불충분해 권고되지 않았다. 골절 예방 및 골밀도 상승을 위해 비타민D와 칼슘보충제를 단독 혹은 함께 복용하는 것도 마찬가지. 지난해 발표된 13편의 임상시험 문헌고찰에서는 칼슘보충제가 오히려 심혈관질환 위험을 15% 높이는 것으로 분석됐다.

감기 예방 목적의 일상적 비타민C 보충 역시 임상 효과에 대한 유의성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육체활동이 많은 마라토너, 스키인, 군인 등의 경우 비타민C 보충이 감기의 상대적 위험을 줄이는 효과가 확인됐다. 또한 임신을 계획중인 모든 여성은 태아의 신경관 결손(무뇌증, 척수 이분증 등) 예방을 위해 엽산 보충제 복용이 권고됐다.

학회는 “건강한 일반 성인에서 종합비타민 보충제가 질병의 예방·치료에 효능이 있거나 안전하다는 임상적 근거는 부족하다. 질적 수준이 높은 대규모 무작위 비교 임상시험을 통해 근거가 확정되기 전까진 권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프로바이오틱스는 인간에게 유익한 살아있는 미생물이나 생균 함유 제품이다. 락토바실러스, 비피더스균 등이 대표적이다. 2000년대 들어 프로바이오틱스 관련 연구논문이 급증했다. PubMed에선 2700여건이 검색됐다. 하지만 지금까지 발표된 연구결과는 질병 치료·예방 효과가 입증되지 않거나 논란이 되고 있다. 학회는 “몇몇 높은 질적 수준과 타당도를 갖춘 임상연구에서 위장관 질환을 포함한 각종 질병에 긍정적 효과를 보고했지만, 반대로 효과가 없거나 오히려 부정적인 결과를 보고한 연구도 있어 결론적으로 프로바이오틱스의 건강 효과는 일관되지 않고 모호하다”고 평가했다. 사용에 따른 이득이 확실히 입증되지 않은 만큼 역시 권장할 수 없다는 얘기다. 아울러 상업적으로 판매되는 다양한 프로바이오틱스 제품 간 용량·조성물·생물학적 활성도 등에 상당한 차이점이 존재한다는 점, 프로바이오틱스 이용에 대한 열정이 과학적 근거를 앞서고 있는 상태라는 점 등도 고려해야 한다고 학회는 언급했다.

오메가3지방산 제품 섭취에도 부정적이었다. 미국심장협회(AHA)는 심혈관질환 예방을 위해 고중성지방혈증 환자에게 하루 4g의 고용량 오메가3지방산을 단독 혹은 다른 고지혈증약(지질강하제)과 병합 사용을 권고하고 있다. 하지만 학회는 “건강한 일반 성인에서 다양한 저용량 오메가3지방산 보충제가 심혈관질환 예방·치료에 도움이 된다는 임상 근거는 여전히 불충분하므로 권장할 수 없다”고 했다.

또 관절 통증을 개선해 준다는 글루코사민에 대해선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의 2009년, 2011년 두 차례 연구보고서를 인용해 학회는 “글루코사민과 콘드로이틴 제품이 해당 제조 회사로부터 연구비를 지원받아 시행됐거나 질적 수준이 낮은 연구에서만 효과가 관찰됐기 때문에 효능이 있다고 보기 힘들다”고 덧붙였다. 글루코사민 제품은 2012년부터 건강보험 급여 목록에서도 빠졌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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