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 '윤석열차'에 드러난 꼰대본색

강창욱 2022. 10. 10. 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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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만화공모전 카툰 부문 수상작 '윤석열차'로 정치권이 한창 호들갑일 때 한 여당 인사는 "투표권이 없는 어린 학생이었다면 문제가 있다"는, 문제가 있는 말을 했다.

만 18세 미만은 정치에 입을 다물라고 한 것이나 다름없다.

"투표권이 있는 학생이라면 정치적 의사결정권이 있다고 보이는데 그 이하의 학생이라면 정치화된 내용을 내는 것 자체가 '그게 좋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청소년을 온전한 국민으로 본다면 저런 말이 나올 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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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창욱 이슈&탐사팀장


학생만화공모전 카툰 부문 수상작 ‘윤석열차’로 정치권이 한창 호들갑일 때 한 여당 인사는 “투표권이 없는 어린 학생이었다면 문제가 있다”는, 문제가 있는 말을 했다. 만 18세 미만은 정치에 입을 다물라고 한 것이나 다름없다. 누군가는 청소년 비하 발언이라며 요란을 떨 법도 한데 조용히 넘어간 게 의아하다. 저 말을 “투표권이 없으면 정치풍자를 하면 안 된다”는 소리로만 듣더라도 터무니없긴 마찬가지다. 카툰은 풍자가 기본이고, 정치는 풍자의 핵심 소재다. 카툰 공모전을 열어놓고 정치풍자를 하지 말라니 사생대회에서 풍경화를 그리지 말라는 어불성설과 뭐가 다른가. 평가절하할 논리가 궁색하니 표절 논란으로라도 몰아가려 한 것일 텐데 원작으로 지목된 영국 신문 만평의 화백이 문제없다고 해버렸으니 베꼈네 마네를 더 논하는 일은 구차할 뿐이다.

“투표권이 있는 학생이라면 정치적 의사결정권이 있다고 보이는데 그 이하의 학생이라면 정치화된 내용을 내는 것 자체가 ‘그게 좋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청소년을 온전한 국민으로 본다면 저런 말이 나올 리 없다. 투표권 없는 이들을 반쪽짜리 국민으로 취급하는 말이다. 여자는 국방의 의무를 지지 않으니 권리를 일부만 행사해야 한다던 어느 의사의 황당 주장을 떠올리게 한다. 올해부터 정당 가입 연령을 만 16세로 낮춰놓고 이럴 때는 또 투표권으로 선을 긋는가. 법안 통과 당시 국민의힘은 “정치 참여에 있어 연령의 문턱을 낮추는 것은 정치 발전에 매우 유의미한 변화를 이끌 것”이라고 했다. 얼마 뒤엔 만 16세 청소년 2명이 입당한 것도 자랑했다.

정치인들이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이들 중 하나가 10대다.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 시위로 나라가 들썩인 2008년 5월 수습기자였던 나는 ‘안단테’라는 필명으로 이명박 당시 대통령 탄핵 서명운동을 시작해 촛불집회에 불을 댕긴 고교생을 찾아내 인터뷰했다. 그는 당시 고2, 만 17살이었는데 배후를 의심받으며 수사선상에 올라 있었다. 경찰에 쫓기던 그는 이렇게 물었다. “프랑스는 (청소년의 정치 발언을) 권장한다는데 우리나라는 유교적 분위기가 너무 강해서 학생들이 어른에게 대들거나 하는 걸 참고 보지 못해요. 학생도 국민인데 자기주장 못할 이유가 어딨나요.”

그와 입장이 다른 ‘어른’들은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뭘 안다고 정치 선동을 하느냐”고 욕했다. 하지만 시위 현장에는 반대 주장을 하는 청소년들도 있었다. 내가 만난 촛불집회 반대 인터넷 카페 운영자는 고3으로 당시엔 역시 투표권이 없는 만 18세였다. 그가 ‘또다른여론’이라는 필명으로 운영하는 카페에는 “기특하다” “어린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하다니 우리나라도 아직 회생의 기회는 있군요” 같은 칭찬이 이어졌다.

그도 반대 진영으로부터 ‘어린놈’이라고 무시당했다. 역시나 배후를 의심받으며 ‘알바’로 매도당했다. “정당하고 솔직하게 올렸는데 자기와 입장이 다르면 다들 ‘알바’로 몰아붙이면서 무시하고 욕해요. 이게 민주주의인가요.” 그는 오히려 대척점에 선 안단테에게 동료애 비슷한 걸 느끼고 있었다. “정당하고 합리적인 방법으로 여론을 이끌어낸 의미가 있다고 봐요.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는 정치적 무관심이잖아요. 어른들이 정치적으로 무관심한 상황에서 안단테가 학생들에게서 정치적 관심을 이끌어냈다고 봐요.” 지금은 표가 안 되니 안중에도 없겠지만 현 정권 임기가 다하기도 전에 그들 상당수가 유권자가 된다. 금배지를 달고 싶은 이들은 당장 1년반 뒤면 “어리다”고 무시했던 그들에게 손을 벌리고 있을 것이다.

강창욱 이슈&탐사팀장 kcw@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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