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없음에 대하여

2022. 10. 10. 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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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케이지는 1951년 하버드 대학의 무향실을 찾는다.

그러나 존 케이지는 두 가지 소리를 듣는다.

"텅 빈 시간이나 텅 빈 공간 따위는 없다"고 존 케이지가 말하는 것처럼 오히려 '4분 33초' 작품의 핵심은 '침묵 없음'이었다.

이 세계에 진정한 부재는 없다는 사실이 가끔은 위로가 되기도 한다는 것을 문학 선생님도, 존 케이지도 모두 알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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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오 시인


존 케이지는 1951년 하버드 대학의 무향실을 찾는다. 무향실은 공학적 목적을 위해 최대한 조용하게 만들어진 방으로, 특수 소재로 만들어진 이 방에서는 기본적으로 소리의 반향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존 케이지는 두 가지 소리를 듣는다. 하나는 높은 소리, 다른 하나는 낮은 소리. 엔지니어는 그에게 높은 소리는 그의 신경계가 작용하는 소리이며 낮은 소리는 그의 혈액이 순환하는 소리라고 알려준다.

케이지의 ‘4분 33초’는 4분 33초간 아무 연주도 하지 않는 음악으로 유명한데, 사실 이 작품은 3악장으로 나누어져 있다. 음표나 쉼표 없이 TACET(연주하지 말고 쉬어라)이라는 악상만이 각 악장의 악보마다 적혀 있다. 그러나 연주 길이에 대한 지시는 따로 없다. 초연에서는 시간을 무작위로 결정하여 1악장을 33초, 2악장을 2분 40초, 3악장을 1분 20초씩 연주했다고 한다. 그 시간 동안 피아노 뚜껑이 여닫히는 소리, 관객의 기침소리, 각종 인기척 등은 음악의 일부로 화한다. 흔히 ‘4분 33초’를 침묵의 음악이라 부르지만 사실 이 작품에 진정한 침묵은 없는 셈이다. “텅 빈 시간이나 텅 빈 공간 따위는 없다”고 존 케이지가 말하는 것처럼 오히려 ‘4분 33초’ 작품의 핵심은 ‘침묵 없음’이었다.

고등학교 문학 시간이었다. 선생님은 귀신의 존재를 믿는 사람은 손을 들어보라 말했다. 절반 정도의 학생이 손을 들었다. 나는 손을 들지 않고 앉아 있었다. 선생님은 사랑하는 친구가 죽어 묻혀 있는 무덤을 떠올려 보라고 했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부는 날이면 죽은 친구가 추울까 걱정되지 않겠느냐고, 이미 죽고 없음을 알지만 그의 안부가 걱정된다면 귀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우리는 분명하게 말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 나의 눈앞에 없지만 그리움으로 존재하는 대상들을 떠올린다. 이 세계에 진정한 부재는 없다는 사실이 가끔은 위로가 되기도 한다는 것을 문학 선생님도, 존 케이지도 모두 알았던 것 같다.

김선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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