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메모리알

고승욱 2022. 10. 10. 04:12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1989년 10월 31일자 뉴욕타임스에는 러시아인 1500여명이 모스크바 시내에서 촛불시위를 하는 사진 한 장이 실렸다.

이들이 모인 곳은 크렘린궁 인근 루뱐카광장.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를 앞세운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동유럽의 민주화 요구에 개입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게 그해 10월 27일이다.

그 결과 이듬해 1월 26일 메모리알 설립식이 열렸고, 10월 30일을 정치탄압 희생자 추모의 날로 정했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고승욱 논설위원


1989년 10월 31일자 뉴욕타임스에는 러시아인 1500여명이 모스크바 시내에서 촛불시위를 하는 사진 한 장이 실렸다. 이들이 모인 곳은 크렘린궁 인근 루뱐카광장. 시위대는 이곳에 있는 KGB 본부 건물을 둘러싸고 30분 동안 침묵시위를 벌였다. 2022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러시아의 인권단체 메모리알은 이렇게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를 앞세운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동유럽의 민주화 요구에 개입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게 그해 10월 27일이다.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역사적인 날은 11월 9일이다. 철의 장막 안의 변화에 모스크바도 예외는 아니었다.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반체제 인사들이 1988년 10월 29일 비밀리에 모여 KGB의 추악한 범죄를 성토하고 민주화에 헌신하기로 약속했다. KGB 보고서에는 전국 57개 도시를 대표하는 338명이 모였다고 적혀있다. 가혹한 정치범 수용소 굴라크에 수감됐던 늙은 반체제 인사와 모스크바인민전선 같이 새로 결성된 조직의 젊은 활동가들이 동지애를 나눴다. 이들은 희생자를 찾아내고,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역사에 기록하자고 합의했다. 그 결과 이듬해 1월 26일 메모리알 설립식이 열렸고, 10월 30일을 정치탄압 희생자 추모의 날로 정했다. 뉴욕타임스에 실린 사진은 첫 추모의 날에 이뤄진 메모리알의 첫 공개 행사였다.

이후 메모리알은 스탈린 시대 정치범 수용소에서 고문 끝에 숨진 희생자의 공동묘지 수백 곳을 발굴했다. 이들을 기리는 책을 출판하고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에도 지부가 생겼다. 하지만 지금 메모리알은 창립 이후 가장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수많은 활동가가 억울한 누명을 쓰고 수감됐다. 지난해 12월 모스크바 메모리알은 강제 해산됐고, 노벨상 수상 발표 직후에는 모든 재산을 압류당했다. 과거의 탄압을 역사에 새기려는 이들이 다시 탄압받고 있는 것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저지른 또 다른 범죄다.

고승욱 논설위원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