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데자뷔 보는 듯한 여·여 갈등

2022. 10. 10.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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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율의 정치 읽기]
이준석 국민의힘 전 대표와 여당 지휘부 사이에서 발생한 갈등이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매경DB)
최근 이준석 국민의힘 전 대표는 과거 이승만 정권의 사사오입 개헌을 거론하면서 역사의 데자뷔를 언급했다. 사사오입 개헌 당시나 지금의 국민의힘 상황이나 비이성적 정치 행위를 하고 있는 게 마찬가지라 데자뷔 현상을 느낀다는 것이 요지였다.

이는 작금 전 세계를 덮치고 있는 경제 위기와도 무관하지 않다. 경제 위기는 항상 민주주의 위기와 정치의 실종을 동반한다. 현재 경제 위기가 심상치 않다. 우리나라는 말할 것도 없고, 유럽이나 미국 그리고 일본에도 위기가 들이닥치고 있다. 영국은 IMF 구제 금융을 받을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고, 골드만삭스의 전 수석 통화 전략가 짐 오닐은 엔화가 달러당 150엔을 돌파하면 1997년 같은 아시아 외환위기가 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과거 우리가 겪은 IMF 외환위기 당시에는 중국 경제가 버텨줘서 그나마 회복이 빨랐지만, 현재는 중국 경제 상황도 매우 심각하다. 이런 상황을 보면서 우리는 1997년을 떠올린다. 일종의 데자뷔다.

이번 위기가 1997년 상황처럼 극단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임을 얘기하려는 게 아니다. 하지만 당시처럼 정치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경제 위기의 끝이 어떨지는 아무도 예상할 수 없다.

우리 정치권은 언제나 시끄럽다. 그런데 요즘 유독 시끄럽다.

먼저 윤 대통령의 ‘뉴욕 발언’ 논란을 꼽을 수 있다. 윤 대통령은 해당 발언에서 바이든을 언급한 적이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지만 야당은 계속 바이든을 언급했다고 주장한다. 한때 신중한 입장을 견지했던 이재명 대표마저도 윤 대통령이 바이든을 언급했고 비속어도 말했다면서 비난하고 나섰다.

그런데 새로운 변수가 생겼다. 문재인 전 대통령에 대한 감사원의 서면조사 요구다.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을 감사하고 있는 감사원으로부터 서면조사를 요청받은 문재인 전 대통령은, 서면 질의서 수령 자체를 거부하면서 “무례하다”는 입장을 공식 표명했다. 감사원은 해당 사건 감사를 조만간 마치고 10월 중순 감사 결과를 소상히 발표함과 동시에 사건 일부는 검찰에 수사 의뢰를 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여기서 문 전 대통령 관련 부분이 ‘공란’으로 검찰에 넘겨지면 여야 대립은 그야말로 극단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있다. 벌써부터 야당 반발은 극을 향해 치닫는다. 국민 저항 운동을 언급하면서 ‘촛불 집회’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상황이 이렇기에 여야 극한 대치의 끝은 보이지 않는다. 1997년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당시는 시기적으로 대선 직전이었다.

대립은 1997년 10월 8일 신한국당 의원의 이른바 ‘DJ 비자금 의혹 폭로’에서 시작된다. 의혹이 폭로되자, 같은 날 국민회의는, YS와 이회창 총재의 정치 자금도 함께 조사하자고 맞불을 놨다. 당시 ‘무역 채산성이 최악’ ‘하루 어음 부도율 1% 넘어’라는 기사가 쏟아지고 있었음에도, 정치권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런 과정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고발전이다. 의혹 폭로가 있고 난 8일 후인 1997년 10월 17일 신한국당은 DJ를 고발했다. 이 고발은 검찰이 수사 유보를 발표하며 유야무야됐지만, 우리나라 정치권의 ‘사법 의존증’이 어제오늘 발병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검찰이 DJ에 대한 수사를 유보하자, 이번에는 신한국당 내부 갈등이 본격화됐다. 과거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던 YS와 이회창 신한국당 대표(총재) 사이 갈등이 극에 달하기 시작했다. 당시 이 총재 측은 검찰 비자금 수사 유보를 자신을 낙선시키려는 청와대의 음모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 총재 측이 이런 상황을 음모와 연결시켰던 이유는 당시 신한국당 내부에서 일고 있던 이른바 ‘후보 교체론’과 수사 유보가 관련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여-여 갈등은 대선일까지 이어졌다. 10월 23일 ‘신한국당 분당 위기’라는 헤드라인이 온갖 언론을 뒤덮었다. 그런데 당시 이미 IMF 외환위기라는 쓰나미가 서서히 몰려오고 있었다. 재계 위기감은 상당했지만, 정부와 정치권은 ‘설마’ 하는 생각을 가졌던 것 같다. IMF에 대한 구제 금융 신청을 발표하기 일주일 전인 11월 15일, 우리 정부 당국은 “경제 상황이 나쁘기는 하지만, 극복이 가능하다”고 했다. 진짜 그렇게 생각했는지, 아니면 이렇게 말을 해야 그나마 국민 동요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인지는 몰라도, IMF 구제 금융 발표 일주일 전까지 정치권과 정부의 표면적인 상황 인식은 ‘특별’하지 않았다. 당시를 위급한 상황이라고 생각했다면, 금융개혁안 국회 통과가 무산되지는 않았을 테다. 금융개혁안이 통과됐다면 IMF 외환위기 충격파가 조금은 덜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과거의 여-여 갈등이 지금 재현되고 있다. 그것도 ‘상당한 수준’으로. 모두 아는 바와 같이, 이준석 전 대표와 국민의힘 갈등은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이준석 전 대표는 국민의힘의 여러 정치적 행위를 계속 의심 어린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고, 국민의힘에 대한 이 전 대표의 비난 강도도 점점 강해지고 있다. 윤 대통령 뉴욕 발언이 영국 BBC 시사 코미디 소재로 활용되자, 이 전 대표는 이에 대해서도 조롱 섞인 언급을 했다. 이러다 분당 얘기가 오갈 수도 있다.

물론 분당은 쉬운 선택이 아니다. 나가는 쪽은 국민의힘 자산을 포기해야 한다. 따라서 누가 나가고, 누가 남느냐가 상당히 중요한 문제가 될 수 있다. 이 전 대표가 징계에 대한 추가 가처분 신청을 내고 이게 인용되면, 누가 남는 자가 될 것인가를 두고 치열한 싸움이 벌어질 것이다.

여-여 갈등은 국정 운영 동력을 떨어뜨리는 결정적 요인이다. 야당 공격도 막아내기 힘겨운 판에 내부에서 갈등하며 서로를 공격하니, 이런 상황에서 국정이 제대로 운영된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하다. 이는 1997년 IMF 외환위기 당시, 정부 대응이 적절했는가 하는 부분과도 관련이 있다. 당시 여당 내부 갈등이 없었다면, 위기 징후를 조금 더 일찍 발견했을지 모른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아마도 여당 내부 갈등에 대한 책임이 서로 상대에 있다고 주장하겠지만, 누구의 책임이든 위기에 대한 인식과 대처를 잘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님이 확실하다.

지금 데자뷔를 말하는 이유는, 과거 잘못을 반복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반복되지 말아야 할 역사는 반복되지 못하게 만들어야 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이성이다. 그런데 갈등이 깊어지면, 상대에 대한 감정이 이성을 앞지른다. 이성이 실종된 정치는 더 이상 정치가 아니다. 더 이상 갈등 상황을 만들지 말고 현재 위기 상황을 극복하는 데 정치권 모두가 힘을 쏟아야 한다. 위기는 일단 터지면 수습하기 매우 어려우므로.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79호 (2022.10.12~2022.10.18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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